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당신] '노벨상 최악의 스캔들' 한림원 性비리를 들춰내다

입력
2019.12.02 04:47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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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 다니우스 

사라 다니우스가 없었다면 아마도, 2017년 말 폭로된 '한림원 성 스캔들' 은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그는 스웨덴 문화계 최고 권위의 한림원의 이름으로, 사태 초기에 성폭력 피해자들의 진술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선언했다. 한림원 사상 첫 여성 종신서기였던 그는 그렇게 조직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환부를 도려내고자 했고, 2018년 사실상 쫓겨났다. 하지만 스웨덴 한림원도 그로 하여 어느 모로나, 전과는 같지 않게 됐다. 2017년 12월 스톡홀름 콘서트 홀 노벨상 시상식장의 사라 다니우스. 로이터 연합뉴스.
사라 다니우스가 없었다면 아마도, 2017년 말 폭로된 '한림원 성 스캔들' 은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그는 스웨덴 문화계 최고 권위의 한림원의 이름으로, 사태 초기에 성폭력 피해자들의 진술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선언했다. 한림원 사상 첫 여성 종신서기였던 그는 그렇게 조직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환부를 도려내고자 했고, 2018년 사실상 쫓겨났다. 하지만 스웨덴 한림원도 그로 하여 어느 모로나, 전과는 같지 않게 됐다. 2017년 12월 스톡홀름 콘서트 홀 노벨상 시상식장의 사라 다니우스. 로이터 연합뉴스.

스웨덴 일간지 다겐스 뉘헤테르(Dagens Nyheter)지 기자 마틸다 구스타프손(Matilda Gustavsson, 1987~)의 2017년 11월 21일자 기사로 많은 일들이 시작됐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학술원(Swedish Academy, 통칭 한림원)을 비롯, 스웨덴 문화계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한 남자가 1996년 이래 약 20년 간 여성들을 상대로 강간을 포함한 성폭력을 상습적으로 자행해왔다는 의혹을 폭로한 기사였다. ‘피해 여성’ 18명의 증언을 토대로 쓴 그 기사에서 기자는 “그 남성이 스톡홀름과 프랑스 파리의 한림원 소유 아파트에서도 여러 차례 그런 짓을 저질렀다”며 “하지만 그의 행태는 이미 80년대부터 문화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썼다. 실명을 밝히진 않았지만, 장본인이 프랑스 출신 사진작가 겸 한림원 후원 스웨덴 최대 예술그룹 ‘포럼(FORUM)’의 총감독이자, 한림원 종신회원 카타리나 프로스텐손(Katarina Frostensonㆍ시인, 1953~)의 남편 장 클로드 아르노(Jean-Claude Arnault, 1946~)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드물었다.

한림원 원장 격인 종신 서기(Permanent Secretary) 사라 다니우스(Sara Danius)는 바로 사흘 뒤 기자회견을 열고 한림원이 아르노와 맺어온 공적인 관계 일체를 끊고, 로펌에 의뢰해 한림원과 연루된 그의 불법ㆍ비리에 대한 자체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심지어) 한림원 회원들도, 회원의 딸과 아내들도, 한림원 직원들도” 그에 의해 “원치 않는 신체 접촉(unwanted intimacies)”과 “부적절한 대우(inappropriate treatments)”를 경험했다는 진술이 한림원 회의에서 제기됐다고 말했다.

대부분 증거도 없고 사례 중 다수는 공소시효도 지난, 그래서 유야무야될 수도 있던, 기사 속 무명 익명의 증언(4명은 실명)에, 다름아닌 한림원이 공식적으로 신뢰를 표명하며 피해자들과의 연대를 선언한 거였다. 사실은 그게 거대 도미노의 결정적인 칩이었다. 노벨(문학)상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이,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엘리트 문화집단인 스웨덴 한림원이 스스로 제 초라한 윤리적 밑천을 까발리게 되는 일련의 사태가 그렇게 시작됐다.

