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담] “비례대표 욕심 없다… 청년들 불만ㆍ바람 가감 없이 전할 것”

입력
2019.11.07 20:00
28면
프로게이머 출신 20대 유튜버 황희두(왼쪽)씨가 양정대 논설위원과 만나 민주당 총선기획단 위원으로서의 포부를 이야기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프로게이머 출신 20대 유튜버 황희두(왼쪽)씨가 양정대 논설위원과 만나 민주당 총선기획단 위원으로서의 포부를 이야기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바야흐로 ‘총선 시즌’이 시작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지난 5일 경쟁하듯 총선기획단을 출범시켰다. 내년 4월 15일에 치러질 21대 총선까지는 아직 5개월도 더 남아 있고, 2016년 20대 총선 당시엔 주요 정당들이 2~3개월 전에야 총선기획단을 꾸렸다는 점에서 이번에는 여야 모두 일찌감치 총선 체제로 전환했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총선기획단의 면면에서는 민주당이 한국당보다 후한 평가를 받았다. 한국당은 황교안 대표의 측근들이 주축이 된 무난한 인선인 데 비해 민주당은 ‘조국 사태’ 이후 당 안팎의 쇄신 논란을 의식해 여성과 청년의 대표성을 높이는 데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특히 프로게이머 출신의 20대 유튜버 황희두(27)씨는 민주당 총선기획단에 대한 주목도를 단번에 높였다. 주요 정당들이 큰 선거를 앞두고 2030세대를 깜짝 발탁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그의 독특한 이력과 활동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시사 문제를 다루는 프로게이머 출신 유튜버, 다소 낯설다.

“사실 나조차도 시사 문제를 다루는 유튜버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 2016년 촛불 혁명을 지나고 이듬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페미니즘 논란과 함께 여성 혐오를 소재로 한 유튜브 방송이 굉장히 활발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난과 공격으로 이어지는 걸 봤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겠지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사실부터라도 하나씩 알려나가자는 생각에 유튜브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튜브 방송을 할 계획이 없었던 건가.

“프로게이머 활동을 같이 했던 동료들 중에 유튜브가 활성화되기 전 아프리카TV 등에서 개인방송을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런데 ‘게임만 했던 놈이 뭘 알겠냐’는 등의 비난이 정말 많더라. 솔직히 이런 인식을 개선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선뜻 나서지는 못했다. 대신 나름대로 사회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페미니즘 논란을 거치면서 ‘알리미’ 활동을 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1992년생인 황희두씨는 고교 재학 중인 2009년 ‘MBC 게임 히어로’에 입단해 프로게이머로 1년 가량 활동하다 은퇴한 뒤 2016년 비영리 민간단체 ‘청년문화포럼’을 설립해 북트로(지하철 내 독서 장려), 해외 오지마을 살리기, 노란 목도리 캠페인 등 공익적 청년운동에 주력했다.

-프로게이머에서 은퇴한 뒤 다양한 사회활동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이해하고 이해받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들었다. 나는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프로게이머가 되는 혹독한 과정을 거쳤다. 그 때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뒤쳐지는 사람은 능력과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특히 아버지(수필가 황태영)와 문화ㆍ예술계 인사들이 독서 장려, 편지쓰기 등을 진행한 ‘북레터 365’ 운동에 참여하면서 많이 배웠다.”

-서울시의 청년수당 정책은 찬반이 뚜렷한데 적극 지지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프로게이머 은퇴하고 나서 20대 초반에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 하루는 정수기 물통을 배달하는 친구가 사는 게 힘들다길래 ‘네가 꿈이 없어서 그렇다’고 핀잔을 줬다. 내가 프로게이머 하겠다고 할 때 무시하던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던 걸 경험한 뒤라 나도 모르게 ‘남 탓하지 마’라는 식으로 가르치려 들었던 것이다. 그날 ‘나는 하루라도 일을 못하면 삼각김밥 먹기도 힘들다’는 그 친구 말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내 주관이 뚜렷한 것도 좋지만 사회 생활의 출발점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적어도 기회나 과정이 공정하고 평등한 방향을 향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서울시는 최근 중위소득 150% 미만, 만 19~34세 서울 거주자 등 기본요건을 충족하는 청년이면 별도의 선발 과정 없이 누구나 신청만 하면 내년부터 월 50만원의 구직비용을 최대 6개월간 받을 수 있게 했다. 내년 총선에서 이를 포괄하는 ‘기본소득’이 주요한 이슈 중 하나로 부각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 총선기획단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혹시 원래 알고 지낸 정치인이 있나.

