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조국 사태가 남긴 반면교사들

입력
2019.12.02 04:40
30면
유재수캐리커처/ 배계규 한국일보 화백
유재수캐리커처/ 배계규 한국일보 화백

가족비리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모습은 상당히 생경했다. 일반 서민은 물론이거니와 전직 대통령이나 대기업 총수 누구도 묵비권을 행사하며 검찰에 당당히 맞섰던 장면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10여년 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소송을 당해 서울중앙지검 검사실로 불려가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 입에 침을 묻혀가며 방어권을 행사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검찰 앞에서 진술을 거부하는 용기는 상상조차 어렵다.

솔직히 조국 교수(피의자로 불려와 묵비권을 행사하는 그를 검찰은 장관이 아니라 교수라고 불렀다) 덕분에 진술거부권이 헌법상 권리인 것을 새삼 깨달았다(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헌법 12조 2항). 그러면서도 불과 얼마 전까지 검찰 조직을 지휘ㆍ감독하는 법무부 수장을 지낸 국립대 교수가 국가 소추기관의 존립 근거를 무력화하는 모습이 썩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런 비평을 들은 수도권 지역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조국 교수의 기여로 사실상 사문화한 진술거부권의 헌법적 가치가 되살아났다”고 농담 삼아 의미를 부여했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동시대인들이 배운 게 한 둘이 아니다. 진술거부권의 가치를 새삼 깨달은 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검찰개혁의 상징처럼 등장한 조국 법무부 장관은 36일의 짧은 재임기간 동안(역대 법무부 장관 가운데 여섯 번째 단명) 특수부 사실상 폐지, 피의사실 공표 금지 등 과거 어느 정권에서도 이루지 못한 개혁과제를 밀어붙였다. 개혁 주체가 굳이 밝히지 않더라도 국민의 주권과 인권을 향상시키는 주요한 과업들이다.

조국 사태를 통해 우리 사회는 무엇보다 공정과 정의의 룰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었다. 흙수저들은 접근조차 불가능한 그들만의 리그에서 거래되는 특혜성 스펙(검찰 수사 결과 이 또한 조작과 변조의 불법이 드러났지만)에 2030세대는 ‘이게 공정이고 정의냐’고 되물었고, 4050세대는 제도개혁을 요구했다. 교육부가 정시를 40%까지 확대하는 개혁방안을 제시한 건 공정을 가장한 불공정 게임을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시대적 요구 때문일 것이다. 때마침 정치권에 불어닥친 586 세대교체론 또한 청년세대의 단순한 기성세대 혐오와는 다르다. 사회적 자산이 특정 세대에게 과도하게 쏠리는 현상에 대한 경계일 텐데, 이 또한 조국 사태의 반성적 회고가 아닐 수 없다.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의 비리나 지난해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은 조국 사태의 연장전이면서 권력형 비리로 번질 수 있는 현재진행형의 화약고다. 친문 호위 그룹에서는 “개인비리 혐의를 확보하지 못한 검찰이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는 것처럼 기소거리를 찾을 때까지 탈탈 털겠다는 태세다”라며 ‘기우제 수사’의 불만을 드러내지만, 저잣거리에는 ‘과연 조국 민정수석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라는 불신과 의혹이 파다하다. 두 사건 모두 조국 교수가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 벌어진 일로, 진행되고 있는 수사의 방향을 감안하면 검찰의 칼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두 사건은 검찰수사와 재판을 통해 진위 여부가 규명될 것이다. ‘유재수 시한폭탄’이 조국 교수를 넘어 윗선 어디까지 번질지,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방화벽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용할지도 검찰수사와 여론의 향배에 달려 있을 것이다. 다만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는 법과 시스템을 벗어난 조국 민정수석실의 기강해이가 도를 넘는다. ‘믿을 사람은 우리 편밖에 없다’는 그들만의 리그 인식이 징계절차 없이 개인비리를 무마하고, 직제에 없는 별도 특감반을 가동하는 그릇된 국정운영의 배경이었다면 상황은 자못 심각하다. 검찰개혁과 교육개혁에 이어 청와대 개편은 물론, 국정운영 전반을 일대 점검하지 않는다면 이번 사태는 조국 교수 선에서 진화되기 어려워 보인다.

김정곤 사회부장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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