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몇 번 만에…” 수능 성적 사전유출 초유의 사태

입력
2019.12.02 18:01
수정
2019.12.02 23:5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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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 312명, 성적 발표 3일 전 평가원 홈피서 확인

재수ㆍ삼수생 등에 뚫려… 허술한 보안시스템 도마에

성기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지난달 14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룸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경향을 발표하기 앞서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성기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지난달 14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룸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경향을 발표하기 앞서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수험생 300여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홈페이지에서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을 공식 발표보다 3일 먼저 확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약 50만명이 치르는 국가 최대 규모 시험의 보안 시스템이 클릭 몇 번 만에 맥 없이 뚫리면서, 교육당국의 허술한 관리ㆍ감독이 도마에 올랐다.

2일 교육부에 따르면 1일 오후9시56분부터 2일 오전1시32분 사이 수험생 312명이 평가원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점수를 확인했다. 일부는 성적표를 출력하기까지 했다. 수능 성적 공식 발표일인 4일 오전9시를 3일 앞둔 시점이었다. 1994학년도 수능 도입 이래 부정행위, 출제오류 등 여러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성적 사전 유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가원은 이날 “현재 성적 자료를 수능 정보 시스템에 탑재해 검증 중인 기간”이라며 “사전 조회한 312명은 수능 성적증명서 발급 서비스 소스코드에 접속해 해당연도의 값을 ‘2019’에서 ‘2020’으로 변경하는 방식으로 본인의 성적을 사전 조회했다”고 설명했다.

2일 한 수험생 커뮤니티에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를 미리 출력하는 방법이 올라오면서 수능 성적 공식 발표를 3일 앞두고 일부 수험생이 수능 성적을 확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연합뉴스
2일 한 수험생 커뮤니티에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를 미리 출력하는 방법이 올라오면서 수능 성적 공식 발표를 3일 앞두고 일부 수험생이 수능 성적을 확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연합뉴스

이번 사태는 1일 오후 늦게 한 수험생 온라인 커뮤니티에 ‘수능 성적표를 미리 발급 받았다’고 인증하는 글이 올라오면서 시작됐다. 이어 해당 글 작성자가 성적을 손쉽게 확인하는 방법을 올렸고, 이후 1, 2시간 만에 주요 수험생 커뮤니티 사이트는 성적 인증 글로 도배됐다. 이를 바탕으로 과목별 등급 커트라인을 유추하는 글도 쏟아졌다.

다만 성적 조회가 수능 성적 이력이 있는 재수생 이상에 한 해서만 가능해 유출 규모는 더 커지지 않았다. 또 공인인증서 로그인을 통해 본인 성적만 볼 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수시모집의 대학별고사가 지난 주말 대부분 마무리된 것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일부 수험생은 수능 성적을 미리 알면 대학별고사 응시 여부를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교육부 파악 결과, 아직 대학별고사가 끝나지 않은 대학은 전국에 2곳으로 이 중 모집정원이 1명인 학과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사고는 막았지만, 국내 최대 규모의 시험을 주관하는 평가원의 보안 시스템이 클릭 몇 번에 무너진 만큼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감사원이 이미 지난해 8월 평가원의 중등 교원 임용 시험 관리 실태를 감사하고 “평가원의 온라인 시스템 전산 보안 관리가 소홀하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평가원의 늑장 대응도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평가원은 처음 이상 접속이 발생하고 약 3시간30분이 지난 2일 오전1시33분에야 교육부를 통해 상황을 인지, 관련 서비스를 차단했다.

성적을 사전 조회한 수험생까지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도 논란거리다. 송근현 교육부 대입정책과장은 “로그온 기록이 남아 있다”며 “(수능 성적을 미리 확인한 것이)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들면 (사법 처리를 할 수 있을지) 법리 검토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수능 성적을 부정 확인한 인원을 전원 0점 처리하라”며 “불법적으로 획득한 정보를 이용하는 수험생들에게 법을 준수하는 일반 수험생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청원하는 글이 올라왔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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