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보기] K-POP은 누구의 꿈을 꾸는가

입력
2019.11.09 04:40
26면
현재 한류의 중심인 K-POP은 비유하자면 큰 판돈이 걸린 도박판이다. 더 이상 산업은 한국에만 머물지 않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성공하기까지는 어렵지만 일단 성공만 하면 큰 수익을 보장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CJ가 만드는 것과 같은 방송 콘텐츠는 엄청난 권력을 갖는다. 안 PD를 비롯한 엠넷은 결국 이 판의 설계자들이었고, 그들에게 접대를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은 조력자들이었던 셈이다. ‘꿈’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강조하는 산업이, 실제로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꿈과 가장 거리가 멀었다는 뜻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현재 한류의 중심인 K-POP은 비유하자면 큰 판돈이 걸린 도박판이다. 더 이상 산업은 한국에만 머물지 않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성공하기까지는 어렵지만 일단 성공만 하면 큰 수익을 보장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CJ가 만드는 것과 같은 방송 콘텐츠는 엄청난 권력을 갖는다. 안 PD를 비롯한 엠넷은 결국 이 판의 설계자들이었고, 그들에게 접대를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은 조력자들이었던 셈이다. ‘꿈’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강조하는 산업이, 실제로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꿈과 가장 거리가 멀었다는 뜻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영원히 기억하고 영원히 언급할 수밖에 없는 한마디가 있다. 엠넷 ‘프로듀스 101’을 기획한 한동철 PD(현재 YG엔터테인먼트 소속)는 한 인터뷰에서 “남자들에게 ‘건전한 야동’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밝혀 비난을 받았다. 앞에서는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경쟁에 참여한 연습생들에게는 ‘꿈을 이루려면 버텨야 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놓고 ‘야동’이라는 말로 프로그램 참가자와 시청자 모두를 기만하는 그를 보며, 당시에는 그 한 사람의 인식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최근 ‘프로듀스 101’ 시리즈를 연이어 연출한 안준영 PD가 순위 조작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이 인터뷰를 다시 떠올렸다. 안 PD는 전체 4개 시즌 중 ‘프로듀스 48’과 ‘프로듀스X 101’의 순위 조작을 인정했다. 그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기네들의 연습생을 데뷔시켜 달라는 의미로 연예기획사들로부터 서울 강남 일대 유흥업소에서 40차례 이상, 전체 액수 1억원이 넘는 접대를 받았다고 한다. 과연 이것이 안 PD 개인 차원의 문제일까 의심되는 한편, ‘WE ARE K-POP’이라는 엠넷의 메인카피에 대해서도 질문할 수밖에 없다. 저기서 ‘우리’는 대체 누구인가?

101명의 아이돌 연습생 중 시청자 투표를 통해 데뷔 멤버를 뽑는다는 방식의 ‘프로듀스 101’은 시종일관 연습생들의 꿈을 강조했다. 그것은 누군가의 간절한 희망을 이뤄주고 싶은 ‘국민 프로듀서’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이기도 했고, 프로그램에 참가한 연습생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방법이기도 했다. 10대 중반에서 많아야 20대 중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연습생들은 TV 앞에 앉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신체 부위를 나뉘어 낱낱이 평가받고, 상상 이상의 빡빡한 스케줄과 열악한 환경에 놓여야 했지만 프로그램 안에서 이 모든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이라는 말로 정당화됐다. ‘프로듀스 101’ 시리즈뿐만이 아니다. 지난 10월 방송된 MBC ‘PD 수첩’ ‘CJ와 가짜 오디션’ 편에서는 역시 엠넷의 아이돌 서바이벌 리얼리티쇼인 ‘아이돌학교’의 제작진이 여성 연습생들을 제대로 먹이지 않고 제대로 재우지도 않는 등 비인간적으로 대우했으며, 데뷔할 연습생들 역시 내정돼 있었다는 증언이 등장하기도 했다.

현재 한류의 중심인 K-POP은 비유하자면 큰 판돈이 걸린 도박판이다. 더 이상 산업은 한국에만 머물지 않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성공하기까지는 어렵지만 일단 성공만 하면 큰 수익을 보장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CJ가 만드는 것과 같은 방송 콘텐츠는 엄청난 권력을 갖는다. 어떤 연습생이 ‘프로듀스 101’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비중있게 나올 경우, 그는 데뷔 전부터 K-POP 시장에서 주목받을 기회를 선점하고 데뷔하자마자 글로벌 스타가 된다. 안 PD를 비롯한 엠넷은 결국 이 판의 설계자들이었고, 그들에게 접대를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은 조력자들이었던 셈이다. ‘꿈’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강조하는 산업이, 실제로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꿈과 가장 거리가 멀었다는 뜻이다.

이 글에서 맨 처음 언급한 한 PD의 발언, 올해 1월 폭로됐던 버닝썬 게이트, 이번 사건까지 쭉 지켜보며 K-POP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누구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묻게 된다. 오로지 춤과 노래를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발을 담근 연습생들을 착취ᆞ기만하고, 산업을 통해 얻은 부와 권력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을 저지르고, 여성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판이라면, 여기 필요한 것은 국위선양의 주역으로서 받는 박수가 아니라 엄격한 감시와 규제다.

황효진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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