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오! 베트남] 하노이 기름 수돗물 사고까지… 급성장 뒤안길 잇단 환경사고

입력
2019.11.07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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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8월 하노이 시내 한 전구생산 공장에서 불이 나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발암물질인 수은이 다량 누출된 것으로 확인돼 베트남 정부는 화재발생 지점 반경 500m 안에서 재배된 채소와 과일을 폐기 처분하는 등 조치를 했다. 독자 제공 /2019-11-06(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8월 하노이 시내 한 전구생산 공장에서 불이 나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발암물질인 수은이 다량 누출된 것으로 확인돼 베트남 정부는 화재발생 지점 반경 500m 안에서 재배된 채소와 과일을 폐기 처분하는 등 조치를 했다. 독자 제공 /2019-11-06(한국일보)

베트남으로 여행 온 많은 외국인은 이곳 주민들이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고 노상에서 방뇨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또 플라스틱이나 비닐 포장지 등 1회용품에 중독되다시피 한 일상, 생활 쓰레기를 집 앞 길가에 던지거나 먹다 남은 음식을 근처 개울에 투척하는 장면에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그 개울에 낚싯대를 드리워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강태공들의 모습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손맛’을 노린 놀이인 경우도 있지만, 시장에서 팔리는 경우도 있다.

 

 ◇성장에 환경문제는 뒷전 

1억의 인구로 연 7% 수준의 높은 경제 성장을 일궈가고 있는 베트남이지만 환경 의식은 개발도상에 머문 여러 국가와 마찬가지로 낮다. 국민들의 이 같은 행태는 정부의 낮은 환경 의식 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데, 환경세 등 환경 오염에 대비한 베트남 정부 차원의 조치들이 등장한 것도 지난 2012년의 일이다.

호찌민시 인근 한 대형 화학공단 바로 옆에서는 신도시 개발이 한창이다. 현지에서 부동산 분양사업을 하는 한 관계자는 “공단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냄새 때문에 두통을 호소할 정도지만, 공단과의 거리(500m)는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매력”이라며 “용지 분양이 대부분 끝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당 공단에서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한 한국기업 관계자는 “배출 기준을 충족하고 있어도 인근 지역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사실”이라며 “지금까지 지역 주민들로부터 민원 받은 사실이 없고, 향후 상당 기간 특별한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게 지방성 관계자들의 설명”이라고 전했다. 해당 지역의 세수와 일자리에 기여하고 있는 만큼 당국에 의한 기업들의 생산활동 위축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환경문제에 대한 안일한 사고는 지난 10월 하노이에서 발생한 ‘기름 수돗물’ 사태 대응 과정에서 보인 해당 기업과 환경 당국, 하노이시의 모습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10월 8일 하노이 125만 가구의 5분 1이 사용하는 생활용수 수원지 중 하나인 다(Da)강에 폐수 유입이 감지됐지만 수돗물 공급을 맡고 있는 기관(민관합작)은 수도 공급을 멈추지 않았다. 이틀 뒤인 10일 오전 수돗물에서 ‘플라스틱이 타는 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빗발치자 그제야 당국이 조사에 나섰고, 그로부터 1주일 뒤 폐유가 포함된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그사이 사재기가 벌어져 시내 대형마트에서 생수는 동이 났고, 비상수 공급에 나선 소방차 앞에는 물통을 든 시민들의 긴 줄이 이어졌다. 하노이시 관계자는 “가용한 수단을 총동원해 물 공급에 나섰지만 하루 2,000통이 넘는 물 요청 전화를 받았다”고 현지 매체에 말했다.

 

 ◇연이은 대형 환경사고 

줄줄이 문닫은 식당들, 모아 놓은 모유를 버린 아기 엄마들의 사연까지 더해지면서 국민적 공분이 일었지만 이후 관련 기관의 처신은 더 큰 비난을 받았다. 기름 수돗물에 대한 1차 책임은 오염물질을 버린 기업에 있다 하더라도 2차 책임이 있는, 문제점을 확인하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수돗물공급 기관은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15일과 17일에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제일 큰 피해자”라며 사과를 거부했고, “정확한 원인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냈다. 해당 기업은 결국 사건 발생 17일만인 지난달 25일 사과 성명을 냈다. 기자로 뛰고 있는 하노이시민 N씨는 “모두가 성장만 외칠 뿐 환경이슈에는 관심 갖는 시늉만 한다. 관련 기관들이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을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건은 결국 타일공장에서 나온 폐유를 상류에 버린 트럭운전 기사 등 용의자 2명이 체포되면서 잠잠해진 상황이다. 베트남 관련법은 오염물질을 무단 투기하는 경우 최대 1억동(약 500만원)의 벌금과 1~5년 징역형을 받도록 하고 있다.

가뜩이나 대기 오염 문제로 시끄러운 하노이에서 지난 8월 의문의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한 형광등 제조업체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퍼진 연기였다. 창고에서 보관 중이던 완제품은 물론 생산에 쓰이는 수은 등 중금속, 화학물질이 다량 누출된 것으로 확인되자, 베트남 환경부는 화재 현장 반경 500m 내에서 재배된 채소와 과일을 모두 폐기 처분하고 반경 1㎞ 안에서 사육된 가금류와 돼지고기를 섭취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위험 물질을 다루는 공장과 창고를 도심에 방치해놓고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벌어진 관재(官災)인 셈이다.

 

 ◇기업 환경규제 강화 가능성 

베트남 정부는 주로 환경세를 올리는 방법으로 환경 이슈에 대응하고 있다. 2012년 처음 도입된 환경 세목으로 11조동(약 55억원)의 세금을 걷은 데 이어, 수 차례 인상을 통해 올해에는 69조동의 환경세를 거둘 것으로 전망됐다.

딘 쯔엉 틴 재정대 국제금융학부 교수는 “다른 나라들은 70년대부터 환경에 관심을 보였지만 베트남은 최근에서야 세금을 부과하며 환경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라며 “현재 휘발유 등 연료와 플라스틱 제품에만 눈길을 줄 뿐 다른 폐기물에 대해서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베트남 정부가 거둬들이는 환경세 90% 이상이 연료 판매 때 걷힌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베트남사무소도 “베트남 정부는 각 공장과 산업단지들이 각종 오염물질 배출 기준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관리 감독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는가 하면 베트남 국회에서도 관련 부처에 관련 규제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국회는 법안발의 권한이 없어 정부에 권고문을 내는 식으로 압력을 넣는다.

베트남 과학기술연구소 산하 환경기술연구소(VAST)에 자문을 하고 있는 컨설팅업체 김기윤 대표는 “베트남 당국이 수원지 오염 방지를 위한 사전 경보 시스템과 한국의 수처리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는 등 환경이슈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라며 “기업들에 대한 환경 관련 규제와 감독이 이전보다 크게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노이ㆍ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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