[삶과 문화] 마음에도 플럼피넛이 필요합니다

입력
2019.12.11 04:40
31면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기아 어린이들이 땅콩버터는 잘 먹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개발하게 된 것이 이 플럼피넛입니다. 땅콩버터를 주재료로 해서, 비타민과 칼슘 마그네슘 등 필수적인 영양소를 첨가한 뒤 건조한 형태인데요. 하루 세 개씩 일주일간 먹어 급한 영양실조를 회복한 뒤, 일반 음식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사진은 플럼피넛을 먹는 어린이 모습. 유니세프 제공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기아 어린이들이 땅콩버터는 잘 먹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개발하게 된 것이 이 플럼피넛입니다. 땅콩버터를 주재료로 해서, 비타민과 칼슘 마그네슘 등 필수적인 영양소를 첨가한 뒤 건조한 형태인데요. 하루 세 개씩 일주일간 먹어 급한 영양실조를 회복한 뒤, 일반 음식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사진은 플럼피넛을 먹는 어린이 모습. 유니세프 제공

얼마 전 한 지자체에서 하는 간담회에 다녀왔습니다. 장기 미 구직 청년들을 위해 일자리 사업, 직업 교육 사업, 심지어 진로 상담 사업까지 만들었는데도 이용률이 떨어진다는 고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오래 일을 하지 못한 만큼, 일 경험이 절실할 텐데 왜 그들이 오지 않느냐? 홍보 부족은 아닐까?”라는 의문이었지요. 저는 한 가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혹시 플럼피넛 아세요? 유니세프 광고에서 자주 나오는 거요.”

여러분은 들어보셨나요? TV 속 후원 광고를 자주 보신 분이라면, 기아 어린이들이 작은 과자 모양의 식품을 먹고 있는 것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극도의 기아 상태에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영양실조 치료식의 이름이 바로 플럼피넛인데요. 이 식품이 어떻게 개발된 것인지 알고 계시나요?

1990년대, 아동 구호 의료진들은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기아 상태의 어린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해도 자꾸만 죽음에 이르는 현상이 빈번했던 것인데요.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제공했는데, 먹지 않고 빤히 쳐다만 보다가 사망에 이른다는 점이 말입니다. 오히려 허겁지겁 먹을 거 같은데 말이지요. 기아가 말기에 접어들면 역설적이게도 식욕이 극도로 떨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음식 섭취를 완전히 거부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를 해결한 방법을 찾다가, 프랑스의 소아청소년과 의사인 앙드레 브리엥은 한 가지 특이할 사실을 발견합니다.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기아 어린이들이 땅콩버터는 잘 먹는다는 점이었지요. 이에 착안하여 개발하게 된 것이 이 플럼피넛입니다. 땅콩버터를 주재료로 해서, 비타민과 칼슘 마그네슘 등 필수적인 영양소를 첨가한 뒤 건조한 형태인데요. 하루 세 개씩 일주일간 먹어 급한 영양실조를 회복한 뒤, 일반 음식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종종 상담하며, 사람의 마음에도 이러한 플럼피넛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너무 오래 굶게 되면 음식을 먹어야 살 수 있음에도 먹지 못하듯, 마음도 비슷한 상태들이 발견되거든요. 고립과 우울함이 너무 오래되면 집 밖으로 나와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게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를 발견합니다. 일종의 감정적 기아 상태에 가깝다고 표현하면 적합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여기에 사회 진입에 4년째 실패한 30대 청년이 있다고 칩시다. 초반에는 약한 우울을 느끼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감정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안돼. 뭐라도 해서 내 상태를 개선해야지’라고요. 저 활력 상태이지만 개선 의지는 있는 상태랄까요. 하지만 이때 적당한 보조자를 발견하지 못하거나, 충분한 정보를 받지 못한 채 고군분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간의 상담 기관은 내게 너무 비싸고, 정부에서 하는 곳들은 석 달 기다리라고 한다거나, 그런 식으로 문턱을 넘지 못하게 되는 거지요.

이렇게 저 활력 상태를 개선해보려 혼자서 시도한 몇 번의 노력이 실패하고 나면 더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의지가 박약해서가 아니라, 활력 도가 극도로 낮아지면서 ‘무 활력 상태’, 아예 배터리가 0이 되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청년들에게 지금까지의 공공서비스는 ‘교육의 제공’과 ‘일 경험의 제공’ 중심으로 바라본 면이 있습니다. 즉, “일을 제공하거나, 교육을 제공하겠다”라는 것인데요. 하지만 이제는 생각해볼 때입니다. 배고픔에도 여러 단계가 있듯, 마음의 허기에도 여러 층위가 있습니다. 저 활력과 무 활력은 분명 다릅니다. 완전히 바닥으로 가닿은 마음을 가진 청년들에게도 “우리는 만들었는데 너희가 안 왔잖아?”라는 질문이 유효할까요? 마음에도 플럼피넛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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