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봉쇄냐 연대냐… 선택 기로에 선 유럽 보수

입력
2019.10.10 18:29
수정
2019.10.10 19:0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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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독일 수도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정당 지지자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해 5월 독일 수도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정당 지지자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독일 남서부의 작은 마을 ‘프랑켄슈타인’의 한 부부가 최근 독일 언론과 정계를 뒤흔드는 일이 있었다. 지난달 초 전통의 보수 정당 ‘기독민주당(CDU)’ 소속 지방의원인 부인이 당의 ‘극우와의 연대 엄금’ 방침을 어기고,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소속인 남편과 마을 의회에서 정치 연대체를 공식 결성한 것이다. 1~2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보수와 극우의 ‘동침’이 성사된 셈이다.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면서, 유럽의 전통 보수 정당들이 극우 정당을 두고 ‘봉쇄’와 ‘연대’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중도 우파와 극우는 사실상 ‘불구대천의 원수’나 마찬가지인 관계였지만, 최근엔 양측의 협력이나 정책 공유가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이다. 수십 년간 아웃사이더였던 유럽의 극우 세력이 2017년을 전후로 각국 선거를 통해 주류 정치권에 뿌리를 내리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특히 앞선 사례처럼, 나치라는 역사적 교훈을 가진 독일에서조차 이런 일이 빈발한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지난 6월 기민당은 AfD를 ‘극우 이념ㆍ반유대주의ㆍ인종차별주의를 용인하는 정당’으로 규정한 뒤, “(그들과는) 어떤 연정도, 정치적인 협력도 금지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문제는 중앙 정치권에서는 이런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으나,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는 이탈이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 공영방송 ARD는 올해 최소 18곳의 지자체에서 기민당과 AfD의 협력 사례가 확인됐다고 자체 집계를 통해 전했다. 주류 정당 의원들의 지지로 AfD 지자체장이 당선되거나, 기민당과 AfD가 직접 연정을 꾸리는 식이다. 이와 관련, 노르웨이 베르겐대의 정치학자인 엘리자베스 이바쉬플라튼은 NYT 인터뷰에서 “먼저 (중도 정당의) ‘극우와의 비협조 방침’이 도전받거나 깨지고, 이후 지역 수준에서 실험적인 연대체가 들어서며, 이는 결국 국가 수준의 연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애초 보수 정당의 ‘극우 배제’ 전략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시하기에는 이미 너무 세력이 커진 탓이다. 또 극우 정당에 대해 무시와 배제로만 일관하면 ‘기득권 정당들이 진짜 민의를 무시한다’는 유권자의 불만이 생기면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 기민당 의원이자 현재 AfD 소속인 우베 융에 연방의원은 기민당 방침에 대해 “유권자에 대한 모욕”이라며 분개했다.

강력한 반난민 정책을 내세우는 극우 정당에 표심이 쏠리자, 유럽의 일부 보수 지도자들은 차마 극우와 연대는 안 하더라도 그들의 의제와 구호를 끌어오는 ‘우경화 현상’도 보인다고 NYT는 설명했다. 예컨대 온건 보수 성향 자유민주당(VVD)의 마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가 지난 2017년 총선에서 이민자를 향해 “정상적으로 행동하든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라”는 강경 발언을 퍼부은 게 대표적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보수당 총리가 극우 ‘브렉시트당’과 정책을 공유, 기존 보수당 의원들의 반발을 사는 것도 그런 사례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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