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 반백 년 넘게 한국문학계 기둥 역할을 해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2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2> 김금희 ‘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문학동네 제공

김금희의 두 번째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를 두고 한 템포 늦게 울게 되는 일들에 대해서라면 이보다 정확히 그릴 수는 없을 거라고 쓴 적이 있다. 이후 삼 년 만에 찾아온 김금희의 세 번째 소설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에는 눈물이 마른 자리에서, 한 인간을 지탱하는 분노와 죄책감을 드러내는 소설들이 모였다. 이 소설들이 쓰이고 발표된 2016년부터 2018년에 이르는 시기에 정권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문단 내 성폭력 운동에서 시작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가를 떠올려보면, 소설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튀어나오는 수치와 모욕의 불가피함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 소설집 속 인물들이 가장 자주 하는 것은 치밀어 오르는 감정들을 삼키고 밀어 넣는 일이다. 하지만 억누른 것은 반드시 되돌아오기 마련이고, 그때 고요함 속에서 오연하게 일어서는 감정은 죽음이나 사랑의 조각들을 발굴해낸다. 소설 속에 나오는 말처럼 과거의 나쁨이 오늘의 나쁨으로 이어지며 하락하는 인생의 그래프를 피하기란 불가능한 걸까. 한때 사랑이었던 감정들은 어느덧 상대를 향한 애틋함보다는 자신을 향한 울분이나 외로움에 가까워져 있고, 모욕으로 망가진 내면의 잔해는 오래 복구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을 멈춰 세우는 것은 어긋난 농담, 뒤늦게 찾아오는 상실에 대한 인정과 이해, 상대에게 함부로 속죄를 구하지 않는 태도다. 상실을 받아들이는 마지막 순간에 이들은 함부로 공감을 구하는 대신 자신의 감정을 단속함으로써, 다른 이의 자존감을 오롯이 지켜낸다.

이렇게 한 인간의 고유한 영역에 대한 존중이 ‘체스의 모든 것’에서 체스의 표준 규칙과 무관하게 “퍼블릭한 게 아니라 프라이빗한” 국화만의 룰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세상의 표준적인 당위와 규칙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는 국화의 룰은 속물적이고 유아적인 선배의 실상을 간파해내고,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위계를 무너뜨리며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이런 국화가 추구하는 것은 “이기는 사람,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상태로 그걸 넘어서는 사람”이다. 오랫동안 자신의 분노를 쓰다듬던 모욕이 어떻게 성숙한 부끄러움에 도달하는가에 대해서라면, 마지막에 실린 자전소설 속 ‘픽션으로 쓰지 못했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해도 이해될 수도 말해질 수도 없는 한 사람의 자리가 있다는 것. 그 고유한 자리와 감정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모욕감과 진실의 깊이를 숫자로 환원시키지도 무감하게 넘기지도 않은 채 ‘오직 한 사람의 차지’로서 지켜내는 이 소설집은 김금희가 오랜 고투 끝에 손에 쥔 정갈한 윤리 감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강지희 문학평론가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