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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자박 소읍탐방]<42>정선아리랑의 발상지 여량면
여행객들이 여량면 아우라지에서 줄배를 타고 골지천을 건너고 있다. 강 양쪽을 연결한 쇠줄을 당기는 방식으로 이동하는 줄배는 무료로 운영한다. 정선=최흥수 기자

이맘때 가을은 어디를 가나 참 눈부시다. 산꼭대기에서 치마폭처럼 흘러내린 단풍이 골짜기를 울긋불긋 물들이고, 가을걷이가 끝나가는 들판에도 찬란한 수채화를 그린다. 햇살 반짝이는 개울이라도 있으면 더없이 좋은 가을이다. 정선아리랑의 발상지, 여량면에 다녀왔다. 정선읍내에서 북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이다.

◇정선아리랑 발상지 아우라지 한 바퀴

영동고속도로 진부(또는 속사)IC로 빠져 나와 오대천과 나란한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나전1교차로에서 강릉ㆍ임계 방향으로 좌해전해 골지천을 조금만 거슬러 오르면 여량면 소재지다. 주변 산세는 우람하고 들판은 옹색하다. 그럼에도 지명은 식량이 남아돈다는 의미의 ‘여량(餘糧)’이다. 여량면 홈페이지에는 ‘토질이 비옥해 농사가 잘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놓았지만 왠지 궁색하다. 오히려 양식 걱정 없이 배불리 먹어봤으면 하는 바람이 반영된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여량면 소재지는 ‘아우라지’라는 지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두 물줄기가 어우러진 곳이라는 의미다. 평창 대관령면 발왕산에서 아홉 굽이 구절리 골짜기를 흘러내린 송천과, 금대봉과 대덕산 사이 남한강 발원지인 태백 검룡소에서 흘러온 골지천이 이곳에서 합류한다. 골지천은 정선 북평면에서 오대천과 합류해 조양강이 되고, 조양강은 정선읍내에서 어천과 합쳐져 동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동강은 정선 산골짜기를 구불구불 돌아 영월읍내에서 서강을 품고 마침내 남한강이 되어 단양ㆍ제천ㆍ충주로 흐른다.

골지천(아래)과 송천(오른쪽)이 만나는 아우라지. 송천의 물빛이 조금 더 탁하다.
아우라지 줄배로 관광객을 무료로 건네주는 전재선 사공.
아우라지 강가에 세워진 ‘장구 지유성’의 비. 지씨는 1960년대까지 아우라지 뱃사공이었다.

아우라지는 한편으로 정선아리랑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높은 산자락을 휘어 돌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그 물줄기와 닮아서일까. 사설을 촘촘히 엮어 가다가 뒷부분에서 높은 소리로 길게 뽑는 정선아리랑 가락은 다른 지역의 아리랑에 비해 유난히 구슬프고 애절하다. 정해진 가사에 얽매이지 않고 창을 뽑는 사람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대입해 한없이 가락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도 정선아리랑의 매력이다.

아우라지역 바로 뒤편 아우라지 강변은 온통 정선아리랑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송천과 골지천, 그리고 두 하천이 합쳐진 물줄기까지 3개 하천을 철재다리와 돌다리, 줄배로 연결해 산책로를 조성해 놓았다.

줄배는 두 하천이 합류해 정선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건넌다. 강 양편을 가로질러 연결한 쇠줄을 손으로 당겨 이동하는 방식이다. 전재선(54) 사공이 매주 화요일을 제외하고(화요일이 정선오일장날이면 정상 운행) 원하는 여행객을 무료로 건네준다. “겉보기에는 잔잔해 보여도 여기 물이 꽤 깊고 물살이 셉니다. 두 물살이 맞물린 형국이라 노를 저어 건너기엔 부적합해 줄배를 운행합니다. 이곳은 실질적으로 한강의 첫머리입니다. 옛날 경복궁을 지었던 목재도 여기서 뗏목을 띄워 한양까지 운반했다고 합니다.” 요즘 주말이면 하루 250~300명이 전씨의 줄배를 이용해 강을 건넌다.

