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7월 개성까지 돼지열병 창궐… 소독약 없어 사체 강에 버려”

입력
2019.10.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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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영 대한수의사회 부회장 인터뷰] 

 7,8월부터 황해도 장마당서 돼지고기 팔 때 산 채로 보여줄 정도 

 남한접경 軍부대서 버린 돼지, 南 전염시킨 듯… 北 소독약 지원을 

김준영 대한수의사회 부회장. 김 부회장 제공
김준영 대한수의사회 부회장. 김 부회장 제공

“북한은 이미 6, 7월에 평양 인근과 개성까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유입됐다고 합니다. 시장에서 돼지를 팔려면 산 채로 보여줘야 믿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고 합니다.”

경기 북부를 휩쓸고 있는 돼지열병의 북한 연관성에 대한 의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김준영 대한수의사회 부회장 겸 김준영동물병원장은 9일 인터뷰에서 “돼지열병은 북한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김 부회장은 26년 간 돼지를 연구해온 양돈 전문가로, 2004~2010년 통일부 산하 통일농수산사업단에서 일하며 북한 양돈산업 지원에도 적극 관여했다.

그는 북한이 지난 5월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돼지열병 발병을 보고한 뒤 북한 전역에 바이러스가 확산됐고, 특히 남북 접경지역 군부대에서 사육하는 돼지까지 돼지열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것이 직접적으로 남한에 영향을 줬다고 추정했다. 국내 돼지열병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면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소독약을 북한에 보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살아있는 돼지 직접 보여줘야 고기 팔려” 

김 부회장은 북한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수의사, 탈북자 등을 통해 접한 정보를 토대로 북한에서 바이러스가 넘어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 7월 노동당에서 돼지열병 감염 돼지를 모두 없애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북한 방역당국은 시간이 부족하다며 8월말까지 시기를 늦춰달라고 했다. 결국 8월말 북한은 돼지열병 의심 돼지를 대거 처분했고, 이것이 강으로 떠내려와 9월 중순 경기 북부 및 인천 강화군에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게 그의 추측이다.

북한 내 돼지열병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확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회장은 “6, 7월에 이미 평양 인근과 황해도, 개성까지 돼지열병이 유입됐다”며 “남한 접경지역 군부대 막사에서 잔반을 먹이며 사육하는 돼지도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군부대들이 감염된 돼지를 인근 강에 버려 비무장지대(DMZ)나 남한까지 오염원을 전파시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돼지열병은 장마당(북한 농민시장) 풍경도 바꿔놓았다. 발생 초기인 6월까지만 해도 황해도 장마당에서 돼지고기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뤄졌지만 돼지열병 감염 개체가 유통되면서 말썽이 일기 시작했다. 사람에 전파되지 않을 뿐이지 감염된 고기는 썩은 냄새를 풍겨 먹기 힘들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7, 8월부터는 상인들이 아예 장마당에 산 돼지를 끌고 와 손님들에게 ‘멀쩡한 돼지를 잡아주겠다’며 판매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돼지열병이 북학 전역에 확산하는 것이 “부족한 기술력과 의약품 탓”이라고 설명했다. 정밀검사 기술이 없어 부검만 해보고 사체를 야산이나 강에 갖다 버리고, 생석회나 소독약도 없어 땅에 묻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에서는 돼지에게 주로 잔반을 먹여 돼지열병 확산에 취약하다.

 ◇”국내 양돈 위해 북한에 소독약 지원해야” 

2004년부터 2010년까지 통일부 산하 통일농수산사업단 축산지원팀장 겸 양돈사업팀장으로 북한 농가 지원에 앞장섰던 김 부회장은 이번에도 남북공조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문제가 남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08년 북한에서 일반 돼지열병(CSF)이 발병했을 당시 사업단 명의로 돼지 30만마리 분량의 소독약, 항생제, 백신을 5톤 트럭 두 대에 담아 보내줬다”면서 “그런데 지금은 이명박 정부 때보다 협력이 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돼지열병의 백신이나 치료제가 아직 개발되지 않은 만큼, 소독약만이라도 보내 바이러스 전파를 막아야 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개성연락사무소나 15일 평양에서 열리는 축구 경기를 통해 소독약을 전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도와주고 싶어도 북한의 응답이 없는 상황 아닌가’라는 질문에 그는 “민간 차원에서 중국, 러시아 등을 통해 전달하는 방법도 있다”면서 “국내 양돈 산업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안 받는다고 안 보낼 상황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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