“얼마 전 나의 유튜브 활동을 인상깊게 보고 있다는 민주당 관계자의 전화를 받았다. 만나서 유튜브 활동과 관련해 얘기를 하던 중 총선기획단 참여를 제안받았다.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 싶어 수락했다. 청년문화포럼 할 때부터 정치인들과 여러 행사에서 만난 적은 있지만 특별히 친분 있는 정치인은 없다.”

-아마도 ‘조국 사태’ 이후 청년세대와의 소통을 염두에 둔 제안이었을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요구받았나.

“당에서 이런 역할을 해달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제안을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답답했던 부분들, 알리고 싶었던 부분들이 더 많았고 그래서 참여하기로 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당내에 청년들의 목소리가 전달되는 통로도 이미 여럿 있을 테고 청년위원회 활동도 활발하겠지만, 어딘가 자그마한 빈틈 때문에 오해나 왜곡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경우가 있을 텐데 그런 것을 보완하는 것, 기존의 공식적인 통로로는 포착되지 않는 청년세대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 이런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엊그제 첫 회의를 했는데 어떻든가.

“굉장히 긴장을 많이 했다. 주변에서도 ‘너 혼자 20대인데 감당이 되겠냐’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회의장에 들어가서도 위축이 됐다. 그런데 막상 회의가 시작된 뒤에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해찬 대표를 비롯해 다른 위원들 모두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나를 포함한 청년세대의 목소리를 존중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한 것 같았다.”

-과거에도 대선이나 총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년층의 의견을 듣겠다거나 후보로 내세우는 상징적인 조치들이 있었지만 큰 성과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 역시 많은 욕심을 부리지는 않을 생각이다. 다만 기회가 주어진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연령으로는 청년세대라는 규정이 가능하지만, 그 안에도 경제ㆍ사회적 배경이나 정치적 입장이 다양한데 이들의 의견을 어떻게 전달할지 궁금하다.

“거창한 포부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유튜브 방송을 하다 보면 댓글이나 메일 등을 통해 여러 의견들을 접할 수 있고, 여러 사회ㆍ문화단체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청년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상식 수준에서 걸러낼 것도 있겠지만 가급적 있는 그대로의 비판과 의견을 전달할 생각이다. 설령 개인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더라도 당에 약이 되는 쓴소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젠더 갈등이나 정년 연장 문제, 최저임금, 주 52시간 등 여러 현안에서 민주당이 지향하는 바와 다른 목소리에서도 합리적으로 경청할 만한 지점들이 있을 것이라는 열린 생각이 필요하다.”

-윤호중 사무총장이 청년 비례대표 몫을 늘리겠다고 했는데, 이런 점을 의식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오래 전부터 오해를 받았다. 프로게이머를 하다가 정치ㆍ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니까 짓궂은 친구들은 나를 ‘이미 정치인’이라고 놀리기도 한다. 솔직히 정치는 나쁜 게 아니고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게임에 국한시키더라도 산업이나 문화 측면에서 할 일이 많겠지만 하루 아침에 그게 되는 건 아닐 것이다. 누군가가 받침대부터 놓아야 하고 지금 내 역할을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생물이라는데 너무 딱 잘라서 말하는 것 아닌가.

“‘혹시 모르지 않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단정적으로 말하건대 총선기획단 활동이 마무리되면 다시 유튜브 활동에 전념할 것이다. 사실 내 주위에도 현실 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고 이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꿈을 펼칠 수 있게 지원하는 게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총선기획단의 일원이 된 상황에서는 총선 출마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어야 민주당을 향한 비판과 바람, 그리고 비난까지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양정대 논설위원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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