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코와 레간자’… 대우車와 흥망성쇠 함께했던 김우중

입력
2019.12.10 06:28
수정
2019.12.1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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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3월 11일 루마니아 로데의 대우자동차 공장 준공식에서 김우중 전 회장과 루마니아 관계자들이 1호 차인 시에로의 출고를 축하하고 있다. 연합뉴스
1996년 3월 11일 루마니아 로데의 대우자동차 공장 준공식에서 김우중 전 회장과 루마니아 관계자들이 1호 차인 시에로의 출고를 축하하고 있다. 연합뉴스

9일 향년 83세로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대우자동차의 흥망성쇠와 일생을 함께했다. 르망과 국내 최초의 경차인 티코 등 지금도 기억에 남을 차종으로 국내 자동차 산업에 한 획을 그은 김우중과 대우자동차였다.

전자와 건설, 금융 부문에서 성공을 거둔 김 전 회장은 자동차 부문 후발주자였지만 비용을 줄여 자동차 보급률을 늘리는 방식으로 마이카 시대를 이끌었다는 평가다. 비록 자동차가 주력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아성을 넘어서진 못했으나 한때는 1위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브랜드 가치를 키웠다.

옛 대우차(현 한국지엠)의 전신은 1955년 설립된 신진자동차공업이다. 미군 차량을 개조하던 신진자동차공업은 1963년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하고 신진자동차로 사명을 바꿨다.

미국 GM과 합작해 GM코리아를 설립한 신진자동차는 경영위기로 1976년 산업은행 관리 아래로 들어갔다. 1978년 대우그룹이 이 회사를 인수하며 대우차 역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르망과 티코, 누비라로 대표되는 사명 대우차는 1983년부터 사용했다.

대우차는 협력 관계에 있던 GM 산하 오펠이 개발한 카데트 E를 기반으로 1986년 르망을 생산해 판매했다. 날렵한 디자인과 탄탄한 하체는 젊은 고객 입맛에 맞았고, 현대 포니 시리즈를 위협하는 자리까지 올라섰다.

르망으로 성공 가능성을 엿본 김우중 회장은 본격적으로 마이카 시대를 대비했다. 88올림픽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에 발맞춰 자동차 대중화 시대가 열렸고, 국민차를 목표로 한국 최초의 경차인 티코 생산을 준비했다.

정부는 대우차 산하인 대우국민차를 국민차 사업 생산업체로 지정했다. 한국 최초의 경차는 1991년 탄생했다. 마이카 시대를 예상하고 대우국민차를 통해 경차 생산을 준비한 전략은 주효했다.

비용을 최소화한 플랫폼으로 안전성 우려가 불거지기도 했지만 300만원대의 저렴한 가격과 세컨드카 열풍까지 불며 티코는 90년대 중반 이후 국민차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김우중 회장은 해외수출 준비도 병행했다. 수출선적이 유리한 군산산업기지를 눈 여겨 본 대우차는 1990년 공장건설 공동사업자로 참여해 1996년 4월 세단 생산시설 건립을 완료했다.

군산공장 완공 시점과 함께 대우자동차는 날개를 달았다. 라노스(소형), 누비라(준중형), 레간자(중형)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군산공장은 이들의 생산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996년 군산공장에서 첫 양산된 누비라는 이듬해 서유럽에 첫 수출되며 한국산 자동차의 해외 진출에 힘을 보탰다. 독자개발 모델의 히트로 판매를 늘려가던 대우차는 1998년 상반기 현대차를 제치고 내수 판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자신감이 붙은 김우중 회장은 당시 내수 100만대, 수출 100만대를 목표로 잡기도 했다. 자동차에 있어서도 역시나 세계경영을 앞세운 김우중 회장 전략은 우크라이나 등에 현지 생산공장을 짓는 등 사업 확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우리나라를 강타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대우그룹 경영 위기가 시작됐다. 그룹 위기에도 대우차는 마티즈, 레조 등을 출시하며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려 했으나 2000년 말 부도 처리되는 부침을 겪었다. 2002년 GM에 인수됐지만 자체 개발하던 올뉴 마티즈와 라세티가 GM 산하에서 출시되며 옛 대우차의 명맥을 이어갔다.

업계 관계자는 "완성 단계였던 신형 모델은 GM이 가져갔는데 이 회사가 2000년 이후 닥친 위기를 넘기는 데 힘을 더할 만큼 제품성이 우수했다"며 "역사에 만약이 있다면 국내 자동차 산업 판도는 크게 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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