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의 어린이처럼] 고기를 먹다가

입력
2019.11.15 04:40
29면

며칠 전 참혹한 사진 한 장이 뉴스로 보도됐다. 그 사진에서는 아프리카 돼지열병 방역으로 살처분 된 돼지 사체에서 나온 피가 땅에 스미고 흘러들어가 핏빛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는 피비린내였다. 수만 마리 생명의 핏빛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이번에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예방 조치로 수매 또는 살처분 된 돼지는 43만여 마리라고 한다. 공장 같은 사육 환경에서 ‘고기’로 길러지다 발병 가능성이 있단 이유로 하루 아침에 죽임을 당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백신과 치료제가 없고 치사율이 100%라고 하니 바이러스 확산을 막고 다른 지역 돼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한다. 해당 방면에 아무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그러한 정책 결정에 대해 왈가왈부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돼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설명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의 고기가 되기 위한 오늘의 살림.

요즘 들어 나는 고기가 예전만큼 맛있지 않다. 고기가 고기로 보이지 않고, 내 피와 살이 될 양질의 음식 재료로 여겨지지 않고, 동물의 사체로 느껴진다. 불편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세상 좋은 것들을 맘껏 누리고 싶어서 외면했던 동물권 이슈를 최근 들어 꾸준히 접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생각이 욕망을 변화시켰다. 마음 따라 입맛이 달라졌다.

과연 내가 채식주의를 선언할 날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선 손쉽게 채식으로 대용할 수 있는 부분은 계속 관심을 갖고 찾아볼 생각이다. 베지테리언 식당에 가고, 베지테리언 상품을 구매하며 그러한 소비가 유지, 확산되는데 동참하겠다. 일주일에 하루쯤은 채식 식단을 고수해 볼 생각이다. 종교적 교조주의라고 버렸던 금육의 계명을, 지속가능한 생태 환경을 지향하는 실천으로 새롭게 시작해보는 것이다. 고기나 생선을 굽는 게 내가 아는 가장 간편한 반찬이지만 더 간편하면서도 맛있는 채식 요리법이 분명 있다. (반찬 투정할 아이 모습이 떠올라 시작 전부터 스트레스이기는 하다)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걸음, 쉬었다가 다시 한 걸음. 다른 목숨을 생각해서, 아니 욕망으로 가득한 내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기 위해서.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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