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치개혁 시급성 일깨운 ‘조국 사태’

입력
2019.10.29 04:40
31면
민주당은 조국 정국의 출구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에 사활을 걸고, 한국당은 ‘문재인 퇴진’을 주장하는 장외집회에 지도부가 나서며 정치 실종을 조장하고 있다. 정당이 갈등을 완화하기는커녕 부추기고 있다. 사진은 이인영(왼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귀빈식당 별실에서 여야3당 교섭단체 3+3 회동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민주당은 조국 정국의 출구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에 사활을 걸고, 한국당은 ‘문재인 퇴진’을 주장하는 장외집회에 지도부가 나서며 정치 실종을 조장하고 있다. 정당이 갈등을 완화하기는커녕 부추기고 있다. 사진은 이인영(왼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귀빈식당 별실에서 여야3당 교섭단체 3+3 회동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조국 사태는 이를 격발시킨 원인이 무엇이든 한국 정치 사회에 깊게 파인 보수와 진보의 당파적 양극화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또한 정치적 양극화의 정도가 생각보다 훨씬 깊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임을 드러냈다. 진영으로 갈라진 시민의 분극화는 냉전과 반공국가, 안보관 등에서의 이념 분화와는 다르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핵심 지지층들의 인식의 차이는 색깔론 대 종북 좌파의 전통적 갈등을 포함한 모든 현안에서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적대적이며 대립적이다.

상대당 지지자에 대한 혐오 감정은 이슈에 대한 찬반 차원을 넘는다. 정치적 양극화를 이용해 지지층을 결집하는 정당 차원의 낡은 정치 수법과 사안에 대한 이성적 접근보다 당파성에 친화적인 유권자들의 합작이 지금의 정치ㆍ사회적 갈등의 원인이다. 경제적 차이에 입각한 보수ㆍ진보의 대립, 좌파와 우파의 정책적 정체성에 기반한 정당 지지가 아닌 맹목에 가까운 퇴행적 정당 정체성이 사태를 키우고 악화시킨다.

선거의 상대를 경쟁자가 아닌 적으로 보는 사고체계는 상호 관용과 이해를 기본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와는 상극이다. 정책 지향을 근간으로 하는 정당 유대가 아니라, 고정관념과 편견에 기인하는 경직성과 폐쇄성이 진영 간 간극을 증폭시키고 갈등을 일상화한다. 타협과 절충의 여지를 찾을 수 없는 극단적 대립이 서초동ᆞ여의도 대 광화문의 불과 10㎞의 지리적 거리를 화해할 수 없는 시대의 균열로 대체했다.

조국 전 장관의 거취, 정경심 교수 구속을 둘러싼 시민의 분열은 정치적 지지의 차원을 넘는 반정치적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복합적 원인이 있겠으나 극단적 지지 성향을 가진 시민들의 법률체계를 훼손할 수 있는 세 과시의 집회 양상은 정치가 갈등과 협상을 조정하지 못한 데에 기인한다.

민주주의 위기는 포퓰리즘 정치의 일상화에서 유래한다. 정책 찬반에 대한 일상적 시위와 집회의 도를 넘는 진영 정치의 한 형태로서의 포퓰리즘은 언제든 선동에 능한 정치꾼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 최근 출간된 저서인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저자들은 “잠재적 독재자의 위협으로부터 미국 사회를 지켜준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확고한 의지가 아니라 민주주의 문지기, 다시 말해 미국의 정당체제였다”고 말한다. 한국의 정당체제는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진영 논리에 편승해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양대 정당의 지도부와 국회의원들을 ‘정치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각종 매체와 경로를 통해 편파적인 정치적 언술을 쏟아내며 지지자들의 이성을 흐리고 프레임을 바꾸는 데 진력하는 인사들은 ‘모사(謀士)’의 전형들이다. 정당에 속하지 않으면서 집권연대의 한 축을 이루는 ‘스피커’들의 언사는 사태를 악화시키고 시민사회의 균열을 부추긴다. 민주주의 위기를 조장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검찰개혁의 시대적 당위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체제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식민지 유산과 분단, 냉전 그리고 쿠데타와 군사정권, 산업화와 민주화의 대결 구도 등 역사적 요인과 경제적 변수가 뒤범벅이 되어 나타나고 있는 갈등의 심연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정치개혁이 검찰개혁보다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민주당은 조국 정국의 출구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에 사활을 걸고, 한국당은 ‘문재인 퇴진’을 주장하는 장외집회에 지도부가 나서며 정치 실종을 조장하고 있다. 정당이 갈등을 완화하기는커녕 부추기고 있다.

조국 정국에서 청와대를 의식한 민주당의 종속적 행태가 초선 의원 한두 명의 총선 불출마 선언을 촉매로 하여 환골탈태를 하게 될까. 한국당은 최근의 공천 가산점과 표창장 논란에서 보여준 ‘정치적 인지 감수성’의 부족을 메울 수 있을까. 역시 평가는 유권자의 몫이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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