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삼성전자 노동조합

입력
2019.11.17 18:00
30면
16일 한국노총에서 열린 삼성전자노조 출범식에서 진윤석(오른쪽 두번째) 노조위원장이 출범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한국노총에서 열린 삼성전자노조 출범식에서 진윤석(오른쪽 두번째) 노조위원장이 출범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1977년 제일제당 미풍 공장의 여성노동자 13명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1인 최저생계비(4만5,000원)의 절반도 안 되는 2만176원을 받던 이들의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사측의 해고 위협과 친인척까지 동원한 압박에 11명이 노조를 떠났다. 제일제당은 ‘승전식’이라며 직원식당에서 ‘노조 탈퇴 만세’를 외치게 했다. 남은 노조원 두 명에게는 동료들을 부추겨 욕설이나 신체적 폭력 등을 가했다. 결국 한 명은 사표를 냈고 다른 한 명은 해고됐다. ‘무노조 경영’을 앞세운 삼성의 노조 와해 공작의 시초격이다.

□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민주노조 결성 붐이 일었지만 삼성은 예외였다. 복수 노조가 불법이던 시절에는 어용 노조를 먼저 등록하는 ‘꼼수’로 무노조 신화를 이어갔다. 복수 노조 허용 이후에는 노조 설립에 앞장서는 직원들을 ‘특별관리’했다. 고용 불안이나 임금 차별 등이 주요 수단이었고, 심지어 가정사를 포함한 민감한 개인정보도 철저히 활용했다. 그래도 노조가 설립되면 노사협의회 활성화를 명분으로 노조의 교섭력을 무력화했다. 대부분 부당노동행위였지만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 사달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났다. 지난해 2월 이명박 전 대통령 소유로 판명 난 다스의 미국 소송비용 대납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이 삼성전자 압수수색 중에 수천 건의 노조 와해 공작문건을 확보했다. 공작 대상은 2013년 하청업체 직원들이 설립한 삼성전자서비스노조였지만, 미래전략실이 관여해 작성한 ‘마스터플랜’ 등으로 소문만 무성했던 삼성의 노조 적대 정책의 실상이 확인됐다. 2014년 표적감사에 시달리던 노조원 염호석씨 자살 후 천인공노할 경찰의 시신 탈취 과정에 삼성과 노동부ㆍ경찰 간 유착이 있었음도 드러났다.

□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11월 13일 삼성전자 노조가 법적 지위를 인정받았다. 첫 상급단체(한국노총) 가입 사례인데다 삼성전자의 위상을 감안하면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 신화는 막을 내린 셈이다. 노조가 절대선은 아니지만, 노조 설립 방해나 노조 와해 도모는 노동3권을 명시한 헌법 위반이다. 초글로벌 기업이라도 헌법 위에 군림할 수 없음을 삼성은 되새겨야 한다. 삼성전자 노조엔 축하와 함께 ‘귀족노조’ 논란의 또 다른 당사자가 되지 않을 각고의 노력을 당부한다.

양정대 논설위원 torch@hankookilbo.com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