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겁 없는 소녀(11.28)

입력
2019.11.28 04:40
30면
구독
뉴욕 월스트리트의 '겁없는소녀' 상이 1년 전 오늘 철거돼, 인근 증권거래소 앞 마당으로 옮겨졌다. 자료사진
뉴욕 월스트리트의 '겁없는소녀' 상이 1년 전 오늘 철거돼, 인근 증권거래소 앞 마당으로 옮겨졌다. 자료사진

미국 뉴욕 맨해튼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의 청동상 ‘겁 없는 소녀(Fearless Girl)’가 설치 20개월 만인 2018년 11월 28일, 월스트리트의 황소(Charging Bull)상 앞 자리에서 철거됐다. 소녀상은 10여일 뒤인 12월 10일, 뉴욕증권거래소를 마주보는 자리에 새 자리를 잡았다. 상업 마케팅이 공적인 가치의 시대정신과 결합해 근사한 공공미술이 된, 모범적인 예였다.

겁 없는 소녀 조각상은 ‘매켄 뉴욕(McCann New York)’이라는 광고 대행회사 선임 아트디렉터와 카피라이터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그들은 ‘SSGA’라는 자산 관리회사가 여성 임원 비율이 높은 회사, 즉 젠더 차별이 덜한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펀드 상품을 출시하며 의뢰한 홍보 전략의 일환으로 저 청동상을 구상해 조각가 크리스텐 비스발(Kristen Visbal)과 협의를 거쳐 디자인을 완성했다. 높이 130cm, 무게 110kg의 작은 소녀상은 2017년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3월 7일, 3.4m 높이에 3,200kg의 월스트리트 황소상 앞에 당당히 섰다. 청동상 명패에는 “여성 리더십의 역량을 보라. 여성(SHE)이 차이를 만든다”는 문구가 새겨졌다. ‘SHE’는 SSGA의 나스닥 종목 기호(ticker symbol)이기도 했다.

1주일 전시 허가를 받아 설치된 조각상은 시민과 관광객, 특히 뉴욕 여성단체들의 열광적 호응 속에 전시 기간을 연장해갔고, 일부는 영구 설치 청원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논란도, 반발도 있었다. 특정 기업의 상업적 광고물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비록 당차지만 결코 위협적이지는 못한, 작고 귀여운 이미지로 여성의 역량을 상징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비판도 있었다. 황소상의 조각가(Arturo Di Miodica)도 모욕감을 피력했다. 물론 그의 청동상 역시 1989년 임의로 설치된 거였지만, 시민들의 청원으로 철거를 모면하고 거기 자리 잡은 경우였다.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겁 없는 소녀상은 젠더 차별에 맞서는 여성의 힘과 용기와 희망의 상징으로, 노르웨이 의회와 호주 멜버른 광장, 런던 증권거래소 등지에 복제품까지 섰다.

뉴욕 시는 소녀상을 옮기며, 원래 자리에 명패와 함께 소녀의 족적을 남겨 누구나 ‘겁 없는 소녀’로서 그 자리에 설 수 있게 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