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지난 21일 술을 먹고 있던 고객이 A점검원 가까이 와서 팔과 허리 사이에 손을 집어 넣으려 했습니다. A점검원은 너무 놀라 주방으로 이동했지만 고객은 계속 추근댔습니다. ‘방문하면 성추행도 많다면서요?’ ‘남자의 성기를 잘라야 한다’며 횡설수설하던 고객은 두려움에 떨던 A점검원이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나서야 추근대던 것을 멈췄습니다.”

31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이하 공공서비스지부)의 기자회견 현장. 서울도시가스 점검ㆍ검침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한 김윤숙씨의 입에서는 정부의 공권력이 작동하고 있는 국가가 맞는지를 의심케 하는 동료들의 피해 사례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점검하러 갔더니 고객이 알몸으로 나왔습니다.” “계량기 확인 차 집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하자 ‘계량기가 없으면 내 앞에서 무릎 꿇고 박박 기어, 미친 X’이라고 했습니다.” “벨을 누르니 ‘여기 들어오면 나랑 하는 걸로 알겠다’고 했습니다.” “점검 중 고객이 끌어 안아 놀라서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했습니다. 고객이 사과하고 끝났지만 트라우마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어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 모인 노조원들의 요구는 “서울시와 도시가스 공급사는 방문노동자 안전대책을 마련하라”는 것.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도시가스 사용자는 2018년 연말 기준 가정용 418만 가구, 일반ㆍ영업용 130만 지점 등 총 550만곳에 달한다. 서울시의 감독을 받는 5개의 가스공급회사가 69개의 고객센터 업체와 위탁 계약을 맺으면, 이 고객센터 업체에 고용된 점검원이 도시가스 검침, 점검, 고지서 송달 업무 등을 담당한다. 앞서 A씨의 사례처럼 점검원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은 연 1, 2회 가량 고객의 집 안으로 들어가 진행하게 되는 도시가스 안전 점검 업무에서 주로 발생한다.

이들은 도시가스공급사업자가 위탁업체에 90%가 훨씬 넘는 높은 점검률을 달성할 것을 압박하면서 점검원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이 반복되지만 서울시가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공서비스지부는 “검침 단말기(PDA)의 SOS 기능이나 호신용 가스스프레이가 지급됐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다”며 “점검 실적 압박에 고객이 속옷 차림으로 나오건 성희롱을 하건 문제를 제기할 여력이 없다”고 호소했다. 점검을 거부할 수 있는 조건이 매우 한정적인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서울시는 사용자가 점검을 거부하거나 장기간 집을 비웠을 때만 해당 회차의 점검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점검원들이 안전에 위협받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놓인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면서도 “가스공급자와 위탁업체 간의 계약 사항에 해당하는 내용이 많아 직접 개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점검원의 근무 환경 문제를 개선할 수 있도록 가스공급회사와 계속 협의해 나갈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김용식 PD yskit@hankookilbo.com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Figure 1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