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바람직한 중앙-지방 협력 시스템

입력
2019.12.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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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이 다양하면 각각의 대표가 참여하는 게 민주적이다. 만약 특정 집단이 배제된 채 정책이나 현안이 결정된다면 그 자체로 정당성이 없을뿐더러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단체는 광역 17개, 기초 226개로 구성된다. 기초는 다시 시 75개, 군 82개, 자치구 69개로 구성돼 매우 다양하다. 지방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 어려운 것은 각 지역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가 다양하고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재정자립도만 봐도 서울시는 82%이지만 강원도는 28%이다. 강남구는 66%이지만 전남 신안군은 8% 수준이다. 자체 재원을 확충하려 해도 재정자립도가 30%를 넘지 못하는 기초단체는 언감생심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런 지자체가 150여개나 된다. 지방의 이익을 대변한다면 과연 이들 중 누구를 대변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결국 지방정부의 다양성을 고려한다면 지방정부의 대표성을 반영하는 거버넌스 설계가 중요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논의되는 ‘중앙-지방 협력회의’의 구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원래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제2국무회의 구성을 공약했다. 그러나 제2국무회의는 헌법 개정이 무산되자 포기됐고, 중앙-지방 협력회의라는 이름으로 대통령과 ‘17개 시ㆍ도지사’로 구성된 협의체 설치가 논의되고 있다.

시ㆍ도지사 협의체는 정치적 위상이나 영향력 등 여러 측면들을 고려할 때 중앙과 대등하게 임하면서 지방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중앙-지방 갈등의 주요 원인이 지방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설계하면서 당사자인 지방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배제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수긍이 간다. 향후 갈등 구조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중앙과 지방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정책 결정 과정을 논의할 수 있는 정부 간 협력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은 바람직하고 올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지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정책 협의에 대해 시ㆍ도지사만 독점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대표성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광역 시ㆍ도와 함께 별도의 선거로 민주적 정당성이 부여된 기초자치단체인 시ㆍ군ㆍ구는 지방행정의 고유한 사무를 처리하는 독자적인 지방자치의 주체이다. 따라서 광역 시ㆍ도가 당연히 기초자치단체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다.

협력체에 기초자치단체의 참여가 차단된다면 시ㆍ군ㆍ자치구의 의견이 중앙정부 정책수립 과정에 충분히 반영될 수 없게 될 것이다. 당연히 주민들의 실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인 시ㆍ군ㆍ구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대표성을 보장해야 한다.

현재 지방자치법 제165조의 규정에 따라 지방 4대 협의체(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가 구성돼 있다. 당연히 이들 협의체의 구성원인 기초 지방정부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일본은 2011년 ‘국가와 지방 간 협의의 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중앙-지방 간 총괄적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일본은 이를 통해 지방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의 정책 기획ㆍ입안 및 실시에 대해 관계 장관 및 지방 6단체(도도부현지사협의회, 도도부현의회의장협의회, 시장협의회, 시의회의장협의회, 정촌장협의회, 정촌의회의장협의회)의 대표자가 사전 협의를 함으로써 국가 정책의 효율적 추진을 도모하고 있다.

중앙과 지방의 협력시스템 구축이라는 취지에 맞게, 그리고 올바르게 기능하기 위해 시ㆍ도지사만을 포함시키는 협력체계보다는 광역과 기초, 집행부와 의회를 모두 포괄하는 협의체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협의체 구성원도 각각의 주체를 대표할 수 있도록 동일한 인원으로 구성돼야 민주적이다. 이럴 경우 다양한 주체들이 이해관계를 숙의를 통해 배려하는 포용국가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원희 국립 한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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