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포트] 미혼 남성이 만든 세계 첫 '스마트 생리컵'

입력
2019.12.09 04:40
수정
2019.12.17 19:45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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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회] 스마트 생리컵 개발 ‘룬랩’ 황룡 대표

두 남자가 생리(월경)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마주 앉았다. 미혼인 웬 남자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획기적인 생리컵을 개발했다기에 궁금했다. 생리컵은 1회용 생리대와 달리 세척해 여러 번 재사용할 수 있는 생리용품이다. 왜 그는 ‘여성의 생리’에, 생리컵에 관심을 가졌을까.

“생리는 ‘여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류 절반이 반평생 동안 겪는 문제입니다. 이를 여성의 일로만 치부하면 답을 찾지 못합니다. 남성과 여성을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가 가로막아 여성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남자들은 관심을 가지면 안 되는 일로 생각하거든요. 정보통신기술(ICT)로 인류 절반이 겪는 문제의 의미를 분석해 해결하고 싶습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룬랩의 황룡 대표가 세계 최초로 반도체를 내장해 여성의 생리 정보를 측정하는 스마트 생리컵을 들어 보이고 있다. 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룬랩의 황룡 대표가 세계 최초로 반도체를 내장해 여성의 생리 정보를 측정하는 스마트 생리컵을 들어 보이고 있다. 홍인기 기자

◇”생리혈이 여성 건강의 블랙박스”

기발한 생리컵을 개발한 신생(스타트업) 기업 룬랩의 황룡(36) 대표는 인터뷰 시작부터 허를 찔렀다. 그는 생리에 대해 다르게 접근했다. 생리대 같은 1회성 해결책이 아닌 근본적인 답을 찾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여성들이 생리가 주는 생체 신호를 스스로 파악할 수 있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황 대표가 최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스마트 생리컵이다. 그가 2015년부터 연구해 개발을 마치고 내년 상반기 중 출시를 위해 시험 중인 스마트 생리컵은 내부에 미세한 반도체가 달려 있다. 이 반도체는 생리컵 이용자의 체온, 생리혈의 양과 색깔, 생리컵의 기울기 등을 자동 측정한다.

이를 위해 아주 미세한 반도체, 감지기(센서)와 초소형 햅틱모터, 극소형 배터리가 생리컵 내부에 들어 있다. 황 대표가 뜯어서 보여준 부품들은 쌀알만큼 작아서 언뜻 보면 제대로 구분하기 힘들다. “센서의 정확도가 뛰어나 생리 기간 중 체온 변화로 수면 상태까지 측정할 수 있어요. 사람이 잠들면 체온이 서서히 떨어집니다. 데이터를 보면 몇 시간 푹 잤는지 알 수 있죠. 수면 시간과 생리의 상관 관계를 파악하면 수면 조절로 생리 불순을 해결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햅틱모터는 생리컵이 거의 차면 미세한 진동을 보내준다. 진동을 느끼면 화장실에 가서 생리컵을 비우면 된다.

생리가 끝나면 생리컵을 통해 수집된 정보들이 블루투스로 이용자의 스마트폰 소프트웨어(앱)에 자동 전송된다. 생리와 관련된 이용자의 건강 정보가 생리컵과 스마트폰에 저장되는 셈이다.

황 대표는 생리혈을 여성 건강의 블랙박스로 정의한다. “지금까지 생리혈은 쓸모 없는 분비물로 여겼어요. 하지만 생리혈은 대변, 소변처럼 매달 사람의 건강 상태를 정기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각종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성들이 생리혈을 이용해 스스로 건강 상태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피는 외부에 노출돼 산소와 만나면 색이 변한다. 따라서 생리대 같은 생리용품으로는 생리혈의 색 변화와 양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반면 황 대표가 개발한 스마트 생리컵은 산소가 차단된 진공 상태에서 생리혈을 받아내 변색 전 상태를 알 수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룬랩이 개발한 이중 구조의 기능성 생리컵. 10여개의 관련 특허가 걸려 있다. 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룬랩이 개발한 이중 구조의 기능성 생리컵. 10여개의 관련 특허가 걸려 있다. 홍인기 기자

◇미국 아마존이 알아본 특허 생리컵

황 대표는 스마트 생리컵을 개발하며 2가지 부산물을 더 얻었다. 체내에 들어간 생리컵을 쉽게 꺼낼 수 있는 기능성 생리컵 ‘레오나 에어플로우’다. 이 제품은 내벽과 외벽의 이중구조와 그 사이로 공기를 채우고 빼낼 수 있는 통로가 있다. 이 공기 통로가 생리컵을 쉽게 빼내도록 돕는다.

