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미중 전략 경쟁과 비핵ㆍ평화 체제

입력
2019.10.31 04:40
31면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INF(중거리 핵전력 조약) 파기 이후 중거리 미사일을 한국, 일본 등 동맹국에 배치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INF(중거리 핵전력 조약) 파기 이후 중거리 미사일을 한국, 일본 등 동맹국에 배치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북미 비핵화 협상이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묻히고 있다. 미국의 관심은 온통 중국이다. 북핵 문제가 미국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뒷걸음질 치고 있다.

미국은 인도ᆞ태평양 전략을 추진하면서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를 노골화하고 있다.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INF(중거리 핵전력 조약) 파기 이후 중거리 미사일을 한국, 일본 등 동맹국에 배치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DF-21, DF-26 같은 미사일이 미국 항공모함과 아시아 지역 주둔 미군을 타격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이를 견제해야 한다. 그는 핵이 탑재되지 않은 중거리미사일의 동맹국 배치 방안도 언급했다. 하지만 중국의 핵미사일 전력은 재래식 미사일 전력과 혼재돼 있어서 재래식 탄두를 장착한 미국의 중거리미사일이라 해도 중국의 핵전력을 위협하게 된다. 중국은 중거리미사일이 배치된 미국의 동맹국을 자신의 핵 보복 표적으로 설정할 것이다.

미국의 중거리미사일은 역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게임 체인저다. 이 때문에 최근에 중국이 눈을 부라리는 것이다. 혹시나 한국이 자신의 안보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할까봐 경제 보복은 물론 군사적 압박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면서 한미, 한중 관계가 기존의 안락지대(comfort zone)에서 이탈했다. 이것이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향후 북핵 협상과 평화체제 추진에서 중국의 협조 여부는 한국의 정책 스탠스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미중 경쟁이 심화되면 북핵 문제 해결에 중국이 비협조적으로 나올 것임은 당연히 예측되던 바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미국이 비핵화를 위해 북한을 적극 견인하는 것에 미온적으로 나올 가능성마저 우려해야 할 판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 핵을 문제 삼으면 한반도에 전략자산 배치 명분을 만들 수 있다. 이는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군사적 조치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묘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이 점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북한의 방황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단거리 발사체들과 SLBM 시험 발사에 더해 금강산 문제로 우리 속을 긁고 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위기와 대선 국면의 변수를 활용하면서 기회주의적 행동을 할 가능성도 엿보고 있다. 이 모든 행보가 북한이 가지고 있는 체제 안전에 대한 우려에서 나오는 것임을 모르는 바 아니나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미중 전략 경쟁의 향배는 북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가장 중요한 변수다. 미중 전략 경쟁의 향배를 놓고 3개 시나리오가 논의되고 있다. 협력과 갈등이 공존하는 ‘복합적 관계’ 시나리오, 본격 갈등과 대립 국면으로 가는 ‘패권 경쟁’ 시나리오, 중국의 미국에 대한 ‘제도적 협력’ 시나리오가 그것이다.

대다수 전문가가 복합적 관계 시나리오 가능성을 높이 본다.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이 매우 제한되는 경우다. 그러나 미중이 제도적 협력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 경우 점진적인 북한 비핵화가 가능할 것으로 평가되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도 가능해진다.

2019년 말 현재 비핵화 협상은 교착 상태다. 그러나 미중 전략 경쟁이 협력의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남아 있기에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희망을 놓지 말고 우리 역할을 꾸준히 찾아야 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북한의 체제 안전 불안감을 불식시키고, 역사의 큰 흐름을 바라보게 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핵ᆞ평화 체제에 대한 로드맵을 구체화하고, 국론을 결집해야 한다. 이러한 냉철한 준비가 있어야 이 모든 파고를 넘을 수 있다.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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