한림원 기자회견 직후 스웨덴 언론은 아르노가 연루된 크고 작은 추문들을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그가 2016년 한림원이 주재한 한 연회에서 국왕 구스타프 16세의 장녀이자 왕위계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공주를 노골적으로 성추행했다는 다수의 목격자 증언도 나왔다. 2018년 4월 한림원 로펌 조사보고서는 그가 2005년 수상자 헤럴드 핀터(Harold Pinter)와 2016년의 밥 딜런 등 역대 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공식 발표 전 지인들에게 누설함으로써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결과적으로 그 정보가 도박에 이용되게 한 사실, 한림원 소유 아파트 등 재산을 관리하고 ‘포럼’을 운영하면서 한림원 지원 예산 일부를 유용한 (혐의)사실도 밝혀냈다. 조사보고서는 적발된 사실들을 경찰에 알리고, 아르노의 아내 프로스텐손의 한림원 회원 자격을 즉각 박탈할 것을 권고했다.

그 권고안을 두고 한림원 내분이 격화했다. 아르노-프로스텐손 부부를 지지한 진영은 서기가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오히려 충격을 증폭시키고 있다며 그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타했다. 다니우스를 편든 이들은 차제에 비리의 뿌리를 끊어내고 한림원이 거듭나야 한다고 맞섰다. 반(反) 다니우스 진영의 선봉 격인 비평가 호라스 엥달(Horace Engdahl, 1948~)은 “(다니우스는) 1786년 한림원 출범 이래 서기로서의 의무와 역할에 가장 불충실한 서기 중 한 명”이라고 비난했다.(가디언, 2018.7.17)

스웨덴 한림원 종신회원 18명은 '데 아데르톤(18인방)'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성스캔들 와중에 회원 다수가 집단 탈퇴(활동 거부)하면서 의결 정족수도 못 채우게 되자 스웨덴 왕실은 부득이 회원 자격 규정을 개정, 일종 조건에 한해 회원 탈퇴및 신규회원 충원을 허용했다. 한림원 정례회의장 모습. svenskaakademien.se
스웨덴 한림원 종신회원 18명은 '데 아데르톤(18인방)'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성스캔들 와중에 회원 다수가 집단 탈퇴(활동 거부)하면서 의결 정족수도 못 채우게 되자 스웨덴 왕실은 부득이 회원 자격 규정을 개정, 일종 조건에 한해 회원 탈퇴및 신규회원 충원을 허용했다. 한림원 정례회의장 모습. svenskaakademien.se

한림원 회원은 자칭 타칭 ‘데 아데르톤(De Aderton, The Eighteen)’으로 통한다. 종신 회원 18명은 1~18번의 고유 번호를 부여 받고, 회원 투표를 통해 축출되지 않는 한 원하든 원치 않든 죽을 때까지 ‘데 아데르톤’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내키지 않으면 왕관도 벗을 수 있는 국왕보다 더 떨쳐내기 힘든 특권적 ‘신분’이란 말도 있다. 그들은 한림원 소유의 스톡홀름 부촌 고급 아파트와 사무실을 평생 제공받고, 활동비 외에 월 1만2,875 크로나(약 220만 원)의 급여를 받는다. 매주 목요일마다 역시 한림원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정례 회의를 갖고, 노벨 문학상을 비롯 연중 크고 작은 50개 가량의 문학상 수상자를 정하고 다양한 문화 후원사업을 주관한다. 회원들은 회의 발언 내용과 결정 사항 등 일체에 대한 비밀 엄수 의무를 진다. 노벨상의 경우 향후 50년 이내에는 후보자 명단까지 원칙적으로 비밀이다. 그러므로 ‘최종심 후보가 누구누구였다’는 등의 설이 떠돌더라도, 설사 그 정보를 한림원 회원이 흘렸더라도, 공식적으로는 ‘풍문’일 뿐이며, 오직 서기의 공식 발표를 통해 공개되는 것만 ‘사실’이 된다. 한림원 220년 역사상 첫 여성 종신 서기 사라 다니우스(회원번호 7번)의 역할이 그거였다.

