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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문재인 정부가 반환점을 돌았다.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법칙에 따르면, 공세의 오르막길에서 수세의 내리막길을 가게 된다. 초심을 찾기 위해 취임사를 다시 읽어 본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는 누구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압권의 세 문장이다. 평등, 공정, 정의가 내려가는 길의 초입에서 다시 의제로 상정되었음에 안도한다. 촛불혁명이라는 민주화 이후 최대 자산이 있었음에도 임기 절반의 지점에서야 자충수 때문에 취임사를 관통했던 그 말들이 다시 입에 오르내린다.

더불어 간과했던 구절들도 다가온다. “한미동맹은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한편으로 사드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및 중국과 진지하게 협상하겠습니다. 튼튼한 안보는 막강한 국방력에서 비롯됩니다. 자주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가 그 부분들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습니다.”는 그 앞의 약속 때문에 건너뛰었을 조각들이다. 힘을 통한 평화가 현 진보 정부의 철학이었음을 잊게 한 오독이었다. 진보 정부가 국내 정치적 지지를 확대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수보다 힘을 강조한다는 나름의 가설을 수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진보 정부의 역설이 수사가 아니라 확신이었음을 다시 읽기를 통해 확인한다.

촛불혁명은 정권의 출범식에서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하게 했다.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도 있었다. 그러나 이 두 과제의 실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진보 정부의 자랑을 보게 된다. 2020년 국방비 증가율은 2019년보다 7.4% 증가한 50조2,000억원 규모다. 2020년 총지출 예산안 513조5,000억원의 약 10%에 달한다. 최초로 50조원을 돌파했음을 진보 정부가 강조한다. 외교ᆞ통일 분야 예산안은 5조5,000억원으로 국방 분야의 약 10% 정도다. 백미는, 전임 보수 정부의 연평균 국방예산 증가율이 4.1%, 전 전임 보수 정부 증가율이 5.1%였지만, 현 정부는 연평균 7.6%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음을 과시하는 대목이다.

2020년 국방예산은, 한반도 평화 과정을 연 현 진보 정부의 선택이다. 두 문제가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 첫째, 국방예산 가운데 무기 수입과 관련된 방위력개선비 증가율은 2020년 8.6%이고, 집권 기간 평균 증가율은 11.0%다. 두 전임 정부의 평균증가율 5.7%, 4.8%와 비교해 볼 수치다. 전투기 같은 미국산 무기 도입이 주요 내용이다. 둘째, 미국은 한국에 미군 주둔은 물론 핵 관련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등이 포함된 방위비분담금을 현재의 약 5배인 약 6조원까지 올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협상 결과 예측은 어렵지만, 국방예산과 방위비분담금의 쌍 증액이 예상되고 있다.

진보 정부가 국방비를 줄일 것이라는 직관을 무색하게 하는, 취임사의 실현이다. 부정적 효과를 생각한다. 첫째, 힘을 통한 평화는 촛불혁명의 의제였던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라는 평화감수성을 훼손한다. 최소한 적정 규모의 군사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토론하는 공론장을 만들어야 했다. 둘째, 국가 장치의 민주적 통제라는 현 진보 정부의 과제와 반대로 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군의 자율성은 확대된 예산을 토대로 보다 강화된다. 셋째, 보건ᆞ복지ᆞ노동 관련 2020년 예산이 12.8% 증가했지만 국방비의 복지비 전환을 통한 군축이라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상상력을 억제한다. 넷째, 군비증강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북한을 포함한 주변국의 군사적 맞대응을 야기한다. 즉 안보 딜레마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가 한반도 평화 과정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라면, 2020년 국방예산안은 재고돼야 한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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