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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피해자 설득과 일본 불신 해소가 관건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강경화(왼쪽) 외교부 장관이 23일 일본 나고야관광호텔에서 열린 한일외교장관 회담에서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과 악수하고 있다. 나고야=연합뉴스

한국과 일본이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조건부 연장(한국)과 수출 규제 철회를 위한 대화 수용(일본) 합의로 보복ㆍ맞대응 조치를 사실상 동결하면서 갈등의 원인인 강제동원 배상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데 양국이 집중할 여건이 만들어졌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판결 이후 1년 넘게 티격태격하다 겨우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된 셈이다. 그러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비롯한 일본 당국자 및 언론을 중심으로 이번 지소미아 극적 합의를 놓고 ‘일본은 아무런 양보를 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이 나오자, 청와대가 24일 이례적인 강경대응에 나서는 등 후속협상은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물론 강제동원 배상문제 해법과 관련해 아예 실마리가 없는 건 아니다. 최근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시한 해법을 놓고 일본 내에서 긍정적 기류가 형성될 조짐이다.

이날 외교가에 따르면 현재 일본은 ‘일본 기업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에 따른 피해를 입어선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배상금이든 위로금이든 일본 기업이 돈을 내는 것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수용하는 결과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문 의장이 최근 일본 도쿄(東京) 와세다(早稻田)대 특강에서 제시한 방안이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한일 기업과 국민의 자발적 성금으로 대신 부담하는 ‘1+1+α(알파)’ 안이다. 성금에는 현재 남아 있는 ‘화해와 치유 재단’(위안부 재단)의 잔액 60억원도 포함된다. 기금에서 피해자에게 위자료가 지급될 경우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이 대신 변제되는 것으로 보고, 민사적으로도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간주해 논란을 종결하겠다는 발상이다.

외교가에서 이 방안에 주목하는 건 6월 우리 정부가 공식 제안한 ‘1+1’안(한일 기업의 자발적 기금으로 위자료 지급)에 곧장 거부 의사를 밝혔던 일본 정부의 반응이 당시와 다르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 안에 대해 “일한(한일) 양국 간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 방안이라면 진전시켜도 괜찮다”고 말했다고 NHK방송이 20일 보도했다. 특히 일본 정부는 문 의장의 제안이 일본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한 점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는 게 아니라 일본 기업이 스스로 돈을 내는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셈이다. 도쿄의 한 소식통은 “양국 간 합의만 이뤄지면 일본 정부도 자국 기업의 참여를 막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총론에 우호적인 분위기는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각론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게 중론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당사자인 징용 피해자들이다. 현재 당사자들은 문 의장 방안에 부정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문재인 정부가 징용 문제 해결의 원칙으로 제시해온 ‘피해자 중심주의’와 배치된다. 김숙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외전략연구실장은 “피해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합의가 이뤄진 방안을 일본에 제시해야 한다”며 “일본과 먼저 합의한 방안을 피해자들에게 사후 설명하면 (박근혜 정부 때) 위안부 합의와 무슨 차이가 있겠냐”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피해자의 동의를 얻기 위해 문 의장의 법안에 ‘일본이 사죄해야 한다’ 등의 문구가 포함되면 일본 측 동의를 얻기 어렵다. 딜레마인 셈이다.

일본의 불신도 장애물이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이미 약속해놓은 위안부 합의도 일방 파기했는데 이 문제도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느냐’는 인식이 일본 내에 강하다”며 “우리 정부가 어떻게 일본 정부에 신뢰를 줄 수 있느냐도 합의의 관건”이라고 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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