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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의 양형 기준을 재정비해 주세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이번 국민청원은 성범죄 양형의 편차나 형평의 문제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은 성범죄 양형 기준의 양형 요소들, 특히 행위 책임의 경중이나 피해 요소를 판단할 때에 가해자 입장에 치중되어 있다는 문제 제기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의 양형 기준을 재정비해 주세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강간미수에 가까운 성추행을 당했으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든 피해자가 가해자의 입장에서만 판단하는 성범죄 양형을 참을 수 없다며 제기한 청원이었다. 이 청원의 참여 인원이 20만을 넘겼던 것은 전 남자친구의 동영상 유포 협박 등 데이트 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던 가수 구하라씨의 사망이 알려진 다음 날이었다. 이 사건의 1심 형사판결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는 사실이 재조명되면서 관대한 양형에 대한 여론의 분노가 집중된 것이다. 이제 청와대는 국민에게 성범죄 양형 기준 재정비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한다.

사실 성범죄의 관대한 처벌에 대한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2000년대에는 주로 아동성범죄에 대한 낮은 처벌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었다. 아동성범죄 형량을 강화하는 개정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여러 감경 요소로 실제 형량이 낮게 선고되는 것이 알려진 대표적인 계기가 조두순 사건이다. 2008년 8세 여아를 대상으로 강간상해 범죄를 저지르고 피해자에게 영구적인 장해를 초래한 조두순에게 징역 12년이 선고되었는데,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했음에도 가해자가 고령이고 술에 취해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을 근거로 감경된 것이다.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회나 청와대 홈페이지에 항의가 빗발쳤는데, 당시 대법원은 “국민의 법 감정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양형 기준에 따라 내려진 판결”이라고 답변하였다.

이런 대법원의 답변은 분명 법률과 사법시스템에 기초한 것이긴 하다. 형법전에 범죄마다 규정되어 있는 형량은 법정형으로, 실제 선고되는 형량은 법률상 여러 양형 기준을 종합하여 재판에 의해 결정된다. 상습적인 범행에 대해서는 형량을 가중하도록, 앞서 조두순 사건에서처럼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한 경우에는 감경하도록 법률에 규정되어 있다. 그 외에 재판부가 사안에 따라 범행 동기나 수단, 방법과 같이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행위뿐만 아니라 범행 전후 가해자의 태도나 피해 등을 고려하여 임의로 형량을 감경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이때 가해자의 재범가능성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형벌은 가해자에게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행위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교화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해자의 행위 책임을 부양가족 여부나 건강 상태 등 범죄와 관련 없어 보이는 다른 요소들과 비교 형량해서 교도소에 보내어 처벌하는 것이 재범 방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양형의 기준이 법률에 규정되어 있긴 하지만 그 해석에 있어 개인 법관의 자의적인 판단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법원별로 또는 법관별로 유사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양형을 선고하는 경우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법원은 2009년부터 양형편차를 줄이고 객관성과 형평성을 강화할 목적으로 주요 범죄 양형 기준을 마련하여 권고하고 있다. 현재 양형기준제에 따라 징역형의 형량이나 집행유예 선고 여부를 결정할 수 있으며, 성범죄와 관련해서는 알코올이나 약물로 인한 심신미약으로 감경하는 것을 배제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 2015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양형기준제 시행평가에 따르면, 양형기준제 실시 이후 재판부의 특성이 양형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이러한 노력이 어느 정도는 결실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국민청원은 성범죄 양형의 편차나 형평의 문제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은 성범죄 양형 기준의 양형 요소들, 특히 행위 책임의 경중이나 피해 요소를 판단할 때에 가해자 입장에 치중되어 있다는 문제 제기이다. ‘카메라 이용 등 촬영죄’가 벌금형 위주로 처벌되는 것은 촬영과 유포 행위를 직접적인 가해 행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경미하게 보기 때문이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은 사회적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의 중한 피해를 경험하지만, 이 경험들은 양형에서 제대로 고려되지 않는다.

앞선 성추행이나 데이트 폭력 사건에서 기소유예나 집행유예가 가능했던 것은 범행 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적극적으로 행동했다면 가해자의 성범죄 행위 책임이 덜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영상 촬영에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응했다면 가해자 책임은 줄어들며, 연애 관계에서 가해자의 폭력은 계획적인 동기가 아니라 우발적인 범행으로 감경된다. 결국 양형 기준을 따르더라도 피해자다움에 대한 편견이나 피해 영향에 대한 부주의한 평가가 가해자의 책임을 판단할 때에 반영되며, 그 결과 가해자에게 관대한 양형에 이르는 것이다.

이제 성범죄 양형 기준의 해석과 판단에 성범죄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개입하지 않는지 점검해야 할 때이다. 이번 국민청원 답변에서는 국민의 법감정과는 다른 사법적 원칙을 주장하기보다는 법원이나 검찰 스스로 가해자 편향의 해석을 하고 있지 않은지 진지한 성찰과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이 나타나길 기대한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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