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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단체 ‘에코팜므’ 전현직 대표 미야·박진숙씨

에코팜므 전현직 대표 박진숙(왼쪽) 미야씨. 난민이 난민단체 대표를 맡는 건 사실 꽤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한국에도 고국의 대사관이 있고, 이들로부터 언제든 위협을 받을 수 있다. 미야씨도 실은 가명이다. 류효진 기자

지난 해 제주에 체류한 예멘인 400여명이 인도적 체류 결정을 받은 지 1년여가 지났다. 한국의 난민 신청자는 10년 새 50배가 늘어 지난해 1만6,000명을 넘었지만 난민 인정률은 지난해 단 0.9%에 그쳤다. 난민을 포함해 정부의 공식 허가를 받고 한국에 체류 중인 이주민 역시 10년 새 2배 이상 늘어 242만명에 달하지만, 이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최근 이자스민 전 의원의 정의당 입당 기사에는 비난 댓글이 압도적으로 많이 달렸다.

“이해해요. 한국인들이 갖는 두려움에 대해. 저도 난민이지만 실제로 난민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아요.”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난민 미야(가명·42)씨는 “(난민 신청한) 사람을 100% 믿을 수 없다는 한국인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면서도 “이렇게 나쁜 말(혐오 표현)들이 크게 들리는 현상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2004년 한국에 들어온 미야는 행정소송을 거쳐 2011년 난민으로 인정받았고, 올해 5월 ‘에코팜므’의 첫 외국인 대표가 됐다. 에코팜므는 난민들에게 예술교육을 하고 이들이 만든 작품을 판매해 난민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다. 2009년 설립해 운영해온 박진숙(45)씨는 창립 10년을 맞아 미야에게 바통을 넘겼고 이 과정을 담은 책 ‘저도 난민이 처음입니다만’(맑은나루 발행)을 지난 9월 출간했다. 최근 불광동 서울혁신센터에서 만난 두 사람은 “비영리단체가 10년간 운영된 데에 대해서, 난민이 난민단체 대표가 됐다는 사실에 감사하다”(박진숙), “이제 시작인데 뭔가 남기고 싶다”(미야)고 서로 덕담을 전했다.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근무 중인 미야의 전 직장은 콩코민주공화국의 미국대사관. 반정부시위 선동 스파이로 누명을 쓴 그는 친구가 구해온 비행기 티켓으로 목숨을 건졌다. 미야는 “비행기 안에서 한국으로 가는 걸 알았다. 당시 상황에서 티켓, 비자를 가장 빨리 구할 수 있던 나라가 우연하게도 한국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흑인, 여성, 아프리카 출신인 그는 한국사회 심리적 카스트의 가장 아래 신분이었고, 영어와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고학력 이력은 구직할 때 쓸모가 없었다.

무엇보다 난민으로 인정받기 전에는 합법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미야는 “의료보험을 들지 못해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난민 인정을 받기 전까지 집 밖을 나갈 때 항상 두려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옆에서 거든다. “체류는 합법이지만, 일하다 잡히면 불법체류가 되죠. 언제 난민 심사가 끝날지 알 수 없고 갑자기 출국명령이 나오면 곧바로 한국을 떠나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제3국행을 택하기도 어려워졌다.

미야가 박씨를 만난 건 2006년 무렵 난민지원 비정부기구 ‘피난처’에서 한국어를 배우면서부터다. 두 사람은 2년 후 난민 여성들과 함께 모국의 전통문양이 그려진 티셔츠와 머그잔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급격히 친해졌다. 박 전 대표는 “난민, 난민신청자들이 배우고자 하는 의지도 많은데, 자꾸 (난민심사, 취업 등에) 실패하면서 자존감이 낮아진다. 이들이 자존감을 회복하는 게 우선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술치료 효과는 상당했다. 까다로운 난민심사, 녹록하지 않은 한국생활로 상처가 많았던 이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듬해 박 전 대표는 에코팜므를 세워 난민들에게 본격적으로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쳤고 이 작품을 바탕으로 에코백, 머그컵, 티셔츠 같은 상품을 만들었다. 집에서 기관까지 왕복 3시간을 오가며 그림을 그린 미야는 2014년부터 에코팜므 활동가로 근무했다. 그즈음부터 난민 관련 강연회에 초청돼 자신의 사연을 알리기 시작했다. “어려워요. 제가 잊어버리고 싶은 이야기를 자꾸 해야 하니까. 왜 한국에 왔는지, 한국에 와서 겪은 불편함이 무엇인지를 말하려면 제 사생활을 말해야 하죠. (강연에서) 그런 얘기하면 난민 심사 면접 때 기억이 자꾸 떠올라요.”(미야) 그럼에도 그가 매번 강연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는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난민에 대한 생각을 잘못할 때가 많아서”다. 미야는 “생각을 바꾸려면 제 사연을 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에코팜므 전현직 대표 박진숙(오른쪽), 미야씨. 이주여성 자립 돕는 민간단체로 올해 창립 10년을 맞았다. 류효진 기자

박 전 대표는 “작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를 보고 (한국인의 난민 거부감이) 이 정도인가 싶을 정도로 놀랐다. ‘이주민이 일자리를 뺐는다’는 식의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반대가 심했는데, 패배감을 쏟아 낼 원망의 대상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었다”고 말했다. “미야처럼 난민 중에 인텔리 계층이 상당히 많습니다. 상식적으로 사회 위치가 높을수록 정치범이 될 확률이 높고, 핍박을 받아도 재력과 역량, 인맥이 있어야 먼 한국까지 탈출할 수 있죠. 본국으로 돌아가면 한국에 이바지해줄 능력이 많은 분들이에요.”

이주민 혐오를 줄이려면, 그들이 한국사회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걸 대중이 체감하면 된다. 난민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 사회에 기여할 구체적인 방안이 있느냐는 질문에 미야는 “혼자서는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일자리가 필요해요. 한국은 난민 인정을 받아도 난민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곳이 많지 않아요. 본국에서 했던 일과 같은 일을 할 기회가 없죠. 한국에 기여하려면 그런 기회를 줘야 합니다.”

미야 대표에게는 두 가지 꿈이 있다. 하나는 아이들에게 세상의 다양한 가치관이 있다는 걸 이야기 해줄 동화책을 쓰는 것, 다른 하나는 에코팜므가 한두 명의 유명인사에 의지하지 않고 운영될 만큼 자생력을 갖추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제 꿈은 각 지역마다 이주민이 수장이 되는 아트센터를 만드는 것”이라며 “사람들이 만남의 장, 교육의 장에서 이들을 만나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구나’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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