한림원의 모든 의사는 회원 12인 이상의 비밀 투표를 통해 다수결로 정해진다. 로펌 권고안에 대한 표결 직전 스테판 뢰벤(Stefan Loefven) 스웨덴 총리는 “한림원이 신뢰와 존경을 회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오직 한림원의 선택에 달려있다. 한림원이 신뢰받지 못하고 존경 받지 못한다면 당연히 노벨상의 위상도 장기적으로 지금과 같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aftenposten.no) 다니우스는 일간지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Svenska Dagbladet) 인터뷰에서 “여성들에 대한 성적 폭력의 직접적인 책임이 한림원에 있는 건 아니지만, 회원 다수는 한림원의 이름이 그 행위에 이용됐다고 믿고 있다. 그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은 우리 책임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림원 의사는 로펌 권고안을 묵살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아르노의 혐의가 사실이더라도 아내 프로스텐손이 가담했거나 정보를 흘렸다는 증거가 없고, 회원도 아닌 한 인사의 불의에 한림원이 이미 너무 큰 상처를 입었다는 게 다수의 판단이었다. 그 결정에 불복, 페테르 엥룬드(Peter Englund)와 클라스 외스테르그렌( Klas Oestergren), 셸 에스프마르크(Kjell Espmark)가 잇달아 회원 탈퇴를 선언했다. 작가 겸 문학사가인 에스프마르크(1930~)는 스웨덴 언론에 보낸 서신에 “한림원의 결정을 좌우한 이들이 조직의 진실한 덕의보다 우정과 기타 부적절한 고려들을 우선시했다”고 썼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그건 탈퇴가 아니라 회원으로서의 모든 역할에 대한 보이콧 선언이었다.

그들이 떠난 뒤로도 다니우스는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2018년 4월 12일 목요 정례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종신서기직에서 사임하고 한림원 회원 지위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한림원이 낡은 권위보다 우선해야 할 윤리를 환기하며 “모든 전통이 지켜야 할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전통과 권위가 사회에 대한 오만과 오연함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니우스의 회견 약 30분 뒤 크리스텐손도 기자회견을 열고 한림원 회원 사퇴 의사를 밝혔다. 다니우스의 절친인 한림원 회원 사라 스트리스베리(Sara Stridsberg)는 DN과의 인터뷰에서 “카타리나 프로스텐손이 한림원을 떠난다면 자신도 서기직과 회원 자격을 포기하겠다는 게 사라의 제안이었다. 나는 그 회의 내내 울었다”고 말했다. 헬싱키 대학 북유럽문학 교수인 에바 비트브랏스트룀(Ebba Witt-Brattström)은 한림원 내 반 다니우스 진영의 선봉 격인 호라스 엥달과 한때 결혼생활을 한 적이 있지만 이혼 후 좋은 낯으로 엥달을 대한 적이 드물다는, 스웨덴의 맹렬 페미니스트다. 에바는 다니우스의 퇴장을 ‘미투(Me-Too)에 대한 백래시(Backlash)의 방증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그들(한림원)이 한 짓은 일종의 궁정쿠데타였다. 다니우스가 너무 고집불통(headstrong)이어서 쫓아낸 것이다. 그들로선 고집불통 여성의 존재 자체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 호메이니로부터 공개 처형 명령(fatwa)을 받은 샐먼 루슈디에 대한 한림원의 지지 선언이 불발된 데 공개 항의하며 1989년 한림원에서 발을 뺀 셰르스틴 에크만(Kerstin Ekman)의 예를 들며 “사라 다니우스는 한림원의 쇄신을 위해 헌신했고, 몇몇 전향적인 개혁 조치들을 주도했다. 그는 몇 년 더 일했어야 했다”고 말했다.(nyt)

리본 블라우스는 다니우스의 시그니처 패션이었다. 그가 종신 서기직에서 물러난 직후 유럽과 미국의 많은 여성들이 그에 대한 지지와 한림원 남성권력에 대한 항의의 표현으로 '#knytblus(리본 블라우스)’ SNS 해시태그 운동을 펼쳤다. wikimedia.org
리본 블라우스는 다니우스의 시그니처 패션이었다. 그가 종신 서기직에서 물러난 직후 유럽과 미국의 많은 여성들이 그에 대한 지지와 한림원 남성권력에 대한 항의의 표현으로 '#knytblus(리본 블라우스)’ SNS 해시태그 운동을 펼쳤다. wikimedia.org

