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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소설(SF)을 문학으로, 과학으로, 때로 사회로 읽고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격주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20>차무진 ‘인 더 백’
재앙이 닥친 한반도, 동민은 배낭에 아이를 담고 안전지대인 대구로 향한다. 요다 제공

독하다. 이야기는 동호대교에서 시작한다. 폭격이 시작되자 한강을 건너려던 피난민으로 가득한 동호대교는 아수라장이다. 폭격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주인공 동민의 손에는 몸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아내의 머리만 남아 있다. 10분 전까지 함께 있었던 아들은 살았을까. 다행히 동민은 폭발에 튕겨져 나간 아들을 찾는다.

1950년 6월, 한강을 건너려던 피난민의 아비규환을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시작한 차무진의 ‘인 더 백’의 독한 설정은 이렇다. 터진다, 터진다 경고가 계속된 백두산 화산이 폭발한다. 백두산이 쏟아낸 화산재를 비롯한 쇄설물은 북한뿐만 아니라 남쪽까지 덮친다. 화산재가 뒤덮은 한반도는 따뜻한 햇볕도, 깨끗한 공기도, 안전한 물도 기대할 수 없는 재앙의 현장으로 바뀐다.

이뿐만이 아니다. 화산 폭발로 풍비박산이 난 북한을 접수한 군부는 북한을 이탈하려는 주민을 막겠다면서 미사일을 쏴 댄다. 그러고 나서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퍼진다. 식인 바이러스. 감염자는 소, 돼지, 닭고기 대신에 사람 고기를 탐닉하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끔찍한 세상.

시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없다. 대통령은 오키나와로 피신했다는 소문이 떠돌 뿐이다. 국가를 대신하는 군부는 바이러스 감염을 막겠다면서 피난민을 향해서 총질을 해댄다. 언제 잡아 먹힐지 모르는 공포.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사람 고기에 미친 사람이 될 가능성. 군인을 만나서 총에 맞아 죽을 각오. 한국 소설 가운데 등장인물을 이렇게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작품이 있었던가.

이런 지옥도 같은 세상에서 125리터 용량의 대형 배낭을 메고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걷는 남자가 있다. 그의 배낭 안쪽에서는 동호대교에서 찾은 아들이 들어 있다. 비 감염자의 고기, 특히 아이의 고기를 찾는 감염자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려는 궁여지책이다. (그래서 제목이 ‘인 더 백’이다.) 이 남자 동민은 무사히 청정 지역이라는 대구로 아들을 데리고 갈 수 있을까.

이런 설정만 보고서 영화 ‘부산행’의 아류라고 지레짐작해서는 곤란하다. 항상 사람이 제일 무서운 법. 인육에 탐닉할 뿐 정신은 멀쩡한 감염자는 영화 속 좀비보다 무섭다. 배낭 속에서 눈만 깜박거리는 아이를 안간힘을 쓰면서 지키려는 아버지의 부정은 이야기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깜짝 놀랄 반전으로 이어진다. 대구는 정말로 청정 지역일까. 부자는 감염을 피할 수 있을까. 아들은?

작가는 한국 사회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끌어 모아 소설 속 곳곳에 배치해 두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끊이지 않다가, 읽고 나서 깊은 한숨을 토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파조의 가족주의와 선을 긋고, 일말의 희망도 주지 않는 차가운 결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내가 밉고, 이렇게 이야기를 써낸 작가도 밉다.

‘인 더 백’을 읽는다면, 차무진 이름 석 자를 기억할 수밖에 없다. 2010년 데뷔한 차무진은 이 소설로 자신이 일급의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인 더 백’을 읽으면서 미웠지만, 그가 다음 작품을 낸다면 또 다른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해서 서점으로 달려가서 책을 손에 들 테다.

혹시 책을 읽고 걱정할 독자를 위해서 덧붙이자. 다수의 과학자가 백두산 화산 폭발을 걱정한다. 하지만 1,000년 전 10세기 중반(약 946년)에 있었던 대형 폭발의 가능성은 낮다. 백두산 화산 폭발이 인근 지역과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비해야겠지만 소설 같은 파국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식인 바이러스? 고기는 다 똑같은 단백질인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SF 초심자 권유 지수 : ★★★★. (별 다섯 개 만점)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인 더 백
차무진 지음
요다 발행ㆍ392쪽ㆍ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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