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기본소득과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입력
2019.11.11 04:40
31면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청년 불평등과 청년수당, 청년출발지원 정책의 필요성'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청년 불평등과 청년수당, 청년출발지원 정책의 필요성'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 제32조 제2항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이 근로의 의무 조항은 제헌 헌법 당시부터 존재했다. 복지국가적 관점에서 이를 근로의 능력이 있는데도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생활 보호를 하지 않는다는 뜻의 표현이라고 보거나, 공화주의적 시각에서 ‘우리가 전혀 타인이라면 모르되 적어도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 공존하는 국민이라면 고된 노동을 하고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국민과 타인의 노동에 기생하여 사는 국민이 공존해서는 안 된다’라고 풀이하기도 한다(김동훈, ‘한국 헌법과 공화주의’, 경인문화사).

근로, 즉 사람이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은 사회연대(social solidarity)의 기초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연대와 복지국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사회연대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호 의존과 상호 원조를 말하고, 개인의 사회에서의 상호 공존을 위한 인간의 연대성에 근거한다. 이것은 사회보장 시스템의 단순한 특징이 아니라 본질이다(장승혁, ‘사회연대원리의 기원과 발전’, 사회보장법연구 3권 2호). 인간은 다른 사람과 함께 노동할 때, 그것이 물리적으로 인접하거나 그 노동을 직접 볼 수 있는지와는 무관하게, 연대 의식을 느낀다. 이 경험은 상호부조로 연결된다. 예컨대 세계대전 동안 영국민들이 파시즘에 맞서 함께 싸우고 일하며 경험한 연대감은 전후 베버리지 보고서로 대표되는 사회보장 시스템의 건설로 이어졌다. 됭케르크 정신이 영국 복지국가의 출범을 이끈 계기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거리에서 문득 느끼는 타인에 대한 동질감 또는 연민은 한국 사회보장의 보이지 않는 사회연대적 계기이다.

이 점에서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단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란 결론으로만 이해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노동’ 또는 ‘근로’가 사라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일자리의 상당수는 노동과 자영업의 경계선에서 만들어지고, 전통적인 일자리 범위에 넣을 수 있는 직업의 수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 근로의 의무 조항이 도입된 1948년 제헌헌법 때와 달리 노동시장에서 ‘완전고용’이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경계의 노동 또는 자원봉사 등 다양한 활동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노동’은 개인이 사회연대 의식을 경험하거나 사회적 관계로 들어가는 가장 익숙하고 보편적인 수단이자 통로이다.

다만 청년에 대한 지원은 기본소득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 청년이 얻는 일자리의 질은 자주 그가 속한 가족의 소득 수준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중산층 이상 가정의 청년은 부모의 경제적 지원과 격려 속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찾거나 자신이 원하는 창업 활동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속하지 않는 청년들의 경우에는 생계 등의 이유로 자신의 적성이나 의지와 무관한 일자리를 얻어야 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이렇게 구직 활동의 질과 지속 여부가 부모의 소득에 좌우되는 상황은 청년들 사이의 연대 의식과 공정성을 훼손한다. 이는 미래 한국의 불안 요소이다. 청년에 대한 지원에는 보편성이 필요하다.

최근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이 저소득 미취업 청년의 아르바이트 시간과 생계비 부담을 줄이고 구직 활동에 들이는 시간을 늘렸다고 한다. 설문 참여자의 99.7%가 본인의 진로 및 취업 목표 성취에 지원금이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했고, 특히 압도적 1위로 ‘경제적 부담이 줄어 구직 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고 한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원금 제도가 청년들 사이의 공정성을 보완하고 청년들의 희망을 지원하는 토대가 되었다는 건 반가운 소식이다. 이 제도가 여기에 머물지 않고 더욱 보편적인 제도로 발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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