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韓 지소미아 결정 현명” 불구… 한미동맹 불신은 더 짙어졌다

입력
2019.11.24 17:55
수정
2019.11.24 19:4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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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터 차 “66년 동맹 깊은 곤경” 한미 간 불협화음 책임 비난도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22일 청와대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하는 내용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22일 청와대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하는 내용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를 ‘조건부 유예’한 한국 정부의 결정을 일단 환영하면서도, 그간 논의 과정에서 불거진 한미 간 불협화음을 의식한 듯, 한미동맹의 신뢰가 훼손된 점을 걱정하는 분위기다. 지소미아 논란에 더해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등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안보 이슈가 계속 터져 나와 동맹 가치가 손상을 입었다는 진단이다.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이 작용해 한국의 결정이 내려졌다고 보면서도 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섣불리 휘두른 한국 때문에 한미동맹이 영향을 받았다는 ‘가시 돋친’ 목소리도 적잖이 들려온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23일(현지시간)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리처드 아미티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보좌관을 역임한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가 쓴 ‘66년간 지속된 한미동맹이 깊은 곤경에 빠졌다’는 제목의 기고를 게재했다. 두 사람은 “문재인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연기 결정은 현명했지만 이미 신뢰 관계가 손상됐다”고 단언했다. 한국이 한미일 합의를 지렛대 삼아 미국을 두 나라의 경제ㆍ역사적 분쟁에 개입하도록 강제했으며 이는 동맹 남용(alliance abuse) 행위라는 비판이다. 그러면서 정보협력 중단 위협은 북한의 핵ㆍ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응하는 한미일의 능력을 저하시킨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방위비 대폭 인상을 요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도 “한미관계의 마찰을 가중시킨 요인”으로 꼽았다. 방위비 분담 협상에서 미측 협상팀이 일찍 자리를 떠난 사실을 두고 “동맹 간 균열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드문 사례”라 했고, 한국이 평택 미군기지 건설비용의 90%를 부담한 것을 거론하며 “미국 욕심에 대한 한국인의 분노가 주한 미국대사관저 월담 사건에서 분명히 드러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최근 한중 국방장관이 군사 핫라인 설치 등에 합의한 것도 “한미동맹 약화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불길한 신호”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여러 한미간 충돌(collision)이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주한미군을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결정을 내리도록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밝혔다.

일간 뉴욕타임스 역시 전날 사설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과도한 방위비 증액 압력을 언급하면서 “해외 주둔 미군에 돈만 바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은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과 미국 자신의 안보ㆍ번영에 매우 해롭다”고 혹평했다. 신문은 또 “터무니없다(outrageous)” “동맹에 대한 모욕(insult)” 등의 용어를 써가며 방위비를 5배나 늘리라는 미국의 요구가 “미군을 영리 목적의 용병으로 격하시켰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 행정부와 전문가 그룹은 일단 한국 정부의 선택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우리 정부 발표 직후 미 국무부의 환영 논평이 나온 데 이어,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도 트위터에 글을 올려 “문 대통령과 한국은 동맹과 양국 협력에 이득이 될 현명하고 판단력 있는 결정을 내렸다”고 극찬했다. 또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한국 정부가 일본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현안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며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등을 철회하도록 압박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래드 글로서먼 CSIS 퍼시픽포럼 국장은 “서울이 지소미아 가치를 인식한 좋은 신호지만 궁극적 합의는 한일간 역사 문제에서 다뤄져야 한다. 그 과정은 한국이 1965년 한일협정을 유효한 것으로 수용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한일협정에 관한 두 나라의 시각차를 해소한 뒤 양국이 관계 개선에 정치적 자산을 투입해야 최종 합의가 이뤄질 것이란 설명이다. 브루크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뒤늦고 거칠었지만 서울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트럼프 행정부의 방식은 평가 받을 만하다”면서도 “서울과 도쿄에 400~500%의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는 데서도 물러서라”며 미 정부의 양보를 촉구했다.

이처럼 미국은 겉으론 우호적 반응 일색이나 한국 정부 발표 내용의 해석을 놓고 결이 다른 움직임이 감지된다. 미 국무부는 논평에서 “갱신(renew) 결정을 환영한다”는 표현을 썼다. 일본의 대응을 봐가며 지소미아 효력을 언제든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하에 유예 결정을 한 우리 정부 의도와 달리 미국은 이번 발표를 사실상 협정 갱신으로 못박은 것이다. 향후 문 정부가 지소미아를 다시 문제 삼을 경우 한국이 일본보다 불리한 위치에 처할 것이란 경고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아예 이번 결정을 문 정부의 굴복으로 규정한 박한 평가도 나왔다. 셀레스트 애링턴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일본이 한국의 큰 양보 대가로 무엇을 내준 것인지 궁금하다”며 “문 정부가 ‘치킨게임’에서 진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한일 기업의 자발적 기금을 고려하는 데 열려 있다는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면 서울은 잘못된 조언으로 불필요한 실랑이를 한 패배자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 선임연구원, 브루크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 브래드 글로서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퍼시픽포럼 국장, 셀레스트 애링턴 조지워싱턴대 교수.
[저작권 한국일보](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 선임연구원, 브루크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 브래드 글로서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퍼시픽포럼 국장, 셀레스트 애링턴 조지워싱턴대 교수.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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