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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앞 어울마당로 보도 위에 업소 홍보용 배너가 가로 놓여 통행에 지장을 주고 있다.
16일 어울마당로에 배너가 줄지어 세워져 있다.
‘불금’인 18일 저녁 어울마당로에 빼곡히 놓인 배너 사이로 행인들이 지나고 있다.

18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 앞 어울마당로. ‘불금’을 맞은 거리에 활기가 넘쳤지만 행인들의 발걸음은 답답했다. 보도를 점령한 배너의 장벽에 가로막힌 탓이다. 메시지를 인쇄한 천을 지지대로 고정해 세우는 배너는 제작비가 4만~5만원 선으로 저렴하고 조립과 분리가 쉬워 업소 홍보용 입간판으로 인기다. 그러나 부작용도 적지 않다. 어울마당로의 경우 식당과 카페는 물론 마사지숍, 안경점, 심지어 부동산까지 배너 홍보전에 뛰어들면서 보행자들은 배너를 피해 지그재그로 걷거나 멈춰서기를 반복해야 했다. 이곳은 마포구가 지정한 ‘걷고 싶은 거리’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이날 어울마당로 130여m 구간에서 확인한 배너만 70개에 달했다. 원기둥 형태의 풍선 간판 등을 더하면 총 81개의 광고물이 통행을 방해했다. 성인 평균 보폭을 60~70㎝라고 치면 두어 걸음에 하나씩 마주치는 셈이다. 한 업소가 무려 8개의 배너를 세워둔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이 같은 광고물이 보행자의 안전까지 해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배너가 웬만한 성인 남성의 키보다 큰 데다 여러 개를 이어 세운 경우가 많아 시야를 완전히 가리기 때문이다. 3~4m 높이의 풍선 간판은 점포로 이어지는 전선이 길바닥 위에 노출돼 감전 위험도 있다. 한 행인이 배너를 단단히 고정하기 위해 물통 받침에 쌓은 돌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18일 어울마당로에 설치된 배너에 구청에서 발부한 단속 경고장이 훼손된 채 붙어 있다.
단속 경고장이 붙은 채로 어울마당로에 세워진 배너. 18일 어울마당로.
가로수에 끈을 묶어 배너를 고정해 둔 경우도 적지 않다. 18일 어울마당로.
18일 어울마당로를 지나는 행인들 사이에 풍선간판용 전선이 노출된 채 방치돼 있고, 배너를 고정하는 물통 받침 위에 또 다른 물통이나 벽돌 등이 놓여 있다.

현장에서 확인한 광고물 대다수가 불법 시설물로 강제 수거 및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서울시의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배너와 같은 입간판은 지면으로부터 높이가 1.2m를 넘어선 안 되고 점포에서 1m 이상 떨어져서도 안 된다. 보행 통로를 막을 경우 건물 부지 내라도 설치가 제한된다.

그렇다면 단속은 안 하는 걸까 못 하는 걸까. 마포구청 관계자는 “수시로 계도와 단속을 하는데도 업주들은 ‘배너를 밖에 내놓지 않으면 손님이 안 오는데 장사를 하지 말라는 거냐’며 항의하거나 강제 수거 과정에서 충돌을 빚기도 한다”면서, “과태료보다 배너 제작비가 훨씬 싸다 보니 여러 개를 만들어 놓고 강제 수거 다음날 새 배너를 세워놓는 경우도 흔하다”고 말했다. 불법 입간판에 부과되는 과태료는 개당 최소 14만원이며 개수와 면적에 따라 액수가 늘어난다.

업주들은 임대료 상승에 불경기까지 겹친 악조건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식당 주인은 “경기가 안 좋으니 다들 어렵다. 이걸(배너를) 길거리에 놔둬야 그나마 손님이 오니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광고 효과를 기대만큼 거두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광석 남서울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자극적인 원색이 많고 통행까지 방해하는 배너를 계속 마주치다 보면 손님들은 오히려 부정적 이미지를 키울 수 있어 광고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강력한 법규를 만들고 지자체가 보다 더 엄격하게 단속해야 도시 미관은 물론 보행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어울마당로를 찾은 박모(18)씨도 “통행에 방해가 될 뿐”이라며 “식당을 찾을 때 이런 배너보다 간판을 훨씬 더 많이 본다”고 말했다.

16일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11길 모습. 보도를 차지한 포장마차와 건물 사이 좁은 틈으로 행인들이 오가고 있다.
포장마차를 피해 아예 차도로 걷고 있는 시민. 16일 돈화문로11길
1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이면도로에 배너가 줄지어 세워져 있다. 행인들이 차도로 보행하는 모습이 위험해 보인다.
 
 ◇도심 보행 특구도 마찬가지 

서울시는 2017년 서울로7017과 종로를 중심으로 ‘도심 보행특구’를 지정한 데 이어 2021년까지 명동과 을지로 등으로 보행특구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을 ‘걷기 편한 도시’로 완성하는 데 올해 1,025억원을 쓸 정도로 보행 환경 개선에 의욕적이다. 그러나 16일 종로구 인사동을 비롯해 인근 익선동, 돈화문로 등지를 걸어보면 불법 입간판부터 노점과 오토바이 등이 보도를 점령한 곳이 적지 않았다. 특히, 종로3가역에서 낙원상가로 이어지는 돈화문로11길의 경우 포장마차가 보도를 따라 잇따라 들어서 보행자들이 차도로 걷거나 건물과 포장마차 사이 50㎝ 정도의 틈새를 찾아 통행하는 불편을 겪고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붐비는 명동 역시 업소 홍보 배너에 보도를 빼앗기기는 마찬가지다. 핀란드에서 온 시리(15)씨는 “이런 광고 방식이 한국에만 있는 고유의 길거리 문화인 것 같다”면서도 “어차피 이걸 보고 식사하러 간 적은 없다”고 말했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윤소정 인턴기자

15일 서울 명동에 메뉴판을 표시한 식당 홍보 배너가 보도를 점령하고 있다.
보도를 점령한 배너. 15일 명동.
마치 장벽처럼 서 있는 배너의 뒷모습. 고정용 물통과 전선 등이 보인다. 18일 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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