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생존을 위한 젱킨스의 긴 모험(12.11)

입력
2019.12.11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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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 죽기 싫어 1965년 월북했다가 만 39년 동안 억류된 채 체제 선전의 도구로 살아야 했던 미 육군 탈영병 젱킨스가 2년 전 오늘 별세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전쟁터에서 죽기 싫어 1965년 월북했다가 만 39년 동안 억류된 채 체제 선전의 도구로 살아야 했던 미 육군 탈영병 젱킨스가 2년 전 오늘 별세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한국 주둔 미 육군 제1기병사단 8연대 1대대 병장 찰스 로버트 젱킨스(Charles Robert Jenkins, 1940.2.18~2017.12.11)는 1965년 1월 5일, 야간 순찰 도중 철책선을 넘어 월북했다. 입대 허용 연령에도 못 미치는 15세에 방위군이 됐다가 18세에 정식 육군에 입대할 만큼 군대를 좋아하고 군인을 동경했다는 그가, 맥주를 10병쯤 마신 상태에서 결연히 월북한 이유는 베트남 전쟁터에 파병될까 봐 두려워서였다.

그의 계획은 평양의 러시아 대사관에 난민 신청을 해서 난민 지위를 얻은 뒤 미ᆞ러 죄수 교환 등을 통해 훗날 미국으로 복귀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다시 없을 체제 선전의 도구인 그를 북한 당국이 놓아줄 리 없었다. 젱킨스는 2004년 10월 풀려날 때까지 만 39년 동안 북한의 선전 영화 속 ‘미제(美帝) 악당’의 단골 배우였고, 다양한 반제국주의 강연 등에 동원됐다.

그는 평범한 시민들보다는 나은 대우를 받으며 살았지만 형편은 늘 열악했고, 구타까지 당해가며 한글을 익히고 김일성 어록을 암기해야 했다고 한다. 1980년 만 40세의 그는 강제 납북된 21세 일본인 여성 소사 히토미와 사실상 강제 결혼해 딸 둘을 낳았다. 2002년 북일회담을 계기로 피랍 일본인의 본국 송환이 이뤄지면서 히토미가 먼저 일본으로 건너갔고, 젱킨스도 2년 뒤 두 딸과 함께 북한을 벗어났다.

주일 미군사령부에 자진 출두한 64세의 그는 미군 최초 월북 군인이자 최장 탈영병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던 중이던 조지 W. 부시 정부와 군 당국은 탈영병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리기 난처한 처지였지만,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 등의 요청과 국내외 여론에 밀려 30일 금고형의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 그는 훈련병(E-1)으로 강등돼 불명예 제대했다.

젱킨스-히토미 부부는 히토미의 고향인 사도(Sado)섬에 정착, 쿠키 가게 등을 운영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노년을 보냈다. 부부는 인터뷰와 자서전 등을 통해 북한의 감옥 같은 억압적 체제에 대해 서슴없이 비판하곤 했고, 특히 젱킨스는 말년까지 보복을 두려워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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