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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한적한 주택가에 들어선 5층집은 협소주택이나 고급 단독주택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수직 구조로 쌓아 올린 집은 가족 구성원의 개인 공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공용 공간도 제공한다. ©배지훈 건축사진작가

아파트는 수평적 주거문화이다. 사각형 평면에 거실과 방, 주방과 화장실 등이 효율적으로 배치된다. 공간은 분리돼 있지만 수평적으로 늘어선 공간은 사용자의 동선과 생활을 종종 침범한다. 물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멀어진다.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주택가에 들어선 ‘5층집’은 수평적 공간에서 탈피해 수직적 삶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집이다. 94.9㎡(28평) 대지에 높이 14.5m인 집은 도심의 협소주택보다는 넓고 고급 단독주택보다는 높은, 중간지점의 집이다. 집에는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에 각각 다니는 세 딸과 고현동(42)ㆍ박유진(39) 부부가 산다. 박씨는 “아파트에 살 때는 방에 들어가도 혼자 있는지, 같이 있는지 구분이 안 됐다”며 “아이들의 삶에 어른들의 삶이 종속되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매년 오르는 전셋값도 부부의 등을 떠밀었다. 부부는 아파트를 살 돈으로 집을 짓겠다 싶어 용기를 냈다고 했다. 지난해 8월 지은 5층집의 건축비용(대지매입비용 포함)은 인근 30평대 아파트 매매가격과 비슷하다.

아치 창문은 집의 핵심으로 자리한다. 좁고 긴 형태의 창문은 사생활을 보호하면서도 채광을 확보해준다. ©배지훈 건축사진작가
 ◇아치 창문 달린 붉은 벽돌집 

아이들 학교, 사업을 하는 고씨의 사무실 등을 고려해 도심 주택가의 땅을 산 부부는 전원 주택을 주로 설계해온 이승택ㆍ임미정 건축가(stpmj 건축사사무소)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전원의 시원한 조형미가 돋보이는 집을 보고 건축가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정작 건축가에게 요구한 것은 ‘최대 면적’이었다. 다섯 식구가 조금이라도 넉넉하게 지내기 위해 법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면적과 높이를 확보해달라고 청했다. 집은 옆으로 최대한 넓어졌고, 위로는 최고로 올라갔다. 이승택 건축가는 “버리는 면적 없이 최대한 압축적으로 공간을 만들어내야 했다”며 “우선은 면적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게 네모 반듯한 집을 떠올렸다”고 했다.

박스 같이 긴 직육면체에서 사선제한(건축물 높이와 도로 폭과의 관계에 따라 제한을 둔 건축법)과 주차규격(일정 규모 이상이면 한 대 이상의 주차공간을 두어야 하는 건축법) 등 법 규제 감안했다. 사선제한으로 집 뒤편은 최고 높이(14.5m)에서 9m까지 깎아지르듯 경사를 둬야 했다. 땅에 꽉 채운 직육면체의 아래 부분을 잘라내어 주차공간과 현관을 뒀다. 직육면체는 군데군데 사과를 베어 문 듯 잘려나갔다.

5층집은 1층(왼쪽)과 건물 뒤편 발코니(오른쪽)에 아치를 적용했다. ©배지훈 건축사진작가

5층집의 묘미는 잘려나간 부분의 마감에 있다. 사선제한으로 경사진 건물 뒤편은 미끄럼틀처럼 둥글게 내려오고, 1층 모퉁이와 주차공간은 부드러운 반 아치형으로 생겼다. 이 건축가는 “법적 제한으로 출입구와 주차장, 발코니 등이 잘려나간 부분에서 면적을 건드리지 않고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아치를 생각했다”며 “작은 변화지만 발코니와 창문, 출입구 등에 아치를 적용해 전체적으로 특색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아치가 가장 빛을 발하는 곳은 매끈한 집의 표면에 있는 창문이다. 표면에서 30㎝가량 더 깊이 들어간 아치 창문은 일반 주택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가로 70㎝, 세로 180㎝의 작고 긴 창문 형태는 디자인뿐 아니라 사생활 보호를 염두에 뒀다. 이 건축가는 “가로로 긴 창을 배치하면 밖에서 안이 훨씬 잘 보이지만, 세로로 긴 창문은 채광은 확보하면서 바깥에서 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집의 동쪽과 서쪽 아치 창에는 외부에 벽돌을 듬성듬성 쌓아 덧창의 효과를 냈다. 이 역시 3m 안팎의 좁은 도로 폭으로 서로 이웃한 집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집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붉은 벽돌이다. 한 가지 재료를 사용해 통일감을 줬다. 이 소장은 “내부 면적은 같지만 부피감 있는 벽돌을 사용해 외부에서 보면 더 커 보이는 효과를 냈다”며 “같은 색상과 재료를 사용해 집이 하나의 작품처럼 보이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최대 면적을 요구했던 건축주의 요구를 충족하되, 건축가의 특색 있는 디자인이 완성됐다.

