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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4일 오후 방콕 임팩트 포럼에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서 참석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방콕=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시리아에서 쿠르드의 방패 역할을 해온 미군을 철수시키면서 국제사회는 그의 ‘고립주의’를 맹렬히 비판했다. 다자외교의 장에서 맺은 약속을 물리고, 자유무역을 폄훼하며, 동맹을 팽개치는 그의 고립주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서 진화한 미국 홀로주의(America alone)로 불리며 조롱받기도 했다.

세계가 지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는 힘에 기반한 이념이고 방식이다.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견준다지만, 이제 자체기술 항공모함을 진수하는 수준의 군사력은 전 세계 바다를 제집 드나들 듯 항해하는 미국의 그것에 비할 수준이 못 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앞서 한반도 인근에서 쥐 죽은 듯 작전을 펼치는 미군의 조기경보 능력은 또 어떤가.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오지 어느 곳에 숨어있다 해도 독재자, 테러리스트를 “영화를 보듯” 제거할 수 있음을 최근 이슬람국가(IS) 수괴 제거 작전을 통해 확인시켰다. 트럼프의 미국은 막대한 힘을 내재한 채 이 힘이 외부로 빠져 나가는 정도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립주의를 선택했음이다.

힘을 앞세워 국익을 극대화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같을 수 없지만, 임기 ‘반환점’을 도는 문재인 정부가 양산, 혹은 내버려 둔 외교안보 분야의 장면들 가운데 여러 개는 고립주의에서 비롯된 결과라 느껴질 정도로 스산하며 위험을 배태했다. 외교 현장에선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강직하게 원칙을 지키면서도 때론 유연하고, 치명적인 게 아니라면 내어줄 수 있어야 하는데 상대국과 온기를 나누지 못한 채 스스로 고립을 강화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첫째는 2017년 상주에 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부지를 내어주면서 비롯된 비뚤어진 한중 관계이다. 한중이 사드 문제를 빌미 삼아 고조해온 갈등은 해소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외교가에선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연내 방한이 확정된 뉘앙스가 돌았지만, 실현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한국인 미국 음대생들의 중국 비자 거부 뉴스가 들리고 명동을 찾는 중국 관광객의 수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방위비 분담 압박이 거세질수록 사드 사태가 재발할 우려마저 커지는 것은 물론이다. 둘째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를 놓고 흠집 나는 한미 관계이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지소미아가 필요하다고 압박하지만, 지소미아를 일본의 수출규제와 연계한 우리 정부는 미국을 달랠 생각이 과연 있는 건지 통 알 수가 없다. 방위비분담, 북미대화의 지렛대를 지닌 미국이 지소미아를 포기한 문재인 정부에 등을 보인다면 우리가 감당해야 할 파장은 실로 막대할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지소미아 종료시점이 다가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분담 압박이 더 거세질 것이고, 주한미군 철수도 미국의 테이블 위에 오를 수 있다는 보도를 줄줄이 내놓는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익실현을 위한 움직임은 다자무대의 위기 속에 나날이 거칠어지지만, 이처럼 부족한 정부의 대응능력 탓에 한국은 스스로 운신의 폭과 입지를 줄여가는 듯한 모양새다.

최근 방한한 문화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미 UCLA 교수는 저서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와 강연에서 2차대전후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절멸의 위기를 맞았던 핀란드가 소련과 서구국가들 사이에의 줄타기 외교로 어떻게 선진국 자리에 올랐는지를 거듭해 강조한다. 그가 고립된 한국 외교에 제시한 해법은 핀란드가 발휘했던 ‘밸런싱 액트(Balancing act)’이다. 관계하는 양자 혹은 다자에게 동일한 시점에 공평한 응대를 한다는 의미이다.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는 것처럼 비치는 현 정부에 도움이 되는 답안지가 되기를 바란다.

양홍주 국제부장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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