원래 생리컵을 삽입하면 공기 압력, 즉 음압이 발생한다. 그래야 밀착돼 쉽게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꺼내기도 힘들다. 그렇다 보니 사용할 때 불편하고 기분도 나쁘며 위생 문제도 발생한다.

황 대표가 만든 기능성 생리컵은 공기 통로로 유입된 공기가 음압을 해제해 쉽게 빠지도록 해준다. 뿐만 아니라 음압 때문에 복통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데 공기량 조절로 복통을 줄일 수 있다. 그는 이 제품으로 대한민국 발명대전에서 특허청장상을 받았다.

이중 구조의 기능성 생리컵은 만들기 힘들다. 단순하게 안쪽과 바깥쪽 생리컵 2개를 붙이면 내부에 기포가 생기고 접착력이 떨어진다. 황 대표는 이를 특허 기술로 해결했다.

두 번째 부산물은 기존 생리컵 이용자들을 위한 ‘레오나 캡’이다. 역류 방지 뚜껑 역할을 하는 캡을 다른 업체의 생리컵에도 끼우면 넘치거나 외부로 흐르는 일을 막아준다. 캡은 쉽게 분리할 수 있어 간편하게 세척할 수 있다.

황 대표는 스마트 생리컵과 기능성 생리컵, 캡 등 관련 특허 10여개를 출원 및 등록했다. 스마트 생리컵은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인증까지 받았다.

황 대표가 만든 개발품의 진가를 먼저 알아본 곳은 세계 최대 인터넷 쇼핑몰인 미국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협의를 거쳐 내년 1월 이후 캡과 기능성 생리컵 등 룬랩 제품들을 판매한다. 룬랩은 캡 20달러, 기능성 생리컵을 40달러에 판매할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에 시판 예정인 스마트 생리컵의 경우 120달러를 예상하고 있다.

룬랩의 전용 무료 앱인 ‘룬’(loon) 앱을 이용하면 좀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앱에 가입하면 아마존에서 사용할 수 있는 10달러짜리 할인쿠폰을 준다.

룬앱은 스마트 생리컵이 취합한 이용자의 각종 생체 정보를 저장하고, 여성용품 판매 창구 역할을 한다. 스마트 생리컵이 없어도 룬앱을 이용하면 생리 정보를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생리컵 이용자를 위한 전세계에서 유일한 앱입니다. 생리 주기 등 다양한 관련 정보를 이용자가 앱에 직접 기록해 변화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앱에 데이터를 기록하면 룬앱 쇼핑몰에서 사용할 수 있는 토큰을 지급한다. 이용자는 토큰으로 룬랩 제품 등을 구입할 수 있다. 대신 룬랩은 앱에 저장된 데이터를 이용해 또 다른 기능성 생리용품을 개발한다. “토큰은 생리가 가치 있는 행위라는 점을 일깨워주는 보상입니다. 더불어 당신의 기록 행위가 인류 절반의 건강 개선에 기여하는 생산적 활동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죠.”

황 대표는 룬앱을 여성 건강 관리를 위한 플랫폼으로 키울 방침이다. “앱의 궁극적 목적은 측정 도구를 제공해 생리 정보를 기록하고, 이를 토대로 관련 용품을 개발해 여성 건강의 위협 요인을 줄이는 것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앱에 생리 정보를 저장하면 암호화폐인 토큰을 지급하고, 이 토큰으로 각종 여성용품 등을 구매하는 선순환 구조를 갖추게 된다. “이용자는 건강 정보를 제공해 토큰으로 보상 받죠. 또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개발한 제품을 함께 나누는 구조가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앱에 여성용 콘돔, 건강식품 등 다양한 제품업체들이 입점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저작권 한국일보]룬랩의 황룡 대표는 스마트 생리컵과 관련 앱을 통해 여성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룬랩의 황룡 대표는 스마트 생리컵과 관련 앱을 통해 여성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주문 제작 가능한 맞춤형 생리컵도 개발

룬앱에서 재미있는 것은 맞춤형 생리컵 주문 제작 기능이다. 앱에서 여러 디자인 중 원하는 모양과 용량 등을 선택하면 개인별로 맞는 전용 생리컵을 따로 만들어 보내준다. 여기에 이름이나 별명 등 글자도 새길 수 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3D 프린터로 틀을 만든 뒤 이를 통해 전용 생리컵을 제작해 보내줍니다. 선택에 따라 2,700가지의 다른 생리컵을 만들 수 있습니다.”

