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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제2 출발점’에 서다] <5>
열린우리당 시절 분열의 트라우마… 여당의 존재감 상실
지난달 3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일반 법안들이 통과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우리는 지난 두 달간 '침묵의 카르텔'을 지켰다. 과거 분열 경험을 성찰해 나온 현상이지만, 당에 바람직하다고 볼 순 없다."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ㆍ4일 의원총회에서)

최근 청와대를 대하는 여당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은 ‘침묵의 카르텔’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과 이에 따른 여당 지지율 하락 등 ‘조국 사태’의 우여곡절을 모두 거치고 나서야 이런 ‘자기 진단’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목소리’를 금기처럼 여기는 분위기를 일각에선 ‘질서 있는 논의’라고 의미 부여하지만, ‘여당이 청와대를 향해 제 할 말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당 안팎의 평가는 ‘글쎄올시다’이다.

정권의 성공을 위해 여당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으로서 입법 활동을 통해 국정 운영에 발맞추는 것, 또 ‘민의의 전당의 대표’로서 세심히 파악한 민심을 토대로 청와대와 정부의 실책을 견제하는 것.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초토화된 정권을 물려받은 민주당은 ‘청와대 견제’보다는 ‘보조와 지원’에 방점을 찍어 왔다. 그러나 ‘조국 사태’를 맞이하면서부터 그 한계가 극명해지기 시작했다.

여당 핵심 인사들은 “중구난방으로 떠들지 않을 뿐, 당이 할 말을 다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이런 비판을 일축한다. “조 전 장관을 향한 검찰의 이례적 수사 행보로 스텝이 다소 꼬이긴 했지만, 장관 임명 전후로 상당히 다양한 의견을 취합해 청와대와 적극 토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신파나 비주류, 초선 의원들의 시각은 다르다.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표창원 의원은 같은 상황을 놓고 “당에 피해를 끼칠까, 당원들에게 상처를 줄까 걱정돼 솔직한 제 생각을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분양가 상한제, 대입 정시 확대, 타다 규제 등 민감한 정책 현안과 관련해 청와대가 그립을 세게 쥘 때마다 청와대와 뜻이 다른 의원들은 주로 침묵을 택했다.

민주당이 ‘불안한 정적’에 지배 당하게 된 건 무엇보다 열린우리당 시절 분열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그런 혼란을 다시 겪지 말자는 강한 자기검열 기제가 당 전체를 압도한다. 한 중진 의원이 “20대 총선 이후 당선자들이 모두 모인 첫 자리에서 한 목소리로 강조한 것이 ‘다시는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였다”고 기억할 정도다. 내부 토론은 활발하다지만, 당 지도부가 청와대와 박자를 맞추기로 정하고 나면 수정 여지는 별로 없다. 당 안에서 이견을 말하면 ‘그런 의견을 경청하긴 했지만 일부의 생각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되고, 당 밖에서 목소리를 내면 ‘저만 잘난 줄 아는 이’로 몰린다. 가장 안전한 선택은 ‘어쨌거나 침묵’이다.

차기 총선 공천과 내각 입성 여부가 걸려 있는 한, 의원들은 정권 핵심부의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은 데다 열성 지지자들의 기세가 등등한 상황에서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걸고 ‘바른 말’을 하기란 쉽지 않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 지지율이 당 지지율보다 압도적으로 높으니 의원들 입장에선 이를 의식할 수 밖에 없다”며 “이런 구도가 지속되면 여당의 존재감나 정치의 기능이 실종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21대 총선이 다가오면서 ‘문 대통령 핵심 지지층과 청와대를 향한 일편단심’을 경계하는 당내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 한 중진 의원은 “남은 시간 동안 당이 할 역할이 참 중요하다”며 “몇 가지 주요 현안에 있어서라도 여당이 재량을 가지고 정국을 이끌어나간다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에게 여당의 존재 이유를 설득하고 지지를 호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만 바라보느라 여당의 위상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당과 청와대의 힘이 동시에 빠질 수 있다는 문제 의식이다. 또 다른 중진 의원은 “무조건 반대만 하는 ‘비토크라시’를 구사하는 야당의 책임은 분명하나, 야당을 끌어가지 못하는 근본적 책임은 여당에 있음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권 하반기에 접어드는 문재인 정부의 ‘최종적 성공’을 위해선 여당 내 소장파와 개혁파의 자리가 복원돼야 한다는 요구도 지속적으로 나온다. 표창원 의원은 최근 본보 인터뷰에서 “동질적 목소리만 있는 조직에선 반드시 잘못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생긴다”며 “다른 목소리의 역할이 용인되고, 제가 느꼈던 고민이나 두려움 없이 누구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당의 분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적폐 청산을 제외하곤 뚜렷한 여권의 비전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여당 역시 적극적으로 의제를 주도하고 국회 상황을 풀어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영 shine@hankookilbo.com

정지용 cdragon25@hankookilbo.com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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