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프루스트의 마들렌(11.18)

입력
2019.11.18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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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셸 프루스트가 켈트 신화에서 착안한 '프루스트 효과'는 현대 과학에 의해 유효한 근거들을 획득해 왔다. pixabay 사진.
마르셸 프루스트가 켈트 신화에서 착안한 '프루스트 효과'는 현대 과학에 의해 유효한 근거들을 획득해 왔다. pixabay 사진.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란 향기로 기억이 환기되는 현상 일반을 일컫는 심리학 용어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7.10~ 1922.11.18)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소설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을 머금는 순간 유년의 기억을 환기하는 유명한 에피소드에서 비롯된 용어다. 그 에피소드는 소설 1권 1부 끄트머리에 등장한다. “내가 찾는 진실이 음료 속에 있지 않고, 나 자신 속에 있다는 건 확실하다. 음료는 내 몸속에서 진실을 눈뜨게 했다.(…) 그러한 모든 것이 형태를 갖추고 뿌리를 내려, 마을과 정원과 더불어 나의 찻잔에서 나왔다.”(국일미디어, 김창석 번역본)

마들렌 에피소드가 워낙 극적이어서 가장 유명하지만, 저 소설에는 향기가 기억을 자극하는 장면들이 꽤 빈번하게 등장한다. 저 대목 훨씬 앞에도, 어머니 곁에 더 머물고 싶은 유년의 화자가 어쩔 수 없이 2층 침실로 올라가며 맡곤 하던 나무 계단의 니스 냄새에서 슬픈 기억을 되살리는 장면이 있다. “그 냄새는 내가 저녁마다 느끼는 특별한 슬픔을 흡수해 버려 굳히고 있었는데, 모르면 몰라도 이 냄새는 내 감수성을 가장 심하게 해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후각의 상태에서는, 나의 이성은 이미 제구실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루스트 효과는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과학적 근거들을 획득해 왔다. 장미향 같은 좋은 향기와 함께 특정 정보를 접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정보를 잘 기억하더라는 실험, 해마 손상 등으로 인한 기억 입력 장애의 일종인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경우 발병 초기 다른 감각보다 먼저 후각 기능을 상실하는 예가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수백만 년 전 진화시대의 고인류에게 천적이나 사냥감을 식별하는 데 시각보다 더 절실했을 감각이 후각이었으리라는 점을 들어, 후각은 생존과 직결된 특권적 감각기억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물론 프루스트가 저런 과학을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가 기댄 건 켈트 신화였다. 우리가 여읜 이들의 혼이 짐승이나 식물이나 무생물 안에 깃들었다가 어떤 계기에 “죽은 이들의 혼이 소스라치게 우리를 부르고”, 만일 우리가 그 목소리를 알아채면 마술의 결박이 풀려 그 혼이 되살아난다는 이야기. 그는 과거가, 기억이, 그와 같다고 여겼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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