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1운동 100년 역사 다각도 조명… 대가들 노작도 빛나

입력
2019.11.29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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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0회 한국출판문화상 예심] 저술 학술 부문 10종 

3ㆍ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었던 올해,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다각도로 접근한 책들이 주목 받았다. ‘제국대학의 조센징’과 ‘3월 1일의 밤’과 같은 책들이 대표적이다. 대가들의 노작도 빛났다. ‘한국칸트사전’은 칸트 철학 독해에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회익의 자연철학강의’와 ‘프랑스 혁명사 10부작’도 역작으로 꼽혔다. ‘도서관지식문화사’는 국내 저자가 도서관을 통해 인류의 지식문화사를 일별했다는 점에서, 법조계 병폐의 뿌리를 추적한 ‘법률가들’은 전작의 문제의식을 심화시켰다는 데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연구의 지평을 넓힌 책들도 박수를 받았다. 증오의 기원을 인종주의에서 찾아낸 ‘증오하는 인간의 탄생’과 기계 속에서 사회학적 성찰을 끌어올린 ‘기계비평들’, 근대 시기 한국 번역가들을 조명한 ‘번역가의 탄생과 동아시아 세계문학’은 뛰어난 학술적 성과에 비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는 의견이 많았다.

 ▦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 지음ㆍ휴머니스트 발행 

대한민국 엘리트의 뿌리로 지목되는 일본 제국대학 출신 조선인 유학생 1,000명을 전수조사 한 보고서다. 그간 경성제국대학 졸업생에 대한 연구는 있었지만, 일본 본토 제국대학 졸업생을 정리한 연구는 처음이다. 책은 일본 제국대학 출신 유학생들이 해방 이후 남한과 북한 사회에 남긴 유산을 살피며, 이를 역사화하는 작업이야말로 일본 식민주의의 진정한 청산이라고 말한다.

 ▦도서관지식문화사 

 윤희윤 지음ㆍ동아시아 발행 

도서관을 중심으로 인류의 6,000년 지식문화사를 들여다본다. 문헌정보학자인 저자가 10년 간 국내외 도서관을 두루 탐방하고, 각종 자료를 그러모아 펴낸 노작이다. 도서관의 역사를 다룬 외국 책은 많았지만 국내 저자의 작업은 드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고구려 왕실 도서관을 시작으로 한반도 역사에 새겨진 도서관의 미시사를 촘촘히 복원한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성과다.

 ▦번역가의 탄생과 동아시아 세계문학 

 박진영 지음ㆍ소명출판 발행 

한국 번역문학의 계보를 추적해온 저자가 근대 한국문화사의 한 축을 담당했지만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번역가들의 면면을 재구성한다. 저자는 번역문학은 한국문학 자신을 타자화함으로써 새로운 지평에서 동아시아 근대성을 성찰하기 위한 거점이라고 말한다. 번역을 통해 한국의 근대를 모색하려는 학술적 시도가 참신하다.

 ▦한국칸트사전 

 백종현 지음ㆍ아카넷 발행 

철학 전공자들도 넘기 어려워하는 거대 산맥인 칸트 사상을 독해하는 데 나침반이 돼 줄 책이다. 칸트 철학의 얼개를 이루는 주요 개념, 용어, 관련 인물, 저작 등 806개의 키워드로 뽑아내 우리말로 번역하고 정리했다. 표제어 목록만으로도 저자가 어떤 관점에서 칸트를 독해하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3월1일의 밤 

 권보드래 지음ㆍ돌베개 발행 

문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근대를 연구해온 국문학자가 재판기록, 신문기사 등 방대한 자료를 종합해 1919년 3월1일의 한반도를 다층적으로 복원했다. ‘낮, 장터, 태극기’로 대표되는 3ㆍ1운동의 익숙한 틀을 벗어나 ‘밤에 산에 올라 횃불을 들었던 이름 모를 사람들’에 주목한다. 선언, 대표, 깃발 등 16개의 키워드로 조선과 동아시아, 세계의 역사와 문학까지 그려낸다.

 ▦기계비평들 

 전치형, 김성은, 임태훈 외 4명ㆍ워크룸프레스 발행 

2006년 기계와 인간, 사회와의 접면을 성찰하며 비평의 새 영역을 개척했던 ‘기계비평’의 확장판이다. 저자들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시작으로, KT 통신망 화재, KTX 열차 탈선, 고 김용균씨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등은 기계의 실패를 넘어 사회 시스템 자체가 붕괴된 인간과 사회의 실패였다고 진단한다. 고장 난 기계의 경고를 무시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파한다.

 ▦증오하는 인간의 탄생 

 나인호 지음ㆍ역사비평사 발행 

서양 주류 철학 사상에서 배제됐던 인종주의를 정면으로 해부한 책이다. 저자는 증오하는 인간의 지적 기원을 인종주의로 지목하며, 역사학적 시선에서 담론을 심층적으로 파고든다. 책의 미덕은 학문으로서의 인종주의 연구에 머물지 않고 우리 주변에 만연해 있는 혐오와 증오, 박해와 테러 등 인종주의의 뿌리를 직접 확인하게 함으로써 경종을 울린다는 점에 있다.

 ▦장회익의 자연철학강의 

 장회익 지음ㆍ청림출판 발행 

한국의 살아 있는 지성, 물리학자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의 팔십 평생의 연구 여정을 압축해 한 권에 담았다. ‘온전한 앎이란 무엇인가’ 이 거대한 질문 앞에서 저자는 철학적 문제를 자연과학적으로 규명하는 통합적 담론을 모색한다. 근대 이전 자연철학 본류의 지향은 간직하되, 오늘날 학문의 대략적인 전모를 담아낼 새로운 틀을 마련하려는 시도다.

 ▦법률가들 

 김두식 지음ㆍ창비 발행 

법조계의 모순과 치부를 정면으로 들춰온 저자가 그 병폐의 뿌리를 캐낸 역작이다. 관보, 판결문 등 수많은 자료를 뒤져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시기에 활동했던 법조인 3,000여명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책은 초창기 법조계 인적 기반은 상상 이상으로 허약했다는 걸 가감 없이 보여준다. 스스로 최고의 엘리트라 자부하는 현직 법조인들이 두려워할만한 역사다.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세트 

 주명철 지음ㆍ여문책 발행 

한국 서양사학계의 거목인 저자가 평생을 바쳐 완성한 기념비적 저작이다. 국내 연구자의 주체적인 서술로 프랑스 혁명사를 입체적 관점으로 짚어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15년부터 매년 300쪽이 넘는 책 2권을 꼬박꼬박 출간한 끝에 10부작을 완성했다. 촛불혁명 등 한국 민주주의 현실과 포개어 비교해볼 수 있는 것도 책의 또 다른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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