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경제 위기 키우는 건 정부… ‘아시아 금융허브’ 싱가포르에 빼앗길 수도”

입력
2019.10.09 15:14
수정
2019.10.09 19:13
10면
구독

캘빈 람 전 HSBC 이코노미스트 “미중 무역전쟁 탓 이미 성장둔화 신호”

캘빈 람 전 HSBC 이코노미스트가 8일 홍콩 완차이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홍콩=강유빈 기자
캘빈 람 전 HSBC 이코노미스트가 8일 홍콩 완차이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홍콩=강유빈 기자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8일 기자회견에서 “시위로 인해 홍콩 경제가 혹독하게 추운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부터 4개월간 계속된 홍콩 내 반정부시위가 관광, 소매 등 경제 전반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같은 날 캘빈 람(39) 전 HSBC 이코노미스트는 홍콩섬 완차이(灣仔)에서 진행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위를 홍콩 경제에 대한 추가적인 하방요인으로 볼 수 있지만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을 오롯이 시위대 탓으로 돌리는 정부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미 지난해부터 미ㆍ중 무역전쟁과 중국 소비자들의 수요 감소로 각종 경제지표가 악화된 상태였다며 시위 자체보다 긴급법 발동 등 정부의 후속 대응이 홍콩 경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캘빈 람은 현재 반정부 시위를 이끄는 조슈아 웡(黃之鋒) 데모시스토당 비서장과 함께 민주파 의원들을 도우며 정치 활동을 펼치고 있다.

-6월 송환법 반대 시위가 시작하기 전 홍콩의 경제 전망은 어땠나.

“시위 시작 전부터 이코노미스트들은 올해 홍콩의 경제 성장 둔화를 예상했다. 미ㆍ중 무역전쟁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져 투자와 수출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위가 본격화하기 전인 올해 1, 2분기 홍콩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대비 0.6%, 0.5%에 그쳐 이미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래 최악을 기록한 상태였다.”

-홍콩시위 장기화에 따른 경제적 파장은 없었나.

“있다. 무역전쟁에 국내 정치 불안이 더해지며 홍콩 경제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7, 8월 홍콩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각각 43.8, 40.8로 나타났다(50보다 높으면 경기 확장, 낮으면 경기 위축을 의미한다).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유행한 2003년과 2008년 금융위기 시절을 제외하면 역대 최악이다. 6월 이후 홍콩의 소매 매출이 급감했고, 특히 여행객들에 의해 많이 소비되는 사치품들의 판매가 눈에 띄게 줄었다.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은 건 식료품 정도다.”

-시위 때문에 관광객 발길이 끊어진 건가.

“사실 올 1월부터 8월까지 홍콩을 찾은 관광객 수를 종합해보면 전년 대비 4%정도 늘었다. 다만 8월에 중국인 관광객 숫자가 크게 줄어든 건 사실이다. 위안화 가치 하락과 내수 진작을 위한 중국 정부의 감세 정책이 맞물린 결과로 보인다. 굳이 홍콩에서 ‘큰 손’ 쇼핑에 나설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시위 탓으로만 볼 순 없다.”

-시민들은 “홍콩 경제와 함께 죽을 각오가 돼 있다”고도 한다.

“홍콩 시위대는 중국계 은행을 표적으로 자동입출금기계(ATM) 비우기 운동을 하고 있다. 이들 은행의 현금보유를 바닥내자는 것이다. 그러나 대형 은행은 이런 전략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홍콩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모든 시민이 은행에서 대규모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런(Bank Run) 사태가 온다면 정말 큰 문제이지만 이 정도 움직임으로 그런 사태가 야기될 가능성은 낮다.”

-‘아시아 금융허브’로서의 홍콩의 위상은 건재한가

“현재의 시위 국면은 무엇보다 국제 금융센터로서의 홍콩의 미래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특히 중국 정부가 개입할 경우 해외 투자자들은 홍콩에 자금을 예치하는 것이 과연 안전한지 의심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홍콩 정부의 최근 긴급법 발동은 불확실성을 키우는 경솔한 결정이었다. 긴급법에 따르면 당국이 자본 흐름을 제한할 권한을 가질 수 있다. ‘복면금지법’ 이후 추가 조치에 대해 투자자들이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홍콩의 위기로 반사이익을 얻는 나라는 어디인가.

“홍콩의 위기가 계속되면 최후에 웃는 나라는 싱가포르가 될 것이다. 싱가포르는 지금도 홍콩에 필적할만한 금융 강국으로 꼽힌다. 최근 홍콩 금융권의 예치 자금이 줄어들자 싱가포르 외화예금이 급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홍콩 민주파 정당의 사우스호라이즌 지역 활동 홍보책자 표지. 가운데가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이고 오른쪽이 캘빈 람 전 HSBC 이코노미스트다. 캘빈 람 페이스북 캡처
홍콩 민주파 정당의 사우스호라이즌 지역 활동 홍보책자 표지. 가운데가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이고 오른쪽이 캘빈 람 전 HSBC 이코노미스트다. 캘빈 람 페이스북 캡처

-사실 홍콩 내 여러 이코노미스트들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말을 잘못하면 해고당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투자은행 재직 당시에도 정치적 이유로 리포트가 검열되거나 제한된 적이 있었나.

“곤란한 질문이다(웃음). 답하지 않겠다.”

-현재 독립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하면서 민주파 의원들을 돕고 있는 걸로 안다.

“아우 녹힌(區諾軒) 홍콩 입법회 의원(우리의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2014년 우산혁명의 주역인 조슈아 웡(黃之鋒) 데모시스토당 비서장과 함께 일하고 있다. 민주파 활동 홍보물의 영어 번역을 도우며 인연을 맺어 지금은 11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함께 홍콩섬 사우스호라이즌 지역을 돌며 민원을 청취하는 등 활동을 하고 있다.”

홍콩=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