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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책임 역행… 네덜란드 연기금 등이 지정한 해악기업ㆍ日 전범기업 등에 7조 넘게 투자
국민연금공단 서울남부지역본부 강남 사옥.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민연금이 일부 유럽 국가들이 정한 ‘사회적 해악기업’에 투자한 금액이 지난해 기준 7조원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해악기업이란 생산 제품이나 제품 생산 과정이 인권을 침해하거나 환경을 훼손하는 등 인류에 해를 끼치는 기업을 뜻한다. 핵ㆍ대인지뢰ㆍ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와 담배 제조 기업, 부패 기업 등이 대표적이다. 국민연금의 일본 전범기업 투자가 논란이 된 가운데, 국민연금이 성과가 입증되지 않은 ‘수익률 제고’를 명분으로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국내외 해악기업과 일본 전범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약 8조6,000억원에 이른다.

9일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장정숙 의원(대안신당)이 국민연금에서 입수한 ‘투자배제기업(사회 해악기업) 투자 현황’에 따르면, 해악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투자는 최근 몇 년 사이 증가 추세다. 국민연금은 네덜란드 연기금(ABP)과 노르웨이 연기금(GPFG)이 지정한 사회 해악기업에 지난해 3조1,649억원(26억4,513만달러), 4조2,629억원(35억6,279만달러)씩을 투자했다.국민연금이 2014년 ABP와 GPFG 지정 사회 해악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각각 1조5,506억원(12억9,595만달러)과 1조8,867억원(15억7,684만달러)이었다.

[저작권 한국일보]국민연금의 문제적 기업 투자/ 신동준 기자/2019-10-09(한국일보)

이는 ‘윤리적 투자’를 강조하는 세계적 흐름과 역행하는 행태다. 비인도적 기업일 경우 자국 기업이어도 투자하지 않는 ABP와 GPFG의 방침과도 대비된다. 미국, 캐나다 등도 ‘투자 배제 기업’을 지정해 해악기업 투자를 제한하고 있지만, 국민연금은 해악기업을 지정하지도, 관련 투자 제한 지침을 마련하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개정된 국민연금법이 ‘책임투자 원칙’을 명시하고 있으나, 전범기업과 해악기업 투자 관행은 여전하다.

국민연금은 사회적으로 지탄받은 기업에도 투자를 계속했다. 2016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졌지만, 국민연금은 2017년 가습기살균제 원료 공급 기업에 대한 투자액을 오히려 늘렸다. 국민연금은 2017년 옥시레킷벤키저에 1,831억원을 투자했는데, 이는 전년보다 285억원 증가한 액수였다. 2017년 SK케미칼에도 전년보다 637억원을 늘린 2,352억원을 투자했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책임투자 정책이 미흡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개선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7월 발표한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에서 “책임투자 관련 정책과 지침이 없고, 기금운영본부 내 책임투자 적용을 위한 통합 프로세스가 부재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국민연금의 책임 투자를 의무화하기 위해 선진국들처럼 ‘투자배제 기업 리스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정숙 의원은 “사회적 해악기업에 대한 투자배제 리스트 작성과 운용을 제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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