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레터] 고래고기, 울산시장, 청와대…그 검찰 수사관은 왜 목숨을 버렸나

입력
2019.12.05 08:00

 검ㆍ경 수사 갈등 이어 靑 지방선거 개입 여부 등 논란 지속 

 김기현, 황운하, 백원우 등 관련 인물 둘러싼 의혹 증폭 

장생포, 고래의 추억. 코리아타임스 자료사진
장생포, 고래의 추억. 코리아타임스 자료사진

울산 장생포의 명물은 고래고기입니다. 매년 고래축제도 열리는데요. 인근에는 고래고기 효능을 자랑하는 식당도 즐비하고요. 한 접시에 10만원쯤, 제법 비싼 가격에 팔리지만 없어서 못 판다는 게 울산 고래고기입니다. 지역민들에게는 고향 음식이기도 한 이 고래고기를 둘러싼 논란이 시작된 건 4년 전인데요. 일명 ‘울산 고래고기 사건’이 최근 청와대, 검찰, 경찰, 정치권 전반을 흔들고 있습니다. 당시 울산경찰청장으로 수사 책임자였던 황운하 대전경찰청장을 비롯해 김기현 전 울산시장,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송철호 울산시장, 서울동부지검 수사관 A씨, 그리고 검찰까지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는데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울산 고래고기 사건이 뭐길래? 

울산경찰청이 압수된 고래고기 일부를 포경업자에게 돌려준 검찰을 상대로 수사에 착수하며 양 기관이 갈등을 빚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강원 삼척시 해상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밍크고래. 연합뉴스
울산경찰청이 압수된 고래고기 일부를 포경업자에게 돌려준 검찰을 상대로 수사에 착수하며 양 기관이 갈등을 빚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강원 삼척시 해상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밍크고래. 연합뉴스

4년 전 고래축제를 하루 앞둔 2016년 5월 25일 울산에서 밍크고래 불법포획 사건이 터집니다. 판매 총책 등이 구속되고 고래고기 27톤(시가 40억원)이 압수됐어요. 이듬해 사건 담당 검사가 이때 압수된 고래고기 21톤을 업자들에게 되돌려줬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2차전이 벌어졌죠. 환경단체는 “업자들이 이 고기로 30억원 상당의 이익을 올렸다”고 주장했어요.

환경단체는 “검찰이 장물을 유통한 꼴”이라며 울산경찰청에 울산지검 관계자를 고발했습니다. 경찰은 업자 측 변호사가 울산지검 검사 출신이고 업자의 계좌에서 수억원이 인출된 정황 등을 고리로 전관 변호사와 담당 검사 간 유착 의혹을 제기했는데요. 이로 인해 검찰과 경찰의 갈등이 불거졌습니다.

 ◇김기현 전 시장, 황운하 청장은 무슨 상관인데?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작년 6월 실시된 울산시장 선거에 대해 선거 무효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오대근 기자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작년 6월 실시된 울산시장 선거에 대해 선거 무효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오대근 기자

김기현 전 시장은 지난해 6ㆍ13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현 송철호 시장에게 패배했습니다. 그런데 선거를 전후해 김 전 시장 측근 비리 관련 경찰 수사가 진행된 겁니다.

울산경찰청은 김 전 시장 측근 비리 의혹 수사를 위해 선거를 치르기 3개월 전인 지난해 3월 16일 울산시청 시장 비서실과 관련 부서 등 5곳을 압수수색 했는데요. 이때 김 전 시장을 공천한 한국당은 황운하 청장을 상대로 표적 수사 의혹을 제기하고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경찰이 선거에 개입하는 바람에 패배했다는 게 김 전 시장 측 논리입니다.

황운하 대전경찰청장. 연합뉴스
황운하 대전경찰청장. 연합뉴스

황 청장은 “터무니없는 정치 공세”라는 입장입니다. 그는 “행여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어서 (김 전 시장을) 참고인으로 신분을 전환시키고 한 번도 소환을 안 했다”고 반박했죠.

 ◇청와대 하명사건 의혹은 뭐야? 

이 와중에 고래고기 사건이 다시 등장합니다. 최근 수사를 재개한 검찰은 울산경찰청의 당시 김 전 시장 측 수사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하명에 따라 이뤄졌는지 살피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이를 강하게 반박했죠. 백원우 당시 민정비서관이 접수된 비위 첩보를 규정(대통령비서실 직제 제7조)에 따라 수사기관인 경찰에 이첩했을 뿐이고, 이를 이관하지 않으면 오히려 직무유기라는 겁니다.

백 전 비서관 산하 검찰과 경찰 출신 행정관 두 명이 지방선거 전인 지난 1월 울산에 간 것이 김 전 시장 수사를 위해서 아니냐는 의혹도 한국당은 제기하고 있죠. 그런데 청와대는 고래고기 사건으로 인해 검찰과 경찰 갈등이 심각했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기 위해 갔을 뿐이라고 해명하며 다시 고래고기 사건이 언급된 겁니다.

