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저는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주부예요. 남편과 6년을 연애하고 결혼했어요. 저에게는 손위 시누가 있는데, 시누는 처음부터 저희 결혼을 반대했어요. 주변에 조건 좋은 사람들도 많은데 공무원시험 준비 중이던 저와 결혼한다고 못마땅해했죠. 결혼할 때만 해도 남편과 아무 문제가 없었고, 시부모님도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시누의 반대는 개의치 않았어요.

그런데 신혼여행을 다녀오고서부터 시누는 다짜고짜 제게 전화해 “집에서 노니깐 좋아?”라며 저를 힘들게 했어요. 저는 설마 저한테 나쁜 의도로 그렇게 얘기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황했지만 “공부만 하다가 처음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니까 좋아요”라고 답했어요. 그랬더니 시누는 “남들은 돈 벌려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하는데 그렇게 놀고먹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고?”라며 기막혀 했어요. 저에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동생에게 잘해 주길 바라’라는 문자도 종종 했어요.

처음에는 호의로 생각했지만, 시누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려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남편의 당부로 전화나 문자는 줄었지만 시누는 저와 만날 때마다 가시 돋친 말들을 뱉어냈어요. 지금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로 판정받은 아들이 네 살 무렵 처음으로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가게 됐을 때였어요. ‘시댁에 알리지 말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어머니와는 관계가 좋아 고민 끝에 시어머니께 병원에 간다는 얘길 했어요. 그로부터 한 달 뒤 시댁에서 만난 시누는 저에게 “애 데리고 정신병원 이리저리 다니니까 좋아?”라고 말했어요. 너무 놀라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그때도 “애가 좀 예민한데 제가 모르는 게 많아서 심리 상담을 받아 보고 싶어서요”라고 좋게 얘기했지만 시누는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다면서 애 키우는 데 그리 자신이 없어? 그럴 거면 책은 왜 읽어. 애 데리고 정신병원을 다녀서 동네에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래. 나 같으면 소문날까 봐 그렇게 못할 텐데 올케는 안 그런가 봐”라고 하더군요. 시누 남편과 사촌들도 다 있는 자리에서요. 무척 수치스럽고 분하더라고요. ‘원래 표현이 서툰 사람이잖아’하고 이해하려 해도 속에서 화가 치밀어 너무 힘듭니다.

게티이미지뱅크

6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충격과 분한 마음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도 시누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자기 식구들까지 데리고 종종 저희 집에 와서 자고 가려고 합니다. 계속 핑계를 대고 피해도 자꾸만 일정을 만들어서 옵니다. 남편은 시댁 식구들이 오는 걸 막지 못하고, 저에게 이해해 달라고 합니다. 누나에게 주의를 줬으니 집에 오는 건 참아 달라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10년간 너무 힘들었고,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 같은 불안감에 잠도 제대로 오지 않습니다. 시누의 딸들과 잘 지내는 아들이나 남편을 생각하면 제가 좀 참아 볼까 싶기도 하지만 시누가 집에 오는 것을 용납하면 제 스스로가 용서가 안 됩니다. 이 상황을 매끄럽게 잘 거절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김은진(가명ㆍ40세ㆍ주부)

은진씨, 우리는 혈연이건 혼인으로 맺어졌건 가족 간에 크고 작은 갈등을 겪어요. 가족이어서 갈등이 생기더라도 단절하고 안 보고 살겠다고 단번에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워요. 단절하더라도 좀 더 성숙하고 건강한 방법으로 해야 자기 자신에게 상처가 되지 않아요. 그러려면 우선 갈등관계에서 이 문제가 나로부터 시작된 면이 많은지, 상대방에서 비롯된 건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해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도 객관적으로 알아차려야 해요. 넓은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라는 게 아니라 단절할 때 하더라도 상처를 최소화하려면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는 게 중요합니다.

사연만 놓고 보면 당신이 시누와 갈등을 겪는 것은 시누의 문제가 크다고 보여요. 당신은 대체로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시누를 제외한 다른 가족과는 관계가 좋아요. 남편과도 잘 지내고, 아이에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전문가를 찾아가는 등 부모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어요. 시부모님과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시누는 어떤 사람이길에 당신과 계속 갈등을 빚는 걸까요. 제가 보기에 시누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상황에서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 같습니다. 핵심적인 것과 비핵심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매 상황을 지극히 주관적이고 임의적으로 판단하지요. 아끼는 동생이 경제적인 상황 등 여러 조건이 다소 기우는 사람과 결혼을 할 때 ‘살면서 둘이 서로 마음이 잘 맞는 게 가장 중요하지’라고 판단하는 게 일반적이죠. 하지만 시누는 보편타당한 방식이 아니라 자기가 임의로 설정한 방식과 기준으로 상황을 판단해요. 이런 사람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일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 뭐가 중요한지, 뭐가 덜 중요한지를 매우 주관적으로 결정합니다. 자기 혼자 괴로운 게 아니라 상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본인은 동생을 위한다고 하지만, 동생을 위하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의 불만족과 스스로 속상한 것을 당신에게 그냥 뿜어내는 겁니다. 그런 막말과 행동을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은진씨의 시누와 같은 사람의 문제는 자신이 기분이 나쁘면 상대를 응징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나 너 때문에 기분이 나쁘거든, 내 기분 나쁜 거를 너한테 좀 표현해야겠어’라고 생각하고, 상대에게 상처를 줍니다. 시누가 당신에게 한 말들은 엄청난 모욕과 빈정거림, 비난이고 질책이었어요. 그렇게 비난하고 모욕해서 상대를 괴롭히지요. 시누 같은 특징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도 당신은 시누를 바꿀 수 없을 거예요. 오히려 관계를 좋게 하고, 대화로 마음의 거리를 좁히려고 시도했다가, 잘 안 돼서 받는 상처가 반복되면 당신은 더더욱 힘들어질 거예요.