강을 건너면 모래사장 부근에 ‘뱃사공 장구 지유성, 단장 정용식의 비’가 놓여 있다. 지유성씨는 1960년대까지 실제 주민들을 태워 강을 건네주던 전설적 인물이다. 널리 불리는 정선아리랑 가사에 ‘아우라지 지장구 아저씨 배 좀 건네 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는 가사가 있다. 여기서 ‘지장구 아저씨’가 20세부터 63세까지 40년 넘게 아우라지 뱃사공이었던 지유성씨다. 정선아리랑 가락에 맞춰 장구를 잘 쳤기 때문에 ‘지장구’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가사의 ‘올동박’은 이른 봄에 노란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다. 겨울이 유난히 추운 강원도 산골에 사철 푸른 동백나무가 자랄 리 만무하니 말이다.

아우라지 오작교 인근 산자락에 단풍이 황홀하다. 뒤편이 달이 뜨는 ‘월부’ 계곡이어서 다리 위에 초승달 모양의 조형물을 세웠다고 한다.
송천이 골지천과 합류하는 지점 바로 위에 놓인 돌다리.
돌다리 상류에도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이곳에서 송천을 가로질러 돌다리와 철제 인도교(출렁다리)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풍광이야 어느 다리를 건너도 좋지만, 이왕이면 바위 사이로 물소리 청량한 돌다리를 건너는 게 훨씬 운치 있다. 돌다리를 건너면 팔각정 바로 아래 ‘아우라지 처녀상’이 강을 바라보고 서 있다. 연인 사이였던 여량 사는 처녀와 송천 사는 총각이 간밤에 강물이 불어나 만나지 못하고 강을 사이에 두고 불었다는 노래가 또 정선아리랑 가사에 남았다. ‘지장구 아저씨’ 대신 ‘아우라지 뱃사공아’로 한 대목만 바꿨다. 총각 동상은 아우라지역 인근 제방에 처녀상을 마주보며 서 있다.

지역에서는 물살이 센 송천을 수강, 유속이 느린 골지천을 암강에 비유한다. 특히 골지천이 불어나면 큰 홍수가 난다는 속설도 전해진다. 젊은 남녀가 물을 건너지 못하고 애타게 바라만 봤던 골지천에도 철제 인도교가 놓였다. 이름하여 오작교인데 까마귀 떼가 줄지어 만든 아슬아슬한 다리가 아니라 강풍과 홍수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한 교량이다. 다리 중앙에는 초승달 모양의 대형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다리 뒤편 계곡이 달이 떠오르는 ‘월부(月浮)’ 계곡이라 부른 데서 착안한 형상이다.

이렇게 강을 세 번 건너도 1km 남짓하지만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아우라지의 강 빛과 산 그림자는 각기 다른 매력을 풍긴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가을 산은 단풍으로 불타고, 햇살이 부서지는 강물은 한없이 눈부시다. 아우라지역으로 돌아오는 길, 너른 잔디밭 한쪽 귀퉁이를 차지한 뽕나무 한 그루가 노랗게 물들어 절정의 가을을 뽐내고 있다.

줄배와 징검다리로 강을 건널 때마다 아우라지는 색다른 풍경을 보여 준다.
아우라지역 옆의 ‘어름치의 꿈’. 사진 전시관과 카페로 이용하다 지금은 문을 닫은 상태다.
‘옥산장, 돌과 이야기’는 대를 이어 영업하는 여관이자 음식점으로 전국적으로도 이름난 식당이다.
옥산장 식당의 밑반찬으로 나오는 감자 붕생이.
주민이 수레에 나무를 싣고 이동하고 있다. 여량양조장은 정선에서 나는 농산물로 황기ㆍ더덕ㆍ옥수수 막걸리를 만든다.
아우라지역 뒤편 캠핑장에 자라고 있는 뽕나무 잎에 노랗게 단풍이 들었다.

