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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토록 아등바등하며 살아온 오늘은, 또는 아무렇지 않게 쓸데없이 흘려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었던 단 한 번뿐인 내일이었음을 잊지 않는다면. ©게티이미지뱅크

인생을 돌아볼 때 가장 아까운 시간은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던 시간이다. 부모님이 내 꿈을 응원해주시지 않는다고 원망하던 시간, 꿈을 이루기에는 충분한 재능을 갖추지 못했다고 자신을 혐오하던 시간. 이런 시간은 스트레스를 가중시킬뿐 더 나은 삶을 위한 도약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반면, 인생을 돌아볼 때 가장 귀중한 시간들 중 하나는 바로 ‘읽고 쓰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 시간과 글을 쓰는 시간은 내게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내적 자산이었다.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읽고 쓰는 시간을 어떻게든 지켜내려 한 것이 내게는 스스로를 구원하는 영혼의 황금열쇠였다. 아버지가 입원하셨을 때도 나는 병상을 지키며 책을 읽고 글을 썼고, 깊은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던 시간에도 마치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단 하나의 오아시스를 찾는 심정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토록 맹렬하게 읽고 쓰는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내 인생을 덮친 수많은 어둠의 터널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게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삶에 대한 사랑이란, 읽고 쓸 수 있는 삶에 대한 무한한 감사를 의미한다. 작가가 되지 않았더라도,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고 쓰는 삶은 참 아름답고 소중한 것임을 매일 되새겼을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 여성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며 찬란한 아모르 파티를 느꼈다. 삶이 아무리 고통스러운 것일지라도 삶 속에 펼쳐진 그 모든 아픔까지도 온몸으로 견뎌내며 더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주인공의 모습들이 참으로 아름답다. 예컨대 윤이형의 소설집 ‘작은마음동호회’에 실린 단편소설 ‘피클’에는 직장 상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유정이 같은 직장의 선배 선우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선우는 자신이 특별히 친한 선배도 아닌데 왜 유정이 자신을 택해 간절한 구조 신호를 보낸 것인지 궁금해한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유정을 향해 적대적인 사람들뿐이다. 아무도 유정의 절박함을 이해해주지 않고, 여성 동료들조차도 유정의 뛰어난 외모와 재능을 질투하며 은근히 유정을 따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유정을 따돌릴 때 단 한 사람, 그녀의 재능을 인정하고 그녀를 차별하지 않은 사람이 선우였던 것이다.

잡지사의 편집장이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젊은 여성 후배를 성폭행한 사건 앞에서 선우는 망연자실한다. 선우 또한 인턴 시절 바로 그 편집장에게 성추행을 당했기 때문이다. 선우는 가슴 깊이 숨겨둔 트라우마가 생생히 되살아나는 끔찍한 고통을 겪지만, 곤경에 빠진 유정이 손을 내밀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비로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선우는 뻔뻔하게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여 범죄를 부정하는 편집장에 맞서 당당히 사과를 요구한다. 아주 오래 전의 사건이라도, 피해자가 용기를 내어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하자, 가해자는 당황하며 “사과할 테니, 제발 비밀로 해달라”고 애원한다. 선우는 공포를 견디고, 두려움을 이겨내어, 마침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선우는 비로소 더 이상 트라우마에 휘둘리지 않고 트라우마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 된다. 상처입은 치유자가 됨으로써 더 이상 상처에 굴복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선우가 찾은 자기 안의 눈부신 구원이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생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했다. 아모르 파티, 인생에 대한 사랑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와 세상과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 것이다. 내 앞에 펼쳐진 생이 대단하지 않아도 좋다. 화려한 인생이 내 앞에 기다리지 않아도 좋다. 우리가 그토록 아등바등하며 살아온 오늘은, 또는 아무렇지 않게 쓸데없이 흘려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었던 단 한 번뿐인 내일이었음을 잊지 않는다면.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어도 후회 없는 삶은,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삶, 나의 상처를 용감하게 대면하며 보살피는 삶, 그리고 타인의 아픔과 나의 아픔이 끝내 서로 닮았음을 깨닫고 서로를 따스하게 보듬어주는 삶이 아닐까.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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