게티이미지뱅크

시누를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은진씨가 할 수 있는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거예요. 핑계를 대거나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라는 얘기예요. 시누와 얼굴을 붉히고 싸우라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는 게 무척 불편하고 싫으니 우리 집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정확하게 의사를 말하세요. 목소리를 높이거나, 격분하지 말고, 분명하고 침착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물론 시누는 화를 내고, 은진씨에게 또 모진 말들을 심하게 내뱉겠지요. 그걸 각오해야 합니다. 남편에게 전달하게 하거나,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할 수 없어요. 시누는 당신이 아무리 완곡하게 돌려서 얘기해도 당신에게 화내고, 욕할 거예요. 결과가 똑같기 때문에 아주 냉정하고 침착하게 입장을 전달해야 해요. 왜 그러냐고 따져 물으면 “어떤 의도건 당신의 말에 나는 상처를 많이 받았다. 나의 그릇이 부족해서 그렇다. 그런 말에 상처를 계속 받으면 너무 괴롭다. 그래서 당신을 계속 보면 정말 당신을 미워하게 될 것 같고, 그렇게까지는 되고 싶지 않으니 안 오는 게 좋겠다”고 말하세요.

시누에게 말하기 전에 남편과 시어머니에게는 미리 귀띔을 해 두는 게 좋습니다. 남편에게 “내가 시누에게 말할 건데 당신은 내게 ‘당신이 좀 참지 그랬어’ ‘당신이 좀 이해해 주면 좋겠어’라고 말하지 말았으면 해. 나는 너무 많이 견뎠고, 그래서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고 하세요. 시어머니에게도 “어머니가 저를 나쁘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지만, 시누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고, 그것으로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아서 보는 게 무척 힘들다”라고 하세요. 시어머니가 시누 편을 들 수도 있고, 은진씨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시어머니에게 이해나 동의를 구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입장을 전달하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시누나 남편, 시어머니가 서운해할 얘기를 은진씨가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그동안 은진씨는 다른 사람들과 두루두루 원만하게 잘 지내왔고, 좋게 좋게 얘기하고, 서로 잘 이해해서 좋은 관계들을 유지해 온 것 같아요. 이런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은 싫은 소리를 해서 관계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는 방식에는 서투르지요. 하지만 은진씨, 세상을 살다 보면 상식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생깁니다. 아무 이유 없이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해요. 진심으로 대해 줘도 흉을 보기도 하고 험담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건 내 노력으로 피할 수 없어요.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잘 지내지, 혹은 어떻게 해야 오해였다고 나의 진심을 설명하지’라고 괴로워하기보다 합당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해요. 당신이 해 온 좋게 좋게 얘기해서 상대가 잘 알아채고 서로 잘 지내는 방식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거나 최선의 방법은 아니에요.

게티이미지뱅크

은진씨는 그간 ‘내가 좀 더 참으면 아이가 고모와 사촌과 잘 지낼 텐데’ ‘남편 누나인데 내가 좀 이해해야지’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아이와 남편 때문에 시누의 부당함을 감당하기에는 당신이 너무 괴롭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넘어가면 당신은 피폐해지고 병이 날지도 몰라요. 아이와 남편을 위해서 하는 행동 때문에 당신이 불행하다면, 아이와 남편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겁니다. 아이에게도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습니다. “엄마는 고모와 좀 불편하고, 같이 있으면 마음이 힘들어서 참는 게 어려워. 자꾸 얼굴을 보면 사이가 너무 나빠질지 몰라서 자주 만날 수 없어. 하지만 네가 고모나 사촌과 잘 지내는 것은 괜찮아”라고 설명하면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아이가 너무 어리다면 비유를 하는 것도 좋아요. “사이가 나쁜 같은 반 A와 B가 있는데, 둘은 자꾸 싸우는데 선생님이 사이 좋게 지내라면서 둘을 짝을 지어 줬어. 그러면 사이가 좋아질까, 나빠질까”라고 말이에요.

은진씨, 10여년간 당신은 오래 참았고, 당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했어요. 그간 당신이 만나 온 사람들과 다른 유형의 시누 같은 사람을 대해 본 경험이 부족해서 힘들었지만, 관계가 더 나빠져서 당신의 마음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 차고, 상대를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자리잡는 것은 당신에게 너무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러지 않기 위해 시누에게 분명하게 얘기를 해야 해요. 지나치게 애써 시누를 이해시키거나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당신의 본질과 당신이라는 사람의 가치는 언제나 그대로일 거예요.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상담을 신청해 보세요. 상담신청서를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상담신청서 내려받기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