아우라지역 앞에는 ‘주례마을’이라는 이름의 초가집 상가가 형성돼 있다. 산채와 감자를 재료로 하는 강원도 특유의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과 특산품 가게, 카페 등이 들어 서 있다. 역에서 가까운 ‘옥산장’은 여관이자 한정식 전문 식당이다. 전옥매씨의 뒤를 이어 외동딸과 둘째 며느리가 대를 이어 영업하는 식당이다. 곤드레밥을 기본으로 황기백숙과 옥산장특선요리(불고기)가 주 메뉴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감자 붕생이와 감자 송편도 맛볼 수 있다. 인근의 ‘여량양조장’ 역시 3대에 거쳐 75년간 막걸리를 만들어 오는 곳이다. 이 양조장에서 제조하는 황기ㆍ더덕ㆍ옥수수 막걸리는 전부 정선의 농산물을 원료로 쓴다. 김성환(61) 사장은 옛날부터 해오던 대로 고두밥을 짓는 것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막걸리가 되기까지 열흘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청량리에서 ‘정선아리랑’ 열차, 구절리에서 ‘레일바이크’

여량면을 규정하는 또 하나의 풍경을 꼽으라면 기찻길이다. 아우라지역은 정선선 선로에서 열차가 운행하는 마지막 역이다. 정선선은 석탄산업이 호황을 누리던 1967년 개통한 민둥산역~아우라지역 간 45.9km 산업철도다. 현재는 A트레인이라고 불리는 ‘정선아리랑’ 관광열차가 매주 월ㆍ화요일을 제외한 주 5회 운행한다. 정선오일장날(2ㆍ7일)에는 요일에 상관없이 운행한다. 열차는 오전 8시35분 서울 청량리역을 출발해 오후 12시43분 아우라지역에 도착한다. 아우라지역 출발 시각은 오후 5시22분, 약 4시간40분간 정차하기 때문에 아우라지 곳곳을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다.

정선아리랑 관광열차가 아우라지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역을 기점으로 오른편에 마을에 형성돼 있고, 왼편이 아우라지다.
아우라지역 광장의 단풍나무 한 그루가 유난히 발갛게 물들었다.

송천을 따라 9km 상류에 위치한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는 폐선로를 이용해 ‘정선레일바이크’가 하루 5회 운행한다. 터널을 통과하고, 물길을 건너고, 좁은 들판과 마을을 지나는 동안 절정의 가을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레일바이크로 약 30~40분 걸려 아우라지역에 도착하면, 뒤따라온 ‘풍경열차’를 타고 구절리역으로 되돌아간다.

구절리역에서 레일바이크를 탄 여행객이 아우라지역으로 달리고 있다.
아우라지역에서 구절리역까지는 풍경열차를 타고 되돌아간다.
구절리역의 ‘여치의 꿈’. 식당과 카페로 이용된다.
구절리역의 풍경열차. 아우라지역까지 운행하는 레일바이크를 매달고 승객을 태워 되돌아오는 열차다.

이름처럼 굽이굽이 깊은 산골에 위치한 구절리에는 곤충을 주제로 한 다양한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역에는 열차 두 량을 위아래로 포갠 열차 식당과 카페가 들어서 있다. 여치 두 마리가 사랑을 나누는 모양으로 ‘여치의 꿈’이라 이름 붙였다. 아우라지역에도 이에 상응하는 ‘어름치의 꿈’이 있다. 사진 전시실과 카페로 이용했지만 현재는 문을 닫은 상태다. 구절리역 바로 인근에는 가상현실(VR)을 활용한 놀이시설 ‘벅스랜드’가 지난해 개장했다. 공중에 매달린 ‘스카이벅스’에 올라 VR기기를 착용한 후 페달을 밟고 이동하며 곤충의 세계를 탐험하는 시설이다. 이외에도 애니메이션 영화 ‘벅스라이프’에 등장하는 곤충 모형을 마을 곳곳에 전시해 놓았다.

구절리 마을 곳곳에 곤충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구절리역 앞의 애니메이션 ‘벅스라이프’ 조형물.
구절리역 위 도로 가의 오장폭포.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인공폭포다.

구절리역에서 도로를 따라 약 2.7km 올라가면 산꼭대기에서 떨어지는 오장폭포를 볼 수 있다. 계곡 암벽에서 흘러내리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실제는 인공폭포다. 1960년대 폭우가 내릴 때마다 우전탄좌 갱내가 침수돼 붕괴 사고가 잇따르자, 지역에서 대리석 사업을 하던 호상철(2015년 작고)씨가 오장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돌려 국내 최장 폭포(209m)가 형성됐다고 한다. 이런 사연은 구절리역 앞 ‘호상철공적비’에 적혀 있다.

정선=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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