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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에 인터넷 실명제 입법 어려워 
 혐오표현 추방 차별금지법 급선무 
14일 세상을 떠난 배우 설리. SM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수 겸 배우 설리가 1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악성 댓글과 루머에 고통을 호소하며 2014년 이미 한 차례 연예계 활동을 중단했던 그는 복귀 후 한 방송에서 “좌절하지 않고 이겨내겠다”고 선언했죠. 당당하게 세상에 맞서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랜 기간 시달렸던 독한 악플(악성 댓글) 공격을 끝까지 이겨내기는 버거웠던 것 같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안타까움과 공분이 커지고 있습니다. 과연 ‘제2의 설리’ 피해를 막을 방안은 있을까요.

 ◇‘인터넷 실명제’ 부활 여론 고개 들지만… 

1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인터넷 실명제를 부활시켜달라”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네이버와 다음 등 주요 포털 내 기사만큼이라도 우선 댓글 실명제를 사용하자는 내용이었죠. 청원인은 지난 2018년 4월 19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서 조사했던 ‘인터넷 댓글 실명제’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조사에선 65.9%로 찬성이 우세하다”며 “모습 없는 살인자인 악플러를 근절하기 위해 인터넷 댓글 실명제의 부활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인터넷 실명제란 말 그대로 인터넷에 글을 올릴 때 각 개인이 실명을 쓰도록 강제하는 제도입니다. 댓글 작성자의 이름을 공개해 한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갈 만큼 고통을 주는 루머, 모욕과 허위정보 공유를 사전에 줄여보자는 주장은 얼핏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실제 과거에도 여러 번 논의가 있었어요. 하지만 2012년 8월 표현의 자유 문제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나오면서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졌죠. 당시 헌재는 하루 10만명 이상의 이용자가 있는 민간 게시판을 대상으로 주민등록번호와 사용자 명을 대조해 실명을 확인하도록 한 일명 ‘제한적 본인확인제도’ 규정에 대해 재판관 8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악플의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생명까지 앗아가는 불상사가 잇따르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인터넷 실명제 논의가 갑작스레 소환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실명제 부활은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가 여전하고 이미 위헌 판결이 내려진 만큼 제도를 부활시키기 위해선 헌법까지 손을 대야 한다는 견해까지 나오니까요.

 
 ◇”여성 혐오는 사회적 폭력” 경각심 확산 

설리라는 여성 연예인에게 유독 잔인했던 악플을 단지 ‘익명성’ 문제로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많은 여성들은 설리의 죽음 이후 여성에 대한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시선을 자각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생전에 설리는 꾸준히 페미니즘적인 의견을 개진하고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던 몇 안 되는 여성 연예인 중 한 명이었죠. 바로 그런 이유로 쉽게 공격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속옷을 착용하지 않은 사진을 게시해 조롱을 받은 뒤 “속옷 착용은 개인의 자유다. 편견이 없어졌으며 좋겠다”고 소신을 밝혔을 때, 낙태죄 폐지를 언급하며 “모든 여성에게 선택권을!”이라며 지지 글을 남겼을 때마다 숱한 악성 댓글과 루머가 설리를 향했죠. 여성 연예인의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주관을 솔직하게 표현하거나 행동했을 때 인신공격성 욕설과 집단적인 비난이 집중됐고, 거기엔 어김없이 여성에 대한 혐오가 녹아있었습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설리에 대한 악플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달린 비하와 혐오 발언이 다수였고, 꼭 연예인이 아니라도 여성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성희롱과 조롱이라는 데 많은 여성들이 공감하고 있다”며 “설리의 죽음을 연예인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라고 짚었습니다.

배우 설리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 성남시 자택에서 14일 오후 경찰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성남=연합뉴스
 
 ◇ “혐오발언 처벌 법제화 필요” 목소리 높아져 

설리를 죽음으로 내몬 악플 대부분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달린 ‘여성혐오성’ 악플이라는 점에서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선 온라인 상에서 혐오 표현을 추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이 거론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전문가들도 사실상 도입이 어려운 인터넷 실명제 논쟁을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을 포함해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비하 발언을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지적합니다. 이택광 교수는 “혐오 표현을 자각하고 스스로 걸러내는 게 최선이지만 안 된다면 가능한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약자에 대한 극단적 혐오 발언을 실제로 처단할 수 있는 근거 법규를 마련하는 자체 만으로 악플러들에게 상당한 압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손효숙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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