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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인천 중구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사할린 강제동원 한인 희생자 유해 봉환식'이 엄수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막바지 사할린에 강제동원됐던 한국인 유해 14위는 사할린 현지 공동묘지 10곳에서 수습됐다. 뉴시스

일제 강점기 사할린으로 강제동원된 한국인 희생자 14명의 유해가 70여년 만에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다.

행정안전부는 강제동원 한인 유해 14위가 6일 사할린을 출발해 인천공항에 도착해 입국장에서 귀향식을 가진 후 충남 천안시 국립망향의동산에 임시 안치됐다고 이날 밝혔다. 공식 추도·봉환식은 7일 오후 2시부터 거행된다. 이 행사에는 유족과 유족단체, 정부 관계자, 주한일본대사관 참사관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번에 유해가 봉환된 이들은 일제 강점기 막바지인 1942년과 1943년 강제동원됐다.

사할린 강제동원 한인 유해 봉환은 이번이 일곱 번째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정부와 사할린 한인묘지 발굴·유해 봉환에 합의한 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유해 71위를 봉환했다.

이번 봉환에 앞서 5일 유즈노사할린스크 한인문화센터에서 러시아 정부와 한국 영사관, 사할린한인협회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환송식이 열렸다. 일제 강점기 수만 명의 조선인이 사할린에 강제로 끌려가 탄광·토목공사장·공장 등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 학계에서는 2차대전 종전 당시 4만여명의 한인이 사할린에 남아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해방 이후에도 일본 정부의 방치와 미수교국이었던 옛 소련과의 관계 탓에 1990년 한러 수교 전까지 귀국길이 막혔고, 상당수는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이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할아버지 정용만(1911∼1986년)씨의 유해를 봉환하는 손자 정용달(51)씨는 "할아버지는 1943년 초여름에 논에 물을 대러 나갔다가 끌려가셨다”며 “남편과 생이별한 할머니는 여섯 살 아들과 뱃속 딸을 홀로 키우다 94세에 한 많은 세상을 떠나셨다"고 전했다. 정씨는 “비록 남편이 한 줌 유골로 돌아왔지만, 할머니는 기뻐하실 것"이라며 "이미 선산에 할아버지를 모실 산소를 조성했다"고 덧붙였다.

진영 행안부 장관은 윤종인 차관이 대독하는 추도사를 통해 “정부는 앞으로도 태평양 지역과 중국의 해남도 등 국외로 강제동원된 희생자들을 고국으로 모셔올 수 있도록 유해봉환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배성재 기자 pass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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