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레터] 관광 중단ㆍ재개 반복해온 금강산의 수난사

입력
2019.11.15 17:48
수정
2019.11.1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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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재개 안 되자 뿔난 북한 “우리가 직접 개발하겠다” 발표

2004년 금강산 천선대에서 본 만물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4년 금강산 천선대에서 본 만물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북한이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지난 11일 금강산 남측시설에 대한 일방적 철거를 단행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으나, 남측이 묵묵부답하고 있다면서 15일 자신들이 직접 금강산 관광지구를 개발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지난해 남북 정상이 합의한 금강산 관광 재개가 이행되지 않자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통일부는 “남북이 서로 합의해 처리해야 한다”는 종전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죠.

지난달 2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측과 협의해 금강산 내 남측 시설을 철거하라”고 지시한 지 20여 일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해법은 나오지 않은 채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대북제재와 무관한 금강산 개별관광 등도 거론되고 있지만, 한미공조를 해칠 위험이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죠. 11년 넘게 중단됐던 금강산 관광이 역사 속에 사라질 위기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금강산이 뭐길래, 남북 당국 간 이토록 지리한 신경전이 벌어질까요?

김연철(왼쪽) 통일부 장관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나 금강산관광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김연철(왼쪽) 통일부 장관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나 금강산관광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금강산 관광, 어떻게 시작됐나?

금강산 관광은 1989년 1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방북해 '금강산 관광 개발 의정서'를 체결하면서 물꼬를 텄습니다. 9년 뒤인 1998년 6월 정 명예회장은 북한과 금강산 관광사업 계약을 체결하면서 본격적으로 금강산 관광을 추진했죠. 현재 북한에 속하는 강원도 통천이 고향인 정 명예회장이 일흔 넘은 나이에도 큰 애착을 가지고 진행한 역점 사업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정 명예회장이 소 500마리를 끌고 민간인 최초로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그 해 11월 강원도 동해항에서 금강호가 출항했습니다. 1999년 2월에는 금강산 온정리휴게소와 금강산 문화회관이 준공식을 가졌죠. 금강산은 처음엔 배로만 이동이 가능했지만, 2003년 육로 관광이 허용됐고, 다음해 해로 관광을 중단했습니다. 육로 관광이 활성화되면서 2004년 7월 당일 관광, 1박 2일 관광 상품도 등장했죠. 사업 시작 7년 만인 2005년 금강산은 누적 관광객 1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2006년 농협 금강산지점 개소, 2008년 승용차 관광 개시ㆍ골프장 완공 등 새로운 사업이 하나 둘 생기며 금강산 관광은 순항하는 듯했습니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총격 피살사건 정부합동조사단이 공개한 고(故) 박왕자씨 시신수습 현장 사진. 현대아산직원들이 북한 측과 함께 박씨의 시신(붉은 원안)을 지켜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8년 금강산 관광객 총격 피살사건 정부합동조사단이 공개한 고(故) 박왕자씨 시신수습 현장 사진. 현대아산직원들이 북한 측과 함께 박씨의 시신(붉은 원안)을 지켜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관광 중단의 위기?

금강산은 몇 차례 관광이 중단되는 수난을 겪었는데요. 1999년 6월 관광객 민영미씨가 북한 환경감시원에게 귀순 공작을 했다며 억류돼 금강산 관광이 40여일간 중단됐습니다. 감시원이 민씨에게 “남한에서는 귀순자를 바로 잡아서 죽이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북한에서 내려온 귀순자들이 모두 남한에서 잘 살고 있다. 그렇게 궁금하고 의심되면 당신도 한 번 내려와보면 알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무심코 던진 말 때문에 다시는 가족들을 못 볼 처지에 놓인 것이죠.

장전항 출입국관리소 옆 북측 사무실에 강제 구금된 그는 조사를 받은 뒤 ‘법을 어겨 죄송하다’는 내용의 사죄문을 쓰고 억류 6일 만에 석방됐습니다. 한동안 중단됐던 금강산 관광은 그 해 8월 재개됐습니다.

2008년 7월 금강산은 더 큰 수난을 겪게 되는데요. 관광객 박왕자씨가 금강산 특구 내 해수욕장에서 총격을 당해 숨졌습니다. 박씨는 새벽에 홀로 산책을 나섰다가 북측 군사보호 시설구역에 들어가 변을 당했어요. 북측은 박씨가 경비병으로부터 경고를 받았으나 응하지 않아 총격을 가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씨는 등 뒤에서 날아온 총탄에 맞아 숨졌죠.

금강산 특구에서 남측 관광객이 북측 초병에 의해 피살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서는 관광객에 대한 신변보장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는데요. 북한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신변보장 관련 합의나 제도 확보에 응하지 않았죠.

2015년 제20회차 이산가족상봉행사 1회차 상봉 첫날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만난 남북 이산가족들이 사진첩을 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2015년 제20회차 이산가족상봉행사 1회차 상봉 첫날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만난 남북 이산가족들이 사진첩을 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금강산 관광 재개될까?

이후 11년이 흘렀습니다. 2010년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고 유엔 대북제재가 이어지면서 금강산 관광은 재개될 기미를 찾지 못하고 있어요. 지난해 9월 남북 정상이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기로 했지만, 미ㆍ북 관계 등을 보면 녹록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금강산 관광의 재개를 바랄까요? 금강산이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이자 한반도 갈등 해소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금강산을 통해 북한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면서 남북 인적 교류를 확대했고, 개성공단 가동 등 평화경제의 기반을 마련했죠. 금강산은 이산가족 상봉 등 만남의 장소로 분단의 아픔을 덜어주기도 했습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는 북한에 대한 개별관광을 추진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데요.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지난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당장 금강산 재개가 어렵다면 북한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관광이라도 먼저 허용할 것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에게 요청했다고 밝혔어요. 강원도에 따르면 2008년 7월 금강산관광 중단 이후 지역경제 피해는 4,000억원, 관련 기업 피해는 1조500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통일부는 15일 “북측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정확히 알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는데요. 북한의 의도가 금강산 관광 사업에서 남측을 배제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관광 재개를 위해 남측에 압박을 강화한 것인지 아직 불분명하다는 뜻입니다. 남북이 기싸움을 벌이는 사이, 금강산 관광 사업 관계자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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