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 다크웹, 그 ‘어둠의 경로’에서 팔아 치운 인륜

입력
2019.11.08 04:40
29면
지난달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아동성착취 사이트 다크웹 문제와 대안 마련을 위한 긴급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제공
지난달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아동성착취 사이트 다크웹 문제와 대안 마련을 위한 긴급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제공

지난달 미국 법무부가 아동 성착취 영상을 거래하는 다크웹 사이트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유료 사이트인 ‘웰컴 투 비디오(W2V)’의 운영자는 한국인 손모씨였고, 국제 수사 공조를 통해 검거된 337명의 이용자 중 223명도 한국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사이트는 성인 포르노물의 업로드를 금지하면서 사춘기 이전의 아동 대상 영상물만 거래되도록 했다. 영상 속 피해자 중에는 아직 걸음마를 떼지 못한 영유아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같은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시민들의 ‘부끄러움’은 ‘분노’로 바뀌었다.

운영자 손씨가 충남 당진의 자택에 서버를 두고 3년 가까이 불법 영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암호화ㆍ익명화라는 다크웹의 특징에 기인한다. 다크웹은 구글이나 네이버와 같은 검색엔진을 이용해서는 찾을 수 없고, 토르(Tor)와 같은 특별한 브라우저를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다. 1990년대 중반 미국 해군연구소는 ‘The Onion Routing(Tor)’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통해 웹페이지에 방문하더라도 완전히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이후 토르가 일반에 공개되면서 국가 검열로부터 사생활을 보호받고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다크웹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크웹이 아동 성착취 영상이나 마약 및 총기 등의 불법 거래를 비롯해서 신분증 위조나 자금 세탁은 물론이고 심지어 살인 청부까지 이루어지는 범죄의 온상으로 변모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에 중국이나 러시아는 다크웹 접속을 금지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일부 사람들이 다크웹을 범죄에 악용한다고 해서 그 접속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익명성과 유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다크웹 상에서 벌어지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수사 기법도 변해야 한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익명화된 IP 주소를 찾아내기 위해서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은 후 일종의 해킹수사인 네트워크 수사 기법(NIT)을 활용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2017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면서 수사 기관이 트로이 목마와 같은 원격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온라인 수색을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얼마 전 한국 경찰은 다크웹 상의 불법 정보를 수집ㆍ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시범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시스템이 해킹 수사 기법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 권력에 의한 사생활 침해 논란을 지레 우려해서 해킹 수사 기법의 도입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또한 혹시라도 수사상 필요에 의해서 비밀리에 해킹 프로그램이 이용된다면 이는 법적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할 만하다. 첨단 기술이라는 갑옷을 입은 범죄자로부터 사회를 지켜 내기 위해서는 수사 기관에게도 적절한 무기를 쥐어 주어야 한다.

국경을 초월하여 발생하는 다크웹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제 수사 공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웰컴 투 비디오’ 사이트에 대한 수사도 한국, 미국, 영국 등 32개국 수사기관이 공조했기 때문에 수백 명에 이르는 이용자들을 검거하는 쾌거를 낼 수 있었다. 이제 문제는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도 외국 입법례를 고려해서 조정될 필요가 있는 가이다. 해당 사이트의 운영자 손씨는 이미 2018년에 징역 1년 6월의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며 이달 출소를 앞두고 있다. 이에 관련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바, 단 한 번의 다운로드만으로도 징역 15년의 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미국과 비교할 때 사이트 운영자에 대한 형벌로는 지나치게 가볍다는 것이다. 외신보도에 의하면 손씨는 지난해 8월 아동 성착취 영상 광고 혐의 등으로 미국에서 기소되었고, 우리 정부 범죄인 인도가 요청되었다고 한다. 한국 법원에서 이미 형이 확정되어 처벌이 이루어진 상황이라 정부가 요청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아동 성착취 영상 유포나 소지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10월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손씨와 사이트 이용자들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고, 11월 7일 기준으로 28만4,000여 명의 동의를 얻고 있다.

현행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아동ㆍ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음란물을 제작 및 유통한 경우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고, 아동ㆍ청소년 음란물인 줄 알면서 소지한 경우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법에서 정하고 있는 처벌 수준이 결코 낮은 것은 아니지만, 초범이라든지 반성을 하고 있다는 점 등이 고려되어 낮은 형량이 부과되고 있는 것이다. 아동 성착취 영상은 단순한 호기심으로라도 보아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되어야 한다. 청계천에서 소위 ‘빨간 비디오’를 구해보던 학창 시절의 추억으로 오늘날 다크웹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 아동 성착취 영상의 심각성을 희석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윤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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