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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국회의장실에서 회동을 갖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심재철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 문 의장,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홍인기 기자

한국 정치는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한 통제 불능 상태다. 선거를 앞두고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강화된다. 그레고리 헨더슨의 저서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보듯 현대정치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양태다. 민주화 이후 보수와 진보의 10년 주기 정권 교체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공고화로 이어졌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민주주의는 위기에 직면했고 진영 정치의 강화는 정치 부재를 가져왔다. 정치가 사법의 종속 변수로 전락하면서 정치의 사법화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보수ᆞ진보 세력의 화해하기 어려운 대치는 산업화ᆞ민주화 세력 사이의 불화다. 광복 이후 좌우익의 대립을 거쳐 정부가 수립됐으나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 부정선거로 얼룩진 제1공화국은 4ᆞ19혁명으로 무너졌다. 이후 수립된 무능한 내각제 정부는 쿠데타에 의해 전복됐다. 경제성장에 모든 걸 걸고, 취약한 정통성을 안보와 경제로 보전하려 했던 박정희 정권의 성장 신화는 군부와 재벌, 관료의 삼각동맹 속에서 민주ᆞ인권 탄압의 대가였다.

민주화를 위해 저항한 세대가 보수라 지칭되는 세력과 대척을 이룬 건 역사의 필연이다. 이제 그들이 정권을 잡고 권력의 핵심이 됐다. 산업화로 대표되는 세력은 노쇠한 기득권의 대명사처럼 보인다. 박근혜 탄핵에 대한 역사적 입장을 아직도 정리하지 못하는 자유한국당이 이러한 진영을 대표하고 있다. 합리적 보수와 중도는 설 땅을 잃을 수밖에 없다. 도덕적 우월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내세우고 집권한 586세대는 민주화 세력을 대표한다. 그러나 이들도 기득권과 폐쇄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화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만 이들의 대립은 정치를 멈추고 민생을 고갈시킨다.

숱한 고소ㆍ고발 사건과 최근의 패스트트랙 및 필리버스터를 둘러싼 대립에서 국민들은 정치의 존재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다음 회계연도 예산이 헌법이 정한 법정 시한을 넘기는 것은 그들에게는 예삿일이다. 아무런 책임감이나 의무감을 느끼지 못하는 정치도의적 불감증은 권력에 중독된 한국정치의 필연일지 모른다.

이성과 논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부 수구 냉전 세력의 극단적 구호는 정상의 도를 넘은 무모한 주장들로서 시민사회의 정상적 의사소통 구조를 파괴하고 있다. 협치와 관용이 사라진 그 공간을 혐오와 대치가 들어섰다.

결국 정치가 풀어야 한다. 선거제 개혁이 이를 풀 수 있는 단초가 된다고 장담할 수 없으나 시도는 해봐야 한다. 상대만 탓하는 비난의 정치, 진영의 정치, 극한의 정치의 사슬을 끊지 못하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정치의 판을 바꿔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도가 이를 담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연동률에 따른 각 정파의 이해득실 계산으로 자칫 선거법이 누더기 법이 될 위기에 몰려 있다. 과감한 정치개혁이 전제되지 않으면 인적 물갈이도 허사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그러나 선거제를 바꾸는 실험을 이제는 할 때가 됐다. 대표되지 않는 계층이 1인 2표에 의한 연동비율을 높이면 그나마 국회에 진출할 길이 조금은 열릴 것이다. 물론 비례대표제가 없는 나라도 많고 그들도 민주주의를 잘 운영하고 있다. 반면 국회의원 전원을 비례대표로 하는 나라도 있다. 여야가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에 해당하는 사례를 무비판적으로 들을 일도 아니다.

오늘은 정기국회 폐회일이다. 곧 임시국회가 열릴 것이다. 패스트트랙 법안과 민생 법안 들을 국회가 어떻게 다룰지 지켜볼 일이지만 세대 교체와 물갈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수가 보다 잘 대표되도록 제도를 바꾸는 일이며, 선거법 개정은 최소한의 필요조건일 것이다. 한국당은 필리버스터와 비례대표를 폐지하는 선거법 주장을 철회하고, 민주당도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한국당 원내대표가 새로 선출됐으니 정치 복원의 더 없는 기회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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