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 “은행이라도 털까요?”… 안락사 없는 동물보호소 ‘자금 부족’

입력
2019.11.30 04:40
12면

성실하고 활발한 ‘개엄빠’ VS 창의적이고 사색을 좋아하는 ‘냥집사.’

지난해 1월 미국의 글로벌 반려동물 식품기업 ‘마즈 펫케어’는 개와 고양이를 기르는 반려인 각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개파(Dog person)’와 ‘고양이파(Cat person)’의 독특한 특성을 뽑아본 결과, 이곳 저곳을 달리며 냄새 맡길 좋아하는 개를 매일 산책시켜야 하는 반려인들은 좀 더 성실하고 활발한 성격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반면 높은 곳에 가만히 앉아 자기 공간을 지켜보다가도 돌출행동을 하는 고양이와 함께 하는 이들은 좀더 창의적이고 사색을 좋아할 확률이 높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결과가 100% 들어맞겠느냐마는 30년 넘게 개를 키운 성악가 조수미(57)씨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 작사가 김이나(40)씨의 모습에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5일 서울 역삼동에서 열린 동물권행동 카라의 동물보호시설인 ‘더봄센터’ 건립추진위원회 창립모임을 통해 공동위원장으로 위촉된 두 사람. 이들의 다른 듯 닮은 반려생활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더봄센터 건립을 향한 의지는 뜨거웠다.

성악가 조수미(오른쪽)씨가 15일 서울 역삼동 한 카페에서 열린 동물권행동 카라의 '더봄센터 건립 추진위원회' 창립모임에서 카라 임순례 대표로부터 공동위원장 위촉장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카라 제공
성악가 조수미(오른쪽)씨가 15일 서울 역삼동 한 카페에서 열린 동물권행동 카라의 '더봄센터 건립 추진위원회' 창립모임에서 카라 임순례 대표로부터 공동위원장 위촉장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카라 제공

 ◇조수미 “국내 개식용 종식 꼭 이뤄지길”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힘들어져 이사 간 집에서는 개를 키우기 어려웠던 탓에 시골 할아버지 댁으로 보냈어요. 대신 제가 열심히 공부하면 보여준다는 부모님 말씀에, 반에서 1등을 하고 어느 날 시골을 갔죠. 그런데 그날 (도축하기 위해) 나무에 묶여 동네사람들에게 몽둥이로 얻어맞는 녀석을 본거예요. 그때 눈이 마주쳤는데… 저는 요즘도 가끔 그 꿈을 꿔요.”

조씨는 ‘더봄센터’ 건립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게 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자신의 아픈 기억으로 답을 대신했다. 과거 생각에 잠시 눈물을 글썽이던 그는 “예전엔 시골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아이들이 길을 가다 얼떨결에 그런 광경을 목격하곤 했다”며 “이제는 우리나라도 개식용이 종식돼야 한다”며 ‘돌직구’를 날렸다.

사계절 중 하나인 ‘봄’과 ‘더 들여다본다’는 이중적 의미를 가진 더봄센터는 카라가 경기 파주시 법원읍에 짓고 잇는 동물보호시설이다. 약 4,000㎡ 넓이의 대지 위에 최대 250마리를 개체 별로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포함해 동물병원과 교육장, 놀이터 등을 갖춘 2층 규모(약 1,800㎡)로 지난해 11월6일 착공해 내년 3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정시간이 지나면 입소한 유기동물을 안락사하는 국내 지자체 동물보호소와 달리, 더봄센터는 입소동물이 새 가족을 찾지 못해도 평생보호를 원칙으로 ‘노킬’(No-kill)정책을 펴는 독일의 동물보호소 ‘티어하임’을 모델로 설계됐다. 더봄센터를 통해 최소한의 보살핌 속에 단순 보호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대다수 국내 유기동물보호소들보다 수준 높은 국내 동물보호소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한다는 게 카라의 목표다. 하지만 총 건립자금 40억원 중 아직 단체운영비와 대출, 후원 등으로 30억원 가량만 마련된 상황이다.

더봄센터 조감도. 카라 제공
더봄센터 조감도. 카라 제공

조씨는 현재 10년 넘게 카라의 명예이사를 맡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주로 생활하지만, 국내 공연 때마다 공연안내문에 별도로 카라의 소식을 전하고 후원을 권할 정도로 애착이 큰 단체가 벌이는 최대 규모 사업인 만큼 이번에도 센터건립의 ‘얼굴’을 자처했다.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이라도 털어야 하냐며 주변에 농담을 하던 조씨는 이날 위촉장을 받은 뒤 열린 회의에서 후원 등을 통한 자금 마련 방안에 골몰했다.