황 대표는 사업을 하며 80년 역사를 가진 생리컵 역사를 줄줄 꿰는 전문가가 됐다. 생리컵은 1930년대 미국 여배우이자 발명가였던 레오나 차머스가 만들어 특허를 냈다. 룬랩의 기능성 생리컵 상표 레오나는 바로 생리컵 발명가의 이름을 딴 것이다. “생리컵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남성들이 전사해 부족한 노동력을 여성으로 보충하며 등장했습니다. 여성들이 생리 때문에 노동에 차질이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탐폰’과 생리컵 등 체내용 생리용품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죠.”

탐폰은 1960년대 삽입을 돕는 어플리케이터라는 도구가 등장하며 확산됐다. “전세계 생리용품 시장에서 탐폰이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이릅니다. 탐폰과 패드형 생리용품을 같이 사용하는 비중이죠. 탐폰만 쓰는 사람도 40%를 차지합니다.”

생리컵은 1930년대에 고무로 만들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전쟁 물자인 고무를 구하기 힘들게 돼 시장 확대에 어려움을 겪었다. 다행히 1990년대 등장한 실리콘을 소재로 사용하면서 생리컵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황 대표는 전세계적으로 심각하게 대두하는 쓰레기 처리 등 환경 오염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생리컵 사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생리대에 들어가는 방수포는 오랫동안 썩지 않습니다. 여기 포함된 화학물질 등이 가려움증 등 피부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죠.”

미국은 2016년 환경 문제를 줄이고 여성 건강을 위해 생리컵이 확산되도록 생리컵을 의료용품 승인 목록에서 제외했다. 그래서 여러 회사들이 생리컵을 제조해 이용자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국내에서는 2018년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생리컵을 의약외품으로 판매 허가했으나 광고에 제약이 따르는 등 판촉 활동이 쉽지 않다.

국내에서는 법의 제약 때문에 앱으로 수집한 개인 정보를 활용하기 힘들다. “미국은 개인정보를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처리하면 공공재로 인식해 활용할 수 있으나 우리는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황 대표는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겨냥했다. “미국이 전체 생리컵 시장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우선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나중에 국내에서도 여건이 되면 확대해야죠. 국내는 아직도 각종 규제 때문에 건강관리 사업을 하기 힘듭니다.”

◇산부인과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바꿔 놓은 인생

황 대표의 사업은 아르바이트에서 비롯됐다. “대학 입학 전에 산부인과 1층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때 가장 많이 판매한 제품이 생리대와 임산부용 기저귀였어요. 처음에는 부끄러웠는데 익숙해지면서 생리에 대한 편견과 금기를 깨게 됐죠.”

황 대표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학창 시절 내내 사업을 했다. “21세때 애견용품 직거래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음악 저작권 관련 사업을 거쳐 룬랩이 세 번째 사업입니다.”

사업에 몰두하려고 대학도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그만뒀다. 2015년 여성건강관리 사업을 위해 룬랩을 창업했다. 이때 삼성종합기술원에서 20년간 의료기기만 연구한 한완택 박사를 기술책임자(CTO)로 영입하며 스마트 생리컵이 탄생하게 됐다.

황 대표는 한 박사를 “스승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구상을 사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6개월 동안 찾아가 여러 가지를 물었어요. 처음에는 반대했던 한 박사도 6개월 동안 같은 얘기를 하며 한 우물을 파는 것을 보고 합류했죠.”

룬랩은 성공 가능성을 인정받아 SK텔레콤, 퓨처플레이 등으로부터 20억원 이상 투자를 받았다. 창업 자금을 지원한 SK텔레콤에 들어가 1년 동안 준비를 한 뒤 분사했다. 지금도 SK텔레콤이 5% 이상 지분을 갖고 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겸 스타트업랩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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