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회장 ‘불신임 잔혹사'가 계속되는 이유는

입력
2019.11.09 11:00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임기 반환점을 돌았는데 ‘불신임’이야기가 나온다. ‘문재인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총력 저지를 내걸고 지난해 5월 제40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회장에 취임한 최대집 의협 회장 이야기다. 최 회장 임기는 2021년 4월말까지다.

4일 경기도의사회는 성명을 내고 의협이 마련한 의료전달체계 개선안이 개원의사들의 이해를 반영하지 못한다며 최 회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경기도의사회는 “의협은 의료전달체계 TF 위원 구성 당시부터 정관상 (정식) 단체인 대한개원의협의회와 대한병원의사협회를 홀대하고, 병원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졸속으로 구성된 임의단체인 대한지역병원협의회 인사를 위원장, 간사, 위원으로 중용했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에 대한 불신임 운동도 전개되고 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는 지난달말부터 협회 홈페이지에서 최 회장을 비롯한 의협 집행부 불신임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병의협 측은 “전임 39대 의협 집행부의 무능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오로지 ‘문재인케어 저지’를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현 집행부가 문재인케어의 확대에 아무런 저지를 못하고 있다”며 불신임 운동을 촉구했다.

병의협은 4일 최 회장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까지 했다. 지난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당시 ‘정의가 구현되고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원하는 대한민국 의사들’이란 정체불명의 단체가 조 전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해 대외적으로 공표했는데, 서명에 참여한 의사 6,137명의 의사들이 실제 의협 회원인지를 최 회장이 무단으로 확인해줬다는 게 병의협의 설명이다. 병의협 측은 “의협이 서명한 의사들이 실제 의협 회원인지를 대조, 확인한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2017년 1월 극우성향의 ‘자유통일해방군’이란 단체를 만들어 창설위원장을 자처하는 등 극단적 정치성향으로 구설수에 오른바 있다.

 

 전 회장 불신임 밀어부친 최 회장도 예외 못 돼 

의료계 최고 전문가 집단임을 자처하고 있는 의협의 수장이 불신임에 시달리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의협 회장 ‘불신임 잔혹사’의 첫 주인공은 제37대 노환규 회장이다. 노 전 회장은 2014년 4월 19일 의협회관에서 열린 임시 대의원총회에서 불신임안이 통과돼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의협이 설립된 지 10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노 전 회장은 시ㆍ도의사회장단과 상의 없이 집단휴업을 했고 이후 진행된 의정(醫政)협의 과정에서도 시ㆍ도의사회장단과 상의 없이 집단휴업과 의정(醫政)협의를 결정했다는 이유 등으로 불신임을 당했다. 특히 그는 의협행사에서 목에 흉기를 긋는 돌발행동을 하는 등 물의를 빚으면서 대의원들을 자극했다.

노 회장 후임으로 제37,38대 회장을 역임한 추무진 전 의협 회장은 2017년 9월, 2018년 2월 임시 대의원총회에서 불신임안이 상정됐다. 다만 정족수 부족으로 불신임 위기를 면했다. 추 회장 역시 노 전 회장처럼 독단적으로 의협을 운영했다는 것이 불신임 이유였다. 추 회장에 대한 불신임을 주도한 인물이 현 회장인 최대집 회장이다. 당시 전국의사총연합 대표였던 최 회장은 2017년 9월 열린 의협 임시 대의원총회에서 추 회장에 대한 불신임안이 부결되자 단상에 머리를 박는 등 극단적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회장 불신임안이 대의원 총회에서 두 번이나 부결되자 의사들은 “생명력 하나는 끝내준다”며 추 회장을 불사조(피닉스)에 빗대어 ‘피닉진’이라고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 제공

 

 의협 정치화… “일단 반대하고 보자” 

의협 회장들이 연례행사처럼 불신임을 당하는 것에 대해 현장에서는 의협 자체의 구조적 문제 떄문이라고 진단한다. 의협의 한 산하단체에서 근무했던 의사 A씨는 “봉직의, 개원의, 전공의 등 다양한 직군의 의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 의협”이라며 “이들 의사들의 이해관계와 생각이 달라 자신들 생각과 달리 의협이 움직이면 회장과 집행부를 성토하는 것이 관례화됐다”고 말했다. 의협 선거가‘정치판’처럼 변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의협 관계자는 “누가 회장이 돼도 일단 흔들어 놓으면 다음 선거에서 유리한 발판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 반대를 위한 반대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최 회장에 대한 불신임은 현 집행부가 자초한 결과라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저수가 문제, 문제인케어, 원격의료 등 굵직한 현안을 의협이 제대로 풀어갈 능력이 있는지 의아해하고 있다”며 “국민과 사회에 봉사하지 못하고 개원의 등 특정 세력의 이익만 쫓다가는 시대에 뒤떨어져 협회 자체가 붕괴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의협에서는 정부가 자신들과 상의를 하지 않고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성토하는데, 이는 결국 정부가 의협을 대화 파트너로 삼을만한 자격이나 실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하 의협 홍보이사는 “과거처럼 대의원들이 불신임안을 상정하는 등 극단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불신임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알고 겸허히 비판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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