사라 다니우스는 스톡홀름 교외 테뷔(Täby)에서 1962년 4월 5일 태어났다. 어머니인 작가 겸 시사평론가 안나 발그렌(Anna Wahlgren, 1942~)은 작가로서나, 방송인으로서나, 사생활면으로나 수많은 화제를 뿌리고 다닌 스웨덴의 명사였다. 발그렌은 18세에 사립기숙학교 은사였던 35년 연상의 교사 겸 작가 라르스 다니우스(Lars Danius, 1907~1996)에게 먼저 청혼, 사라를 낳고 4년 만에 이혼한 이래 모두 7차례 짧은 결혼과 별거-이혼을 거듭하며 9남매를 낳았다. 장녀 사라는 어머니가 3번째 결혼을 할 무렵인 73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공립중등학교인 오바 김나지움 시절, 공부보단 방과후 활동에 더 열중해 농구 선수로 활약했고, 무엇보다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에 열정을 쏟았다고 한다. 고교 졸업 후 카지노 딜러(크루피에, croupier) 자격증을 따서 약 2년 간 스톡홀름의 한 카지노에서 일한 건, 당시의 그로선 그리 이채로운 이력이 아니었다. 1982년 스톡홀름대에 진학해 문학이론을 전공했고, 89년 영국 노팅엄대에서 석사학위를 땄다. 대학원 진학 전 일간지 익스프레센(Expressen)과 다겐스 뉘헤테르 기자로 일하며 문학, 예술, 패션 등에 관한 기사를 썼고, 90년 미국으로 건너가 1920년대 모더니즘 작가(토마스 만, 마르셸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들을 주제로 97년 듀크대에서, 99년 스웨덴 웁살라대에서 각각 박사학위를 땄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독보적 이론가로 꼽히는 듀크대의 은사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 1934~)의 주저 ‘정치적 무의식’(1994)의 스웨덴어판 서문을 쓰기도 한 그는 90년대 중ㆍ후반 이후 모더니즘과 사실주의 문학, 자동차 등 물질 문명의 진보와 문학-미학의 맥락들을 견주는 일련의 저술 및 활동으로 상당한 주목을 끌었다. 물론 그의 비범한 가계도,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음직한 열정적인 기질과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는 자칭 ‘너드(Nerd)’ 성향도 일조했을 것이다. 2000년 무렵 그는 미국 미시건 대 객원교수, 독일 베를린지식연구소(Wissenschaftskolleg zu Berlin) 펠로, 스웨덴 정부 연구위원회 인문ㆍ사회과학 분과 자문위원 등의 직함을 갖고 활동했다. 2013년 스톡홀름대 교수러 임용됐고, 그 해 회원 투표를 통해 한림원 종신회원으로 선출됐다. 그리고 2년 뒤인 2015년 6월 한림원의 모든 회의 및 연회 등 행사를 주재하고 결정 사항을 세상에 고지하는 한림원 종신 서기에 선출됐다. 신입 ‘데 에데르톤’이던 2013년의 다니우스는 스웨덴 연구위 온라인 잡지 ‘쿠리에(Curie)’ 인터뷰에서 한림원이 오래 다져온 화합과 자존 등의 미덕 위에 ‘이견과 반항(olydnad)’을 통해 한림원의 새로운 풍토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tidningencurie.se).

그는 플로베르와 프루스트의 소설 속 인물들의 복식(服飾)을 주제로 논문을 쓴 적이 있을 만큼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한림원 서기인 그는 2015~17년 12월 세 차례 노벨문학상 시상식 연회 때마다 스웨덴 왕실 드레스 디자이너인 페르 앵셰든(Pär Engsheden)과 협의해, 프루스트와 발자크, 버지니아 울프를 모티프로 한 화려하고 기품 있는 드레스로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평상시 그의 시그니처 패션은 리본 달린 블라우스(Pussy-bow blouse)에 바지 혹은 폭이 좁은 펜슬 스커트(Pencil skirt) 정장이었다. 그가 한림원 회원 사퇴 기자회견을 한 직후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의 수많은 여성들이, 스웨덴 문화부 장관 알리스 바 쿵케(Alice Bah Kuhnke)와 저명 스타일리스트 로베르트 노르드베리(Robert Nordberg) 등과 시민들이, ‘#knytblus(리본 블라우스)’ 해시태그와 함께 리본 블라우스 차림의 사진을 SNS에 올리며 다니우스에 대한 지지와 연대 의사를 표명했다. 다니우스의 단골 디자이너라는 카린 로데비에르(Carin Rodebjer)는 “우리 브랜드의 블라우스를 입고 사라 지지 사진을 포스팅하겠다며 매장에 찾아온 이들이 놀랍도록 많았다”고 말했다.

