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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 커피 생산과 가난의 상관관계
우간다 커피조합의 청년들과 엘곤산 기슭의 한 커피 농가를 방문했다. 대낮이지만, 창문이 없어 문을 활짝 열지 않으면 실내가 어두컴컴하다. 집 안 세간살이는 한눈에 봐도 열악하다. 최상기씨 제공

엘곤산은 우간다와 케냐의 국경을 가르는 4,300m의 높은 산으로,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화산이다. 산의 서쪽 사면, 해발 2,500m 이하에 위치한 부기수(Bugisu) 지역에서 좋은 아라비카 커피가 많이 생산된다. 주로 7월부터 시작된 수확은 이듬해 2월까지 길게 이어진다. 잘 익은 엘곤의 커피는 무화과나 건포도처럼 달콤하면서도 상큼한 신맛이 특징이다. 대부분 유기농으로 재배되지만 조금씩 비료의 사용도 증가하는 추세다. 엘곤산의 가파른 절개지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 부품보(Bufumbo) 타운을 찾았다.

마을 이장이 이끄는 대로 산기슭을 따라 오른다. 잠시 소나기가 지나간 터라 오르막 길은 진창을 이루고 있어 한걸음 내딛기도 어렵다. 군데군데 커피 나무들이 심어져 있지만 텃밭이라고 얘기하기도 무색할 정도다. 그저 집 주변에 빈 터가 있어서 커피를 심은 것으로, 밭이라고 하기보다 정원수처럼 보인다.

우간다의 커피 농사도 에티오피아처럼 주로 소규모 정원식 농장으로 경작된다. 커피 재배 농가들은 평균 1에이커(4,000㎡)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여기서 매년 800㎏의 커피를 수확한다. 이 정도로 수확한 커피를 판매하면 1년에 약 1,200달러를 버는데 이 돈은 아이들의 교육과 생계를 위해 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진 빚을 갚는 데 사용한다.

흙담으로 지어진 소박한 농가 안으로 들어섰다. 어두컴컴한 내부에는 작은 테이블과 직접 만든 것으로 보이는 등받이 없는 벤치가 있다. 대낮인데도 어둑하다. 창문이 없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출입문을 활짝 열어야 겨우 실내가 눈에 들어온다. 주인 부부와 수인사를 건네고 어느새 달려온 아이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커피 농부 가족들의 미소만으로도 코끝이 찡해온다. 이들에게 가난이라는 단어는 풍요의 반대말이 아니다. 가난은 생계를 위협하는 절벽과도 같은 것, 그들에게 가난은 영원히 벗어나기 어려운 생존의 굴레이자 끊임없는 사투의 대상이다.

에티오피아 등 이웃한 아프리카의 커피 산지들처럼 우간다의 커피 농부들, 특히 산악 지역의 소규모 아라비카 재배 농민들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커피를 팔아 힘겹게 벌어들인 돈은 농민들의 무지와 금융에 대한 약점으로 인해 중매인들에게 빼앗긴다. 농민들은 커피 체리 단계-우간다 언어로 키보코(Kiboko)라고 부른다-를 넘어서는 부가가치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수확 이후의 건조, 탈곡, 선별, 물류 등의 생산 공정에서 얻어지는 추가적인 이득이 전혀 없다.

반대로 일부 영리한 커피 중개상인들은 농부들이 커피 열매 상태의 생산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막는다. 농부들은 커피를 수확하기 전에 이미 브로커들에게 판매할 것을 전제로 이들에게 돈을 빌린다. 농부들은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할 뿐 아니라 늘 빚 속에 허덕이며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또한 이러한 빈곤의 악순환은 커피 그 자체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대개 수확한 커피 열매 무게를 기준으로 브로커들에게 넘기기 때문에 농부들은 커피 품질을 높이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 결국 익지 않은 체리나 과발효된 체리가 같이 뒤섞인 수확물을 갖고 오기도 하는데 좋지 않은 품질로 해외 바이어들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이유가 된다.

