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공약 이행은 못 해도 퇴행은 말아야

입력
2019.11.08 04:40
31면
전반전을 마친 문재인 정부가 23개 교육 분야 국정과제 가운데 약속대로 이행한 것은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뿐이다. 나머지는 시도조차 못하고 있거나 시작했어도 축소 또는 변질되어 이행되고 있다. 사진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7일 오후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는 모습. 왼쪽부터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유 부총리,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홍인기 기자
전반전을 마친 문재인 정부가 23개 교육 분야 국정과제 가운데 약속대로 이행한 것은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뿐이다. 나머지는 시도조차 못하고 있거나 시작했어도 축소 또는 변질되어 이행되고 있다. 사진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7일 오후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는 모습. 왼쪽부터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유 부총리,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홍인기 기자

문재인 정부 전반전을 마쳤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며 적폐 청산을 내세우던 출범 초기 80%를 넘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반전을 마친 지금 딱 반 토막이 났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교육정책을 중심으로 그 이유를 짚어본다. 실제 교육계에도 민심 이반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 공공성 강화, 공교육 혁신, 교육 희망사다리 복원, 고등교육의 질 제고, 미래교육과 안전한 학교, 교육자치 강화, 정치참여 확대, 노동 존중 사회 실현을 골자로 교육 분야 국정과제는 개혁 의지가 담겨있었다. 출범 직후 논란이 있던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지하고, 세월호 참사로 숨진 기간제 교사의 순직 처리를 지시할 때만 해도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지지율은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없었다. 교육 정책에 있어서만큼은 결정적 한 방도 없었고 지속적인 로드맵도 없었다.

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는 유아ᆞ초ᆞ중등교육을 정상화하는 것이 기본이자 우선이다. 그동안 대입 제도에 밀려 늘 후순위로 밀리던 일이었지만 이미 혁신학교를 기반으로 지난 10년 넘게 교사들이 구축해 놓은 동력도 충분했다. 그동안 교사들의 헌신으로 이룬 성과였으니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면 차근차근 해나갈 수 있었다. 국민 지지율도 높았고 교육공약 이행은 시간문제였다.

어떤 식으로든 교육개혁에 일조하기 위해 나 또한 부족하나마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을 겸직하며 현장 동력을 보탰다. 한 발 한 발 떼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회의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은 늘 무거웠다. 교육부는 교육공약을 이행하려는 의지가 약했다. 이행해야 할 교육공약들은 놓아두고 대입제도 카드를 먼저 꺼냈다. 그 결정도 스스로 하지 못하고 국가교육회의를 총알받이로 내세웠다. 국가교육회의는 미래교육에 대한 설계는 뒤로 한 채 대입제도 공론화에 빠졌다. 결정적인 헛발질이었다. 정권 초기 교육개혁의 슛 찬스는 이렇게 날아갔다.

대입 제도도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논란을 겪으며 마련했지만 특별한 묘책은 없었다. 그마저도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대통령 말 한마디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국가교육회의를 만들었지만 대통령은 교육에 대해 어떤 의견도 교육회의에 묻지 않았다. 교육부는 기득권을 놓치려 하지 않았고 국가교육회의가 나서서 교육공약에 대한 이행을 촉구하기를 바랐지만 정치권 눈치를 보느라 움직이지 않았다. 무책임하고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플레이였다.

그 결과는 어떤가? 누리 과정 비용을 전액 국고로 지원한다더니 교육청 부담이 여전하다. 유보통합은 말조차 들리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훼손한 교장 공모제를 원점으로 되돌리겠다더니 흉내만 냈다. 교원 성과제도와 인사제도 개혁은 손도 못 대고 있다. 고교학점제 도입한다더니 정시 확대에 나서고 있다. OECD 평균 학생수를 줄이겠다더니 인구 자연 감소만 기다리고 있다. 학교 비정규직 문제는 여전히 해법을 못 찾고 있다. 국가 백년대계를 설계하기 위해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한다더니 입법은 오리무중이다. 심지어 그 전신인 국가교육회의마저 청와대가 패싱하고 있다.

전반전을 마친 문재인 정부가 23개 교육 분야 국정과제 가운데 약속대로 이행한 것은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뿐이다. 나머지는 시도조차 못 하고 있거나 시작했어도 축소 또는 변질되어 이행되고 있다. 그나마 유아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노력한 것으로 이탈하는 교육 민심을 간신히 붙들고 있지만 이마저도 언제 다시 불똥이 튈지 모른다. 후반전에 얼마나 약진할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의 헛발질은 없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나는 교육공약 이행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공약 이행은 못하더라도 퇴행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요즘 이 마음으로 학교에서 버틴다.

정성식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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