아르노 의혹은 정확히 20년 전인 97년 봄 일간지 ‘엑스프레센’이 ‘문화 엘리트들의 성의 끔찍함(Sex terror)’이란 제목의 기사로 폭로한 바 있었다. ‘포럼’ 인턴 사원 등 피해 여성들의 제보와 증언을 토대로 한 그 기사의 내용은, 성폭력과 자금 유용 등의 수법과 내용까지 2017년의 그것과 믿기지 않을 만큼 흡사했다. 한 피해 여성은 자신이 겪은 ‘치욕적이고도 절망적인 일’을 기록해 96년 그 ‘실력자’를 지원하는 여러 문화기관에 발송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한림원 서기였던 스투레 알렌(Sture Allen)은 그 편지를 읽은 사실을 시인했지만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아르노의 아내 프로스텐손도 마찬가지로 침묵했다. ‘포럼’ 회계가 엉망이고, 약 5만 파운드의 돈의 출처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예산 결제자인 알렌은 무시했고, 무시한 이유도 끝내 해명하지 않았다. 그렇게 당시 보도는 금세 묻혔다. 주요 제보자였던 안나 카린 뷜룬드( Anna-Karin Bylund)는 이후 아르노에 의해 ‘cunt artist’라는 모욕적인 말까지 들으며 해고당했다.(가디언) 그 때는 ‘미투’의 열기가 없었고, 사라 다니우스가 없었다.

2018년 10월 1심 법원은 단 한 건의 강간만 유죄로 인정, 아르노에게 징역 2년과 11만5,000크로나(약 1,400만원) 벌금을 선고했다. 아르노의 상소로 열린 항소법원은 두 달 뒤 1심 법원이 배제했던 동일 피해자에 대한 별도의 성폭력까지 강간으로 인정. 징역 2년 6개월에 21만5,000크로나 벌금형을 선고했다.

한림원은 스웨덴 문화의 얼굴이고, 종신 서기는 한림원의 얼굴이다. 첫 여성 종신서기 사라 다니우스는 매해 노벨상 시상식 등 주요 행사 때마다 스웨덴 왕실 드레스 디자이너의 작품을 입고 화려한 기품을 과시하곤 했다. 종신서기직서 물러난 뒤인 2018년 12월 시상식 때도 그는 저렇게 여왕처럼 자리를 지켰다. AFP 연합뉴스
한림원은 스웨덴 문화의 얼굴이고, 종신 서기는 한림원의 얼굴이다. 첫 여성 종신서기 사라 다니우스는 매해 노벨상 시상식 등 주요 행사 때마다 스웨덴 왕실 드레스 디자이너의 작품을 입고 화려한 기품을 과시하곤 했다. 종신서기직서 물러난 뒤인 2018년 12월 시상식 때도 그는 저렇게 여왕처럼 자리를 지켰다. AFP 연합뉴스

다니우스는 복수의 수상자를 내기로 한 한림원 결정을 못마땅해 하며 “피해 여성들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2018년은 수상자 없이 공백으로 남겨두길 원했다고 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마치 치부를 덮듯 두 명의 수상자를 발표했고,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페터 한트케(2019년 수상자)를 두고 또 한 차례 거센 비난을 샀다.

사라는 2013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2015년 서기가 된 직후 ‘ELLE’ 인터뷰에서 그는 뭔가를 이루려면 그의 전임자 페테르 엥룬드처럼 최소 6년은 서기로 일하고 싶다며 “서기 연령 제한인 70세가 되기까진 아직 여유가 있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2년 반 만에 서기직에서 쫓겨난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까지 지켜보고 이틀 뒤인 10월 12일 별세했다. 향년 57세.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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