일부는 밀수로 국경을 넘기도 한다. 악덕 커피 브로커들은 엘곤산 인근의 우간다 커피를 저렴하게 사서 비싼 가격의 케냐산으로 둔갑시킨다. 이런 일들은 우간다 커피가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 받는 데 방해가 될 뿐 커피 농가의 이익과도 무관하다.

친절한 미소를 잃지않던 커피 농가의 부부. 그들에게 커피는 온 가족을 먹여 살리는 생명수 같은 존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커피 때문에 그들은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최상기씨 제공

이웃 나라인 에티오피아, 케냐와 마찬가지로 커피는 우간다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농작물이다. 우간다 국민의 73%는 농업에 종사한다. 이들은 옥수수, 바나나, 카사바, 콩 등의 식량 작물과 수출 작물인 커피, 면화, 차, 담배 등을 재배한다. 농업은 우간다 수출의 절반 이상인 53% 가량 되는데 이중 커피는 18% 정도다. 다른 작물(면화 1%, 차 4%, 담배 5%)에 비해 압도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간다는 약 38만 헥타르의 커피 농지에서 연 약 21만톤 정도의 커피를 생산한다. 이를 위해 50만여 가구, 280만명의 사람들이 커피와 관련된 생계에 의존하고 있다. 우간다 사람들은 커피보다 차를 마시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생산된 커피는 대부분 외국으로 수출된다.

우간다처럼 커피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들은 대개 가난하다. 우간다의 경우 전체 인구의 약 42%가 하루 1.9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극빈층이다. 커피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8%로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이웃나라 부룬디의 경우 극빈층 비율은 72%에 달한다. 38%의 수출을 커피에 의존하는 르완다 또한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인 55%가 극빈층으로 분류된다.

전체 수출액의 3분의 1 가량이 커피인 에티오피아도 인구의 37%는 극빈층이다. 중남미에서 극빈층 비율이 높은 온두라스(16%)에서도 커피는 두 번째로 중요한 수출 작물이다. 커피에 대한 산업 의존도가 높을수록 극빈층 비율, 다시 말해 국가와 국민들의 빈곤율이 높은 함수관계를 보여준다. 열대의 고산지대라는 지형적 특성이 커피 재배에 적합해 많은 농가들이 커피를 생산하지만 농업적 차원에서 커피의 부가가치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최빈국 커피 생산국들은 브라질처럼 대량화, 기계화, 그리고 고밀도 생산 역량을 갖추지 못해 농가들의 생산성은 더 떨어지고 반대로 빈곤율은 높다. 커피가 수출 중심의 농작물이어서 낮은 국제 시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도 좀처럼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반면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커피대국 브라질의 경우 매년 엄청난 양의 커피를 생산해내고 있지만 이 나라 총 수출에서 차지하는 커피의 비중은 2.8% 수준에 불과하다.

아프리카의 커피 생산 극빈국들의 경우 국가 산업 중 커피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가난한 것인지, 아니면 커피의 낮은 국제 시세 때문에 다른 나라들보다 커피 의존도가 높은 것인지는 닭과 달걀의 문제다. 분명한 것은 농업의 차원에서 커피는 부가가치가 매우 낮은 작물이고, 생산국과 소비국 간에 가장 불평등한 작물이라는 점이다. 특히 대다수 아프리카의 소농들에게 커피는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빈곤의 굴레고, 커피가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오랜 경제적 어려움 속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엘곤산 산자락을 떠나는 시간, 이미 마을에는 깊은 어둠이 내려와 있었다. 물을 긷거나 저녁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분주히 오가던 사람들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거리는 안개 가득한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일행을 태운 차는 짙은 어둠을 뚫고 수도 캄팔라로 향했다. 문득 낮에 방문했던 농가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궁금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공간 속에서 아이들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고 어른들은 산 속에서 들려오는 들개들의 울음소리에 잠을 설치고 있을지 모르겠다. 엘곤산의 밤안개보다 무겁고 음습한 가난의 무게가 내리누르는 그들의 집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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