1층에는 목공이 취미인 고현동씨의 작업실이 있다. 작업실은 외부로 바로 나갈 수 있게 통로를 만들어 재택근무, 작업실 사용 및 외출, 외근이 용이하도록 계획됐다. ©배지훈 건축사진작가
 ◇따로 또 같이 

부부는 건축가에게 세 아이의 개인공간과 더불어 목공이 취미인 남편의 작업실을 갖춘 집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파트에서 각자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던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개성이 뚜렷한 아이들은 서로의 활동에 방해를 받기 일쑤였다. 예컨대 첫째는 숙제를 해야 하는데, 둘째는 피아노를 치고, 셋째는 화분에 식물을 심고 싶어하는 식이었다. 목공이 취미인 고씨도 주로 집 밖 외부공간을 빌려 목공을 했고, 주부인 박씨 역시 책을 읽거나, 조용히 커피 한잔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가족들은 서로에 대한 과도한 관심보다 개인의 독립적인 공간이 절실했다.

3, 4층을 연결하는 계단과 연결해 ‘미니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다. 다양한 숨은 공간은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배지훈 건축사진작가

5층집은 이 문제를 수직으로 해결한다. 주어진 면적에서 다섯 명의 개인공간을 만들려면 높이를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개인 방은 10㎡(3평)으로 최소화했다. 1층은 아이들의 공용공간인 놀이방과 고씨의 목공 작업실을 뒀다. 2층은 가족의 공용공간인 주방 겸 거실이다. 3층은 첫째(11세)와 셋째(7세)의 방이 나란히 있다. 4층은 둘째(9세)의 방이, 5층은 부부의 방으로 각 공간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개인공간은 최소화하는 대신 곳곳에 공용공간을 뒀다. 3층과 4층에는 짧은 복도와 작은 서재가 있다. 작은 집이지만 1층과 5층을 빼고 각 층에 화장실을 두어 불편함을 덜었다. 부부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불편하기도 하지만 층이 분리돼 있어서 각자의 공간과 시간이 보호받을 수 있어서 만족한다”며 “아이들의 등ㆍ하교 시간, 아빠의 출ㆍ퇴근 시간 등이 제각각 이어서 구성원들이 들락날락할 때마다 신경이 쓰였는데, 수직으로 공간을 쓰니 서로의 생활에 영향을 덜 받는다”고 말했다. 활기가 넘치는 아이들은 계단을 수시로 오르내리며 공간을 훨씬 더 다양하게 사용한다. 목공을 좋아하지만 집에서는 하지 못했던 고씨도 작업실이 생기면서 장비를 갖추고, 하루에 두어 시간씩 가구를 만들곤 한다.

5층집 2층은 가족들의 공용공간인 거실 겸 주방이다. 아파트에 살 때보다 공용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의 질이 훨씬 높아졌다고 가족들은 입을 모은다. ©배지훈 건축사진작가

부부는 그렇다고 가족이 단절되기보다 오히려 집을 매개로 대화가 늘어나고, 같이 있는 시간이 풍요로워졌다고 강조했다. “같이 살더라도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한 것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필요합니다. 물론 같이 밥 먹고 대화하는 공간도 필요해요. 공간이 분리되니 같이 있는 시간에 아이들이 더 집중해요. 수직적 삶은 개인과 가족공간을 모두 만들어주어 가족들의 시간의 질을 높여줬어요.”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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