또 김 전 시장 관련 수사는 2017년 10월, 11월 각각 경찰과 검찰 내사가 시작된 상태로, 청와대 비위첩보 이첩 이전부터 수사가 시작됐으니 ‘하명사건’이란 용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게 청와대 반박 논리입니다.

 ◇그럼 그때 울산 간 행정관에게 물어보면 되겠네? 

검찰은 수사를 위해 전직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 현직은 동부지검 수사관이었던 A씨를 지난 1일 오후 6시에 참고인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A 수사관은 조사를 앞둔 이날 오후 3시쯤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휘하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검찰 수사관 A씨가 1일 숨진채 발견된 서울 서초구 한 사무실. 연합뉴스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휘하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검찰 수사관 A씨가 1일 숨진채 발견된 서울 서초구 한 사무실. 연합뉴스

A 수사관은 하명 수사 의혹을 풀어줄 ‘키맨(핵심적인 인물)’으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극단적 선택을 하자 여권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낳은 비극”이라고 성토했습니다. A 수사관이 검찰 수사를 앞두고 주변에 압박감과 이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했다는 겁니다.

특히 A 수사관이 윤석열 검찰총장 앞으로 남긴 별도 유서를 두고 해석이 분분한데요. “윤석열 총장께 면목이 없지만, 우리 가족에 대한 배려를 바랍니다”라는 문장이 검찰의 별건수사 압박 증거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반면 검찰은 “별건수사로 A 수사관을 압박한 사실이 전혀 없고, 적법 절차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울산에 같이 간 행정관은 뭐라고 했어? 

A 수사관과 울산에 동행한 B 행정관의 설명은 지난 2일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B 행정관 역시 고래고기 사건 관련 검ㆍ경 갈등 확인차 울산에 갔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인 동선도 알려졌는데요. 청와대는 B 행정관이 “본인과 고인(A 수사관)은 우선 울산해양경찰서를 (1월 11일) 오후 3시쯤 방문해 고래고기 사건에 대한 내용과 의견을 청취하고 나왔다. 이후 본인은 울산경찰청으로, 고인은 울산지검으로 가서 각 기관의 의견을 청취하기로 했다. 본인은 오후 5시 넘어서 울산경찰청에 있는 경찰대 동기 등을 만나 경찰 측 의견을 청취한 뒤 귀경했다. 고인은 울산지검으로 가서 의견을 청취하고 따로 귀경했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건데? 

이런 상황에서 경찰에 있던 A 수사관의 유류품, 특히 휴대전화를 검찰이 압수수색해 또 다른 논란을 낳았습니다. 어차피 검찰로 넘어갈 증거품이었는데, 검찰이 압수수색까지 동원해 휴대전화를 확보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이 생긴 건데요. 검찰이 켕기는 게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죠. 하지만 검찰은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과 연관돼 있고, 법정에서 영장 없는 압수수색의 증거능력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절차에 따라 압수했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A 수사관의 죽음 이후 잠시 수사의 고삐를 늦췄던 검찰이 4일 오전 청와대를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하면서 청ㆍ검 갈등은 일파만파 확산일로입니다. 여기에 검ㆍ경 수사권 조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기싸움이 맞물려 내년 4월 총선까지 계속 시끄러울 것 같습니다. 과연 울산 앞바다 고래들은 이 복잡한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을까요?

 ☞여기서 잠깐, 

 김기현 측근 비리 의혹 수사는 현재 진행 중?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의 시발점인 김 전 시장 측근 비리 의혹 수사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또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건을 검찰이 불기소 처분해 검ㆍ경 갈등도 진행 중인데요. 황 청장은 “지난해 7월 송인택 울산지검장이 부임한 이후 노골적인 수사방해로 이른 바 ‘김기현 전 시장 측근비리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며 “고래고기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했어요. 반면 검찰은 경찰의 기소가 무리했다고 보고 있죠.

김 전 시장 측근 비리 의혹은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시장 비서실장이 특정 레미콘 업체에 일감을 몰아두고 접대를 받았는지, 김 전 시장 친형과 동생이 아파트 시행권 알선에 관여하고 법인 자금을 횡령했는지, 시장 친인척이 불법 정치 자금을 받았는지 등입니다. 이중 비서실장 일감 몰아주기 및 접대 의혹과 친형, 동생의 아파트 시행권 알선 관여 의혹에 대해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고, 검찰은 불기소 결정을 했죠. 불법 정치자금 건의 경우 불법 후원금을 제공한 업자 등 5명과 이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김 전 시장 측 회계책임자 1명 등 모두 6명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이 진행 중인 상태입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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