이번 일은 조씨에게 개인적으로는 올해 1월 19살 나이로 세상을 떠난 자신의 반려견 ‘신디’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20대 초반이던 1983년 이탈리아 로마에 첫 유학 길을 오른 후부터 반려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난 2000년 미국 워싱턴DC에서 우연히 갓 태어난 요크셔테리어 품종 신디를 만나 인연을 맺은 후 별도의 여권까지 만들어주며 지난해까지 전세계를 함께 누볐다. “먼저 함께 살던 ‘재키’와 ‘캔디’ ‘쿠키’ ‘밀리’는 모두 대형견이었는데, 신디만 소형견이어서 그런지 유독 공연장을 많이 데리고 다녔어요. 3, 4년 전부터는 나이가 먹다 보니 눈도 안 보이고 그래서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로마 저희 집에서 마치 늦잠을 자듯이 조용히 갔어요. “

작사가 김이나 씨가 15일 서울 역삼동 한 카페에서 열린 동물권행동 카라의 '더봄센터 건립 추진위원회' 창립모임에서 공동위원장 위촉된 뒤 ‘동물권에 대해 말하겠습니다’라는 자신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 카라 제공
작사가 김이나 씨가 15일 서울 역삼동 한 카페에서 열린 동물권행동 카라의 '더봄센터 건립 추진위원회' 창립모임에서 공동위원장 위촉된 뒤 ‘동물권에 대해 말하겠습니다’라는 자신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 카라 제공

 ◇김이나 “인연만큼 중요한 묘연” 

어릴 적부터 개가 좋아 독립을 하자마자 반려생활을 시작하고 십 수년째 공개적으로 동물보호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조씨와 비교하면 두 고양이 ‘봉삼이’와 ‘달봉이’를 키우는 12년차 집사인 김씨의 반려인생은 ‘정중동’에 가깝다. 인기가수 아이유의 히트곡 ‘좋은날’ 등을 작사해 작사가 저작권료수입 1위(2014년)를 차지하는 등 스타작사가로 발돋움하고 각종 방송출연으로 인지도가 올랐지만, 2012년부터 카라에서 고액기부 회원으로 활동 중인 사실은 최근에서야 알려졌다.

어릴 적 같이 살았던 할머니가 키우던 강아지는 예뻤지만 성인이 된 후 직접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김씨. 그는 우연히 본 모니터 속 봉삼이 사진에 무언가 홀리듯 이끌려 반려인의 길로 접어들었고, 이어 달봉이도 맞았다. “힘들 때 고양이들이 위로해 주는 행동 같은 걸 보며 교감이란 게 뭘까 생각해보게 돼요. 의사전달에 언어가 효과적이라면 교감은 비언어적인 부분에서 더 강하다고 할까요. 같은 언어를 쓰지 않는 생명체와의 교감은 타인과의 대화에서 전달되지 못한 감정을 헤아리는 데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작사가 김이나 씨가 자신의 반려묘인 봉삼이(왼쪽), 달봉이와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김이나 인스타그램 캡처
작사가 김이나 씨가 자신의 반려묘인 봉삼이(왼쪽), 달봉이와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김이나 인스타그램 캡처

서로 교감하며 고양이 반려생활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개하는 방법 역시 그는 조용한 ‘혼자 놀기’를 택했다. 8년 전부터 스스로에게 ‘고양이콘텐츠진흥위원장’ 자격을 부여하고, 고양이들의 모습을 담은 여러 사진을 SNS에 올리고 있다. 하지만 고양이콘텐츠진흥위원회는 사실 실체가 없는 조직이다. 그의 활동을 응원하며 위원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실제 만남은 절대 갖지 않는다. 말 그대로 전형적인 ‘랜선친구’다.

그는 “회피와 거절과 숨기가 일상인 저의 성향상 그 동안 소리소문 없이 뒤에서 면죄부 사듯 기부를 하며 누군가 저 대신 적극적인 동물보호활동을 해주길 바랐다”면서도 “이번 더봄센터 건립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이례적으로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며 웃었다.

성악가 조수미 씨가 15일 서울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동물권행동 카라의 '더봄센터 건립 추진위원회' 모임에서 자신의 휴대폰케이스에 인쇄된 반려견 신디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신디는 올해 초 세상을 떠났지만, 조씨는 “항상 신디와 함께 하고 있다”고 했다. 동그람이 정진욱
성악가 조수미 씨가 15일 서울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동물권행동 카라의 '더봄센터 건립 추진위원회' 모임에서 자신의 휴대폰케이스에 인쇄된 반려견 신디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신디는 올해 초 세상을 떠났지만, 조씨는 “항상 신디와 함께 하고 있다”고 했다. 동그람이 정진욱

개파와 고양이파 성향을 분류하는 설문조사는 그들의 차이점만 찾은 게 아니라 공통점도 찾았다. 가장 큰 공통점은 개파든 고양이파든 응답자 3분의 2 이상이 식사를 하거나 여행을 갈 때는 물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장소를 고르거나 시간을 정할 때도 동물가족들의 안락함을 우선해 고민한다는 것이다.

두 공동위원장 역시 그들의 삶 속 일상에 이미 반려동물이 녹아 있다. 조씨는 “휴대폰 케이스의 배경그림으로 신디 사진을 인쇄해 넣었다”며 “신디는 아직도 항상 내 곁에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사람과의 인연처럼 고양이와의 묘연도 있는 것 같다”고 현재 자신과 두 고양이의 관계를 말했다. 그러면서 “버려지고 아픈 동물들의 안쓰러운 모습을 부각시켜 동정심을 유발하고 후원이나 입양 등의 순간적인 도움을 호소하는 방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더봄센터는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태무 동그람이 팀장 santafe29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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