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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올해만 민원 570여건 접수 
 은행 여물어 떨어지기 전 미리 제거 
 충격ㆍ진동으로 나무에 피해 줄 가능성 
14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서 고가사다리차에 올라탄 인부들이 작대기를 휘두르자 은행나무 가지에 붙어 있던 노란 은행알과 초록색 이파리가 함께 떨어지고 있다.
1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에서 고가사다리와 진동 막대를 이용한 은행 털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14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서 고가사다리차에 올라탄 인부들이 은행 털이 작업을 하고 있다.
14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서 한 인부가 작대기를 휘둘러 은행을 털고 있다.

도심 곳곳에서 ‘은행 털이’가 한창이다. 고가사다리차에 올라탄 인부들이 은행나무 가지를 작대기로 후려치거나 진동 막대로 은행알을 떨구고 밑에선 쓸어 담는다. 굴착기에 진동 장비를 장착해 나무 기둥을 흔들기도 하고 대형 수집망 같은 아이디어 장비를 동원하기도 한다. 은행이 맺히는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하거나 은행을 만들지 못하도록 봄철부터 약재를 살포하는 지자체도 있다.

서울 시내 자치구들 역시 지난달부터 10~20명씩 전담반을 편성해 쉴 새 없이 은행을 털고 있다. 하지만 작업은 더디고 일손도 부족하다. 14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아파트삼거리에서 은행 채취 작업을 이끌던 작업반장은 “은행이 잘 익으면 살짝 쳐도 우수수 떨어지는데 아직 때가 일러서 웬만큼 세게 치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작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인부 8명이 3시간 동안 은행나무 두 그루에서 털어낸 은행은 총 500㎏ 분량, 자루마다 노란 은행알과 함께 파릇파릇한 이파리가 수북이 담겼다.

 ◇익지도 않은 은행알을 떨구는 이유 

은행 털기 작업의 주목적은 악취 제거다. 흔히 ‘열매’라고 부르는 은행 씨앗이 길바닥에 떨어져 발길에 차이고 짓이겨지면 외피층에 함유된 지방산이 노출되면서 꼬릿한 냄새가 진동한다. 아무리 조심해도 신발에 묻은 악취가 사무실로, 집 안 현관으로 옮겨 다니니 ‘가을날의 지뢰’가 따로 없다. 그 때문에 민원이 끊이지 않자 지자체는 업무 중복을 피하기 위해 민원이 제기된 나무의 은행을 미리 다 떨궈 버리고 있는 것이다.

갈수록 민원은 는다. 올해 서울 시내 자치구에 접수된 은행 관련 민원은 15일 기준 574건으로, 지난해 합계 507건을 이미 넘어섰다. ‘악취가 난다’ ‘지저분하니 빨리 치워 달라’ ‘수나무로 바꿔 달라’ 등 요구 사항도 다양하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상인들 중에 점포 앞에 떨어진 은행이 영업을 방해한다며 ‘은행나무를 아예 뽑아 버리면 안 되냐’고 떼를 쓰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15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주변 보도에 떨어진 은행이 짓이겨져 있다. 말랑한 외피층이 으깨지면서 지방산이 노출되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6일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의 한 버스 정류장 주변 은행나무 암나무에 은행 수집망이 설치돼 있다.
11일 서울 송파구의 은행나무 암나무 기둥에 설치된 수집망에 은행이 걸려 있다.

잦은 비에 태풍까지 겹친 올가을은 은행알이 예년보다 일찍 떨어지면서 민원 접수도, 채취 작업도 이르게 시작됐다. 여물지 않은 은행을 떨궈야 하니 업무 강도가 세지고 작업 기간은 늘어났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민원 처리에 걸리는 시간조차 기다리지 못해 연거푸 민원을 넣는 주민들도 있는데 올해처럼 은행이 일찍 떨어지는 경우는 민원 업무 처리에 한계를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말썽 많은 은행나무를 왜 심었을까 

2018년 기준 서울 시내 가로수는 총 30여만 그루. 이 중 은행나무가 11만여 그루(35.8%)로 가장 많다. 미세먼지 등 대기 정화 능력이 좋고 병해충에 강해 가로수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다만 ‘악취의 원인’ 은행을 생산하는 2만9,000여 그루(26%)의 암나무가 문제다. 애초부터 수나무 위주로 심었으면 될 일 아닌가.

하지만 묘목 단계에서 성별을 감별하는 DNA 분석 기술이 개발된 것은 2011년. 그 이전에는 20~30년을 자라 은행이 맺힐 때까지 암나무와 수나무를 구별하지 못했다. 어떤 나무에서 은행이 떨어질지 모를 ‘복불복 식재’의 부작용을 뒤늦게 겪고 있는 셈이다.

 ◇‘은행 미리 털기’만이 능사인가 

이파리는 물론 잔가지까지 부러질 정도의 충격과 진동이 나무에 좋을 리 없다. DNA 성 감별 분석 기술을 개발하는 등 은행나무를 꾸준히 연구해 온 국립산림과학원 이제완 박사는 “나무에 어느 정도 강도까지 진동과 충격을 가했을 때 이상이 없다는 연구도, 기준도 없다”면서 “지금의 은행 털이 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나무에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산림청의 ‘가로수 조성 및 관리규정 고시’에 따르면 지자체는 가로수의 생육이나 관리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정마저 쇄도하는 민원 앞에선 무기력할 따름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은행나무의 수난에 대해 이 박사는 “바닥에 떨어진 은행은 길면 두 달가량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번식 활동이면서 교육적 측면에서도 활용이 가능한 만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5일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에서 굴착기에 장착된 진동 장비로 은행나무 기둥을 흔들어 은행을 털어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서울시에 접수된 민원 중엔 은행 털기나 교체 식재에 반대하는 의견도 더러 있다. 지난 10일 시민 이모씨는 민원 글에 ‘말 못 하고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도 암수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인간이 도리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썼다. 서울시 푸른도시국 관계자는 “이씨처럼 자연의 섭리이므로 그대로 두라는 내용의 민원이 없지는 않으나 악취와 미관 훼손 개선을 요구하는 내용이 90% 정도에 달한다”고 전했다. 오랜 시간 은행나무가 제공해 온 혜택을 누리면서도 두 달간의 불편은 못 견뎌 하는 각박한 가을이 깊어 간다.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윤소정 인턴기자

14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서 인부들이 바닥에 떨어진 은행을 자루에 쓸어 담고 있다.
15일 떨어진 은행알이 마구 으깨어진 서울 세종대로 주변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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