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일부일처제와 폴리아모리

입력
2019.11.07 18:00
30면
폴리아모리 관계에 있는 남녀가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폴리아모리 관계에 있는 남녀가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국 가수 메리 맥그리거의 1976년 데뷔 앨범에 ‘Torn Between Two Lovers’라는 타이틀곡이 있다. ‘두 사람을 사랑하는 아픔’이라는 뜻이겠다. 당시 미국 캐나다 영국 음반판매 순위에서 수위를 달렸고,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두 남자를 모두 사랑하는 삼각관계에서 선택의 딜레마에 빠진 여인의 얘기다. 두 남자 다 각자 채울 수 있는 빈자리가 있지만, 둘을 사랑하는 것은 결국 결혼이나 사랑의 ‘규칙(rule)을 깨뜨리는 것’이라 절망스럽다는 내용이다. 이 곡이 히트하면서 맥그리거는 이혼했다.

□ 결혼의 ‘규칙’은 일부일처제다. 하지만 동물의 세계에서는 일부일처제가 드물다. 포유류의 3~5%, 영장류의 10~15%만 일부일처 사회를 이룬다. 생물학자들은 수컷과 암컷의 무게와 키 등 신체적 크기 차이로 일부다처의 정도를 추측하는데, 인간의 경우는 1.15라고 한다. (위르겐 카우베, ‘모든 시작의 역사’) 하지만 사유재산제도의 발달로 일부일처제는 보편적 현상이 됐고 이 과정에서 소유 개념이 등장한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소유 양식(having mode)과 존재 양식(being mode)을 비교한다.

□ “소유 양식에서 사랑이 경험될 때 그것은 그 사람이 ‘사랑하는’ 대상을 제한하고 감금하고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목을 조르고 질식시키며 죽이는 행위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지 않게 되고 또 결코 사랑한 적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까지 그것은 ‘사랑’으로 의식되고 경험된다.” 구애 기간에는 얼굴ㆍ몸매를 가꾸며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존재 양식으로 사랑을 유지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면 육체와 감정, 관심의 독점이 이루어지고, 이런 소유양식 속에서 결혼은 권태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 “잡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독점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대에 대해선 많은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오히려 독점의 폐해만 커진다. 가정폭력이나 일방적 외도 같은 폐해다. 그런 맥락에서 폴리아모리(Polyamoryㆍ비독점 다자 연애)라는 새로운 관계에 관심이 쏠린다. 여러 명과 동시에 애정 관계를 맺는 불안정 관계지만 점차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 중혼(重婚)이나 불륜, 스와핑 등과는 다른 방식으로, 남녀 관계에서의 비독점ㆍ합의ㆍ평등이 화